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냐 채찍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07.08 13: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바마ᆞ매케인, 북한 핵 둘러싸고 부시 비판하며 ‘강경’ 입장…또 ‘실패한 대통령’ 나올까
ⓒ로이터 ⓒ뉴시스 ⓒAP연합 ⓒEPA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호에서 ‘실패한 나라 2008년도 순위(The Failed States 2008)’를 발표했다. 이 잡지는 매년 경제·인권·난민·개발 현황 등 12개 항목을 점수로 매겨 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실패한 나라 60개국을 나열하고, 그중 ‘크게 실패한 나라’, ‘매우 실패한 나라’, ‘최악으로 실패한 나라’ 등 20개국씩을 분류해 발표한다.

북한은 올해도 ‘최악으로 실패한 나라’에 들어가 미얀마, 아이티에 이어 15위에 올랐다. 북한 밑에는 이디오피아와 우간다 등이 있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최악의 실패국’ 북한 다루기에서 자신만은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실패한 나라를 상대로 결코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을 “실패했다”라고 몰아세운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강경하게 북한을 자극하더니 이제는 유화 정책으로 돌아서 얻은 것 없이 북핵 문제를 엉거주춤 끌고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좀더 확실한 방법으로 북한 핵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정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대북한 정책 역시 부시의 정책을 물려받아 실패가 예고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매케인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바마가 과격하다고 맞선다. 그는 오바마가 민주당 예비선거 유세에서 적성국 지도자들과 직접 회담할 수 있다고 한 말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오바마는 쿠바와 이란 지도자는 물론 북한 김정일과의 직접 대면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케인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만날 필요 없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전쟁 포로가 된 경험이 있는 매케인은 미국 안보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강경한 입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매케인에게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난다는 것은 과격한 행동으로 비칠 뿐이다. 매케인은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북한 정권과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는 결과만 빚어내 더 이상 대북 압박 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매케인 역시 부시의 현 대북한 정책을 비판한다. 부시 대통령이 7년 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드러낸 대북한 강경론이 지난 2005년 재선 이후 변질되어 부드럽다 못해 물러터졌다는 것이 매케인의 생각이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서로 상대방의 정책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향하는 바는 모두 같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북한 핵문제의 최종 목표는 핵 제거다. 미국의 안보 이익은 북한 핵 제거에 있다는 것이 두 후보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다.

오바마는 해당 국가와의 1 대 1 직접 협상을 선호한다. 10년 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제네바 협상을 이끌어내면서 북한과 1 대 1 협상을 벌인 것을 연상하게 한다. 오바마는 현재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 임기응변의 수단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안보를 더욱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6자회담 형식보다는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한 압력과 회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북한과 직접 상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과 일본 등 우방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할 것을 주장한다.

매케인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해온 베이징 6자회담을 지지한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독자적인 외교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북한이 무시할 수 없는 주변국들과의 공동 보조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베이징 6자회담은 사실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커다란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부시는 지난 2001년 취임 후 북한을 4개의 ‘악의 축’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표방했다. 그리고 힘의 논리를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9·11 사태 후에는 여세를 몰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영국을 제외한 서방 우방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의 독자적으로 군사 행동을 결행했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 전쟁 당시 다국적군에 의존해 대외 전쟁을 치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부시의 이런 행동은 유럽 우방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도 국제적 공조를 외면한 부시의 전쟁 결행을 비난했다. 부시는 국내외의 비판여론에 직면해 곤욕을 치러야 했고, 결국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회담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케인은 6자회담을 지지하면서도 부시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양보했다고 비난한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는 여전한데 지난해 마카오 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금을 풀어준 것이나 대북한 교역 금지를 해제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한 잇단 조치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매케인의 생각이다.

매케인은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으로 회귀할 것을 강조한다. 북한을 당근으로 회유하기보다는 채찍으로 다루어야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매케인의 입장은 오바마 쪽에서 보면 부시 1기 정책의 답습이고 매케인 쪽에서 보면 부시와의 차별화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에는 둘 다 긍정적

오바마와 매케인은 이렇듯 북핵 문제 해결에 달리 접근하고 있지만 이번 북한 냉각탑 폭파를 놓고는 중요한 진전이라는 공통된 반응을 드러냈다. 두사람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리스트 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확증이 있기 전에 당근을 먼저 준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오바마든 매케인이든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해 여차하면 강경 드라이브를 걸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두 사람이 발표한 관련 성명문에서 좀더 확연해진다.

오바마는 북한의 확실한 행동이 없을 경우 대북 제재 조치를 결코 해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비록 이번에 해제된 대북한 제재도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북한핵은 분명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선에서 제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매케인은 한반도 비핵화가 영구적이며 검증이 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만족할 수준이 아니면 결코 대북한 제재 조치를 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의 성명을 보면 이들은 임기 말 부시의 대북한 유화 정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올 11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두 후보 가운데 한 샤람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누구든 북한에 호락호락하게 당근만 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두 후보가 ‘최악의 실패국’ 북한을 다루면서 과연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오바마는 ‘오카터(O’Carter)’ 또는 ‘카터바마(Carterbama)’라고도 불린다. 미국의 대표적 ‘실패한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인 지미 카터와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별명이다. 매케인은 ‘맥부시(McBush)’로 불린다. 미국 국민 상당수가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뜻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힘을 쓸 여력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누구든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을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