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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미국 대선, 돈 흐름 보면 선거가 보인다

민간 단체 ‘책임정치센터’, 오바마ᆞ매케인의 선거 자금 공개… 모금 총액에서 오바마가 훨씬 앞서 '여유'

김회권 ㅣ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7.01(Tue) 15: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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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하지만 같은 당의 상원의원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법안을 관철시키려면 이 의원에게서 반드시 찬성 표를 받아 내야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한 보좌관이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백악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당신의 경쟁자에게 선거 자금을 원 없이 제공할 것입니다.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겠죠.” 미국의 유명한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이다.

미국의 선거는 ‘전(錢)의 전쟁’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선거 자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당락의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TV 광고를 한 번 더 하고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한 번 더 돌리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공화당원·민주당원들은 대통령 후보를 뽑을 때 인물, 지역, 가치관 등을 보겠지만 각 당내의 선거 전략가들은 후보의 선거 자금 모금력을 다른 조건만큼이나 중요하게 내세운다. 승리의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돈은 자연스럽게 쏠린다는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에서는 선거 자금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우리네 선거와 구별되는 점이다. 기부자 명단과 액수, 선거 자금의 사용처 등은 비밀이 아니다. 미국의 선거법은 각 후보 진영이 신고한 선거 자금에 관한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가 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2002년 미국 연방의회는 선거자금법을 개혁해 ‘소프트머니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기업들이나 이익단체들은 소프트머니가 금지되면서 대신 기업주나 가족의 이름으로, 혹은 직원의 이름으로 선거 자금을 기부하고 있다.선거 자금의 공개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는 민간 단체가 있다. 책임정치센터(CRP)가 운영하는 ‘opensecret.org’에서는 정치인들의 돈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어떤 개인이, 어떤 기업이, 어느 후보에게 얼마나 기부했는지 알 수 있다. 개인의 이름으로 기부했다면 그것을 추적해 기업과의 연관성을 밝혀낸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다.

오바마에게 ‘풀뿌리 기부’ 많아…매케인은 ‘VIP 손님’ 위주

‘opensecret.org’는 인터넷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웨비상’을 네 차례(2001년, 2002년, 2006년, 2007년)나 수상했다. 웨비상은 선정 작업이 공정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어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CRP의 자료를 보자. 이에 따르면 2008년의 미국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더 확실한 ‘쩐의 전쟁’이 될 것 같다. 지난 2004년 미국 대선 때 거둬들인 모든 후보의 선거 자금은 총 8억8천만 달러(약 9천억원)였다. 하지만 11월 대선을 앞두고 2008년 1분기까지 모인 자금만 이미 9억4천만 달러(9천6백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선거에서 2억5천4백만 달러를 모아 가장 많은 자금을 모은 후보로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이 기록은 이미 과거의 기록이다. 오바마는 선거 캠페인을 벌이면서 연일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 모은 선거 자금은 총 2억8천7백만 달러에 달한다. 이에 반해 매케인은 1억1천9백만 달러를 모금했다. 모금액은 크게 차이 나지만 현재 오바마가 보유하고 있는 돈은 약 4천3백만 달러, 매케인은 3천5백만 달러로 서로 엇비슷하다. 오바마가 그동안 엄청난 규모의 선거 자금을 사용해온 셈이다. 물론 그만큼 다시 모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증이다.

   
선거 자금에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선거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오바마 진영은 본선을 앞두고 전국적인 선거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레드 스테이트’를 집중 공략할 생각이다. 일부 주에서만 승리하더라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매케인의 선거 자금 사용처를 묶어둘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박빙지역에 쓰기도 벅찬 매케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강세 지역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있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다.

하지만 줄곧 열세를 보인 매케인에게도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월별 모금액에서 한 번도 오바마를 이겨보지 못한 매케인은 공화당의 정식 후보로 선출된 뒤 선거 자금 모금에도 탄력을 받았다. 특히 지난 5월의 선거 자금 모금액은 박빙의 양상이다. 오바마는 약 2천1백80만 달러, 매케인은 2천1백30만 달러를 모금했다. 특히 백악관의 지원은 후보가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지난 5월27일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에서 열린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매케인 후보를 응원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큰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부시 대통령은 매케인에게 필요한 존재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선거 자금 모금 행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오바마 상원의원은 오클랜드 시에서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오바마측은 T-셔츠, 야구 모자, 단추, 장신구 등을 팔아 총 4만 달러를 벌었다. 오바마 선거본부는 그의 홍보 용품을 구입한 사람들의 이름을 지난 6개월 동안 모은 기부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명단에는 무려 25만8천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5달러짜리 연설 티켓이나 4달러50센트짜리 열쇠고리를 산 사람들도 개인 기부자로 기록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민주당 내 예비선거 기간 동안 오바마측이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액수를 거둬들인 것은 이런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소액 기부자 명단은 오바마 진영의 최고 장점이다. 오바마 지지자들의 풀뿌리 기부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오바마의 막대한 선거 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2백 달러 이하의 기부로 이루어졌다. 무려 14만명이 넘는 숫자다. 이에 반해 매케인은 24%의 선거 자금만이 2백 달러 이하의 개인 기부로 이루어졌다. 매케인의 주요 기부자들은 2천3백 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사람들로 선거자금의 46%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2천3백 달러는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상한선이다. 미국민들은 예비선거에 한 번, 본 선거에 한 번씩 상한선까지 선거자금을 낼 수 있다. 따라서 2천3백 달러 이상을 낸 기부자는 VIP 손님이다. 오바마는 일반 손님 위주로, 매케인은 VIP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통신ᆞ전기ᆞ로펌 업계 오바마 지지…정유ᆞ에너지 업계는 매케인 선호

