베트남 펀드, 환매 제한에 딱 걸렸다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5.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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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트남 증시 ‘반 토막’ 이하로 악화…5년간 되팔 수 없는 상품 등에 투자자들 ‘울상’

ⓒEPA
지난주 시장의 최대 이슈는 베트남이었다. 시작은 일본 다이와증권경제연구소의 한 쪽짜리 리포트였다. 상당히 완곡하지만 결정적인 충고를 담고 있는 리포트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베트남의 거시 경제 펀더멘털은 최근 6개월간 급격히 악화되었다. 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1.4% 높아졌고, 지난 4월까지 12개월간 무역 적자는 2백1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 베트남 GDP의 약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베트남 경제가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긴축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적절한 정책적 선택이 많지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는 베트남이 향후 몇 개월 내에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이 그렇게 할 때까지 우리는 투자자들에게 베트남에 대해서는 투자비중을 ‘0’으로 가져갈 것을 권고한다.’

베트남 증시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베트남에서는 기사화되지도 않았다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알려지자 시장은 시끄러워졌다.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부터 일부 비약은 있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는 의견까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인 것 같다. 여기에 최근의 한 세미나에서 UBS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개인적으로 베트남 시장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앞으로 30년 동안의 경제 성장을 보고 12개월 내에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로 투자한 것은 잘못이다”라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베트남 증시에 대한 진단은 분명해진 것 같다.

국가 위험 큰 펀드 투자시 장기 투자 유도한 규정 미리 확인해야

문제는 베트남 펀드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다. 애초에 베트남 시장에 투자할 때 1~2년 안에 고수익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전세계적인 증시 회복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혼자서 헤매고 있는 호치민 지수를 보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운용사의 전망도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일찍부터 베트남 증시에 투자해서 발목이 잡혀 있는 운용사들은 “베트남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현 시점이야말로 저가 매수의 기회”라거나 “베트남 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은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이 단편적인 위기를 과다하게 부풀리고 있다”라며 지금을 저가 매수의 최적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좀더 객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베트남 증시가 1~2년 이내에 반등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2006년 베트남 호치민 지수는 3백7.50 포인트로 출발했다. 2006년 12월 말에는 지수가 7백51.77 포인트까지 오르면서 1년 만에 1백44.5% 상승이라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모멘텀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2007년 1월19일에는 다시 1천 포인트를 돌파하고 그해 3월12일 1천1백70.67 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후 전세계가 사상 최고 수준의 랠리를 보이던 2007년 10월까지 1천 포인트를 넘나들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2007년 말 9백27.02 포인트로 마감했다. 5월21일 현재 호치민 지수는 4백41.75 포인트까지 밀려 있는 상황이다. 올해에만 52.35%가 하락했으니 대충 반 토막 이하다. 최고점을 기준으로 하면 62% 이상 내렸으니 굳이 IMF가 아니더라도 충격은 받을 만큼 받은 셈이다. 이런 성적은 펀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베트남에 단독으로 투자하는 펀드들은 주식형의 경우 올해에만 30% 이상을 까먹었다. 혼합형의 경우에는 상황이 좀 낫기는 하지만 10% 이상 손실이 난 형편이다.

베트남에만 투자하는 펀드의 원조는 2006년에 설정된 한국운용의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혼합1’ 펀드다. 변동성이 큰 이머징 시장인 점을 고려해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단위형/폐쇄형으로 만들고 5년간 환매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이후 출시된 적립식의 경우에도 환매를 어렵게 하기 위해 1년 미만 환매시 이익금의 70%, 2년 미만은 이익금의 50%, 3년 미만은 이익금의 30% 지급 규정을 두어 가급적 3년 이내에 환매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투자자들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지만 운용사의 입장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는 파격적인 규정이었다. 물론 운용 보수도 안정적으로 보장이 되는 구조다.

이후에 출시되는 베트남 펀드들은 이 펀드의 선례를 따라 단위형/폐쇄형 구조를 갖추게 된다. 베트남 펀드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베트남 시장의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었지 이런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필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대부분의 베트남 펀드 투자자들은 일반 펀드처럼 환매 신청을 하면 언제든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단위형/폐쇄형 펀드들은 환매를 할 수 없도록 하면서 환금성을 유지하기 위해 펀드의 지분을 거래소에 상장시켜서 투자자 간의 매매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환매 제한 기간 동안에는 현금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베트남 펀드에 대한 비중을 줄이거나 1~2년간 다른 해외 펀드로 갈아타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폐쇄형 펀드도 중도 환매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수익자인 개인이 사망한 때’에는 환매가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90일 미만이라면 수익금이 아니라 환매 금액의 5%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결국 환매 제한 기간에는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해외 펀드의 출시는 지속될 것이다. 특히 최근에 나오는 것처럼 타이완에만 투자하는 펀드나 태국에만 투자하는 펀드 등 이머징마켓에 속하는 단일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들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런 펀드들은 태생적으로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고 국가 위험(country risk)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펀드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으려면 투자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문에 운용사에서는 가급적 환매에 많은 제약을 두려는 인센티브가 있다. 반대로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환매 제한 조치들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뒤늦게 환매 제한 규정을 확인하고 불편해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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