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톡톡히 해낸 황금박쥐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8.06.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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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대황금박쥐상’으로 대박…수준급 작품에도 황금에만 관심 쏠려 유감
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국내 축제 가운데 볼거리와 짜임새, 그리고 입장객과 수익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소문난 ‘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올해에는 단연 황금박쥐상이 눈길을 끌었다. 약 10여 년 전 함평 지역 내 폐광 동굴에서 황금박쥐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엑스포측은 발 빠르게 올해의 마케팅 초점을 황금박쥐에 맞추었다. 나비-나비와 꽃-나비와 곤충-곤충과 황금박쥐 등으로 이어지는 전략의 추이를 보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온갖 조건들을 문화상품으로 극대화시켜 가공해내는 감각이 놀라울 정도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연 황금박쥐 생태관이 단연 인기였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박쥐가 전시장에 출현한 것도 아니다. 지하 동굴 구조로 만들어진 전시장은 그저 표본 몇 개와 몇 장의 사진들과 영상 자료들, 거기에 황금박쥐 모뉴먼트가 콘텐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대박이었다.

관람객들은 수도 없이 몰려 동선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딱 한 곳에 구름떼처럼 모여 사진들을 찍느라고 다들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바로 황금 1백62kg, 순은 2백81kg이 들었다는 <함평천지 운기일주 대황금박쥐상> (높이 218cm, 변건호 작) 때문이다. 관람객들에게는 실제 그렇게 큰 금괴를 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볼거리이자 즐거움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생태관이라 하기에는 다른 전시장들에 비해 콘텐츠가 빈약한 편이지만, 관람객은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매우 흥미로워했다. 엑스포측의 전략이 기가 막히게 적중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금 1백62㎏을 들여 만들었다는 ‘함평 천지 운기일주 대황금박쥐상’(왼쪽)으로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함평군의 마케팅 전략 적중해

사실 처음 엑스포 개막과 함께 언론에 보도될 때만 하더라도, 수십 억원어치의 금을 들여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여론의 반응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무리하게 사치를 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착수 전부터 함평군처럼 규모가 작은 고을에서 그만한 자금을 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운이 따라 주는 것인지, 아니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그 사이 금값이 폭등해 3년이라는 기간 사이, 앉은 자리에서 거의 2배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금테크만으로도 큰 수익을 올렸으니 시작 단계부터 많은 에피소드를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의 흥행 대박이야말로 기념비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일로 기록될 만하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품 자체가 가지는 본질적 가치 같은 것은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제작을 위해 작가가 공을 들인 작업의 측면은 가려지고 오직 금이라는 재료 문제, 혹은 작품을 둘러싼 에피소드만 부각이 되었을 뿐이다. 물론 기념 조형물이라는 것이 일정한 기능성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기능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결국 작품의 성공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엑스포의 질적·장기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작품 자체를 좀더 강조하는 세련된 문화 마인드가 조금은 아쉽다.

금값이 폭등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금값이 폭락했다고 치면 그때는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논의되고 정리되었을까? 당연히 온갖 질타와 비판에 직면했을 수도 있을 문제다. 애당초 작품은 작품으로서, 그리고 작품성으로 어필되었어야 했던 문제다. 실제로 작품은 정밀한 사실적 표현과 가공의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탄탄한 구성을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동굴을 상징하는 원환 모양의 구조가 설정된 것이나, 그 일부를 해체적으로 표현한 점도 기대 이상이다.

이 작품은 거북 형상의 기단 위에 원환 구조 안팎으로 4마리의 순금 황금박쥐가 서로 교차하고 있으며 중앙 상단에 대형 황금박쥐 1마리가 웅장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4마리 순금 황금박쥐는 과거와 미래를 교차하면서 지혜가 담긴 서류를 전달하고 상단 중앙의 대형 황금박쥐가 쥐고 있는 번개와 벼 이삭은 전파를 통한 만물의 교감과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들이 담겨 있는 수준급의 작품이다. 요컨대 여러 가지 에피소드나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다른 타 지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면장갑 오브제를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온 정경연(53·홍익대) 씨가 약 30여 년 동안의 대표작과 근작을 함께 묶은 대규모 전시회를 가졌다. 우리가 보통 집안에서나 산업 현장에서 일할 때 흔히 사용해왔던 일명 ‘목장갑’을 쌓아올리거나 펼치기도 하고, 다양하게 변형시키기도 하면서 조각, 회화, 설치 등으로 다양하게 공간을 창출해온 작품 세계로 유명하다.

정경연의 들은 현대사의 단면을 간단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정경연의 <장갑>

그의 장갑 이미지들은 한결같이 한 부분만이 검정 색조로 염색되어 마치 기름때가 묻은 노동자들의 장갑을 연상케 한다. 바로 그런 오브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연상적인 면에서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산업 현장에서 흘려온 노동자들의 땀과 피로 점철된 현대사의 단면을 아주 간단명료한 형식과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으로 조금만 더 비약하자면 흡사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쌓여 있는 안경더미나 신발더미들을 떠올릴 수도 있는 모습이다.

물론 작가의 장갑 오브제들은 중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연상 자체를 가급적 배제하는 환원주의, 즉 발언을 극도로 절제하는 미니멀리즘 양식의 한 양상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오브제 배열이나 시염(施染)의 균일적 질서가 두드러지는 경우의 작품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몇 번의 노트를 통해 그것을 인간의 손으로 지시하거나 해석해 불교적 알레고리를 오버랩시키려는 의도를 밝힌 적도 있었다. 독해(讀解)야 독자들의 자율적 권리이지만 합장 수행에 대한 연상, 혹은 천개의 팔로 중생 구제를 한다는 천수관음의 상징 등이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작가는 최근 자칫 이데올로기나 어떤 감상에 빠지기 쉬운 오브제들을 오히려 생명 예찬 혹은 상상 여행이라는 서사시로 바꾸어가는 감각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그야말로 근작들은 밝다 못해 야하기까지 한 도시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화면 구조의 평면작들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작가가 주목하는 세계는 이제 산업 현장보다는 형광색 네온이 작열하는 현기증이 이는 도시의 풍경인 듯하다.

그러한 장면에서도 작가의 오랜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장갑 이미지나 오브제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다. 현대사를 위한 기념비는 종료가 아니라 진행형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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