두 후보의 차이점은 남성과 여성이 낸 기부금을 분석해도 뚜렷이 나타난다. 오바마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58% 대 42%의 비율로 선거 자금을 내고 있다. 반면, 매케인의 선거 자금은 72% 대 28%로 격차가 크다. 힐러리 클린턴 때문에 여성들의 지지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선거 자금이 오바마에게 향한 것은 희소식이다. CNN은 “오바마에 대한 여성 지지율은 55%로 2004년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얻은 여성 지지율 54%와 비슷하다”라고 보도했다.

CRP의 자료가 가치 있는 이유는 개인의 기부를 추적해 어느 회사, 어느 업종에서 어떤 후보에게 선거 자금을 냈는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 산업계의 선거 자금 기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기업들이 받는 영향은 크다. 정유나 에너지 업계는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꺼려 한다. 반면 할리우드는 민주당을 지지하며 선거 자금을 기부한다.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동성애, 종교 문제 등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부 금액을 살펴보면 월가(街)의 선택이 재미있다. 금융업종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 추세는 민주당이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고 부시 정권의 지지도쓴소리가 추락하면서 180˚ 달라졌다. 금융·보험·부동산 분야에서는 지난 5월21일까지 약 9천7백만 달러의 선거 자금을 기부했는데 이 중 5천3백만 달러가 민주당 후보들에게 흘러들어갔다. 월가의 대표 기업인 골드만삭스, JP 모건 체이스, 시티그룹 등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선거 자금 기부에도 헤지(투자에서 사용하는 위험 분산 기법)를 했다. 액수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골드만 삭스는 오바마에게 57만1천 달러를 기부했지만 매케인에게는 13만9천 달러를 냈다. 시티그룹도 오바마에게 35만8천 달러를 냈지만 매케인에게는 21만9천 달러를 기부했을 뿐이다.

로펌과 로비스트 업체들은 약 6천5백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이 중 대다수인 4천9백만 달러 정도가 민주당에게 들어갔다. 법과 정치는 서로 뗄 수 없는 사이다. 이쪽 계통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고 게다가 연방의회와 대통령까지 민주당이 휩쓸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쪽으로 쏠리는 베팅을 하고 있다.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선거 자금을 많이 거둔 분야는 농업·건설·에너지·운송 등이었다. 매케인이 오바마보다 선거 자금을 많이 거둔 분야 역시 당과 일치했다.

오바마 “정부의 선거 보조금 받지 않겠다” 선언

데이비드 플루프 오바마측 선거대책위원장은 “매케인보다 훨씬 더 공세적인 전략을 계획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로키 산맥 주변의 중서부 지역이 승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오바마측은 오하이오, 아이오와,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뉴멕시코, 네바다, 콜로라도 등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 지역은 2004년 존 케리 후보가 부시 대통령에게 패한 지역이다.

오하이오, 아이오와,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에서 예비선거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금액 1위를 기록한 후보는 오바마다. 게다가 이 지역들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열성적으로 모금에 참여했다. 매케인은 네바다와 뉴멕시코에서만 오바마를 이겼다. 하지만 1위는 매케인이 아니라 매케인의 당내 경쟁자들이었다. 네바다에서는 미트 롬니가, 뉴멕시코에서는 빌 리차드슨이 압도적인 1위였다. 순수하게 매케인이 모든 경쟁자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한 곳은 자신의 출신지인 애리조나를 비롯해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 지역인 남부의 미시시피, 알라바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등 다섯 군데에 불과하다.

오바마도 대의원 수가 많은 지역에서 지지세가 약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플로리다, 뉴욕 등 본선 대의원이 많이 배정된 곳에서 가장 많은 선거 자금을 모은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이다. 특히 자신이 상원의원으로 있는 뉴욕에서 3천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거 자금 모금력은 지지율과도 맞물려 있다. 오바마는 본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클린턴이 필요하다.

2008년 11월4일을 향한 ‘쩐의 전쟁’에서 한 발 앞서고 있는 것은 오바마다. 오바마는 지난 6월19일 “현재 대통령 선거에 적용되는 선거 보조금 제도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선거 보조금을 받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선거 보조금은 약 8천5백만 달러다. 이것을 받으면 이 한도 내에서 선거운동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면 자체 조달한 선거 자금을 마음껏 쓸 수 있다. 8천5백만 달러보다 더 많은 돈을 모금할 수 있는데 굳이 선거 보조금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매케인측은 “대선 후보로서 원칙을 세우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오바마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비난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조급함을 표현한 것으로 비칠 뿐이었다. 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는 것. 미국 대선의 향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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