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잃은 ‘지역발전’은 수도권만 환영할 일이다
  • 이민원 (광주대 교수·전 국가 균형발전위원장) ()
  • 승인 2008.07.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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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 계승안, ‘균형보다 상생, 혁신보다 경쟁, 분산보다 분권’ 추구 …지방에 대한 배려는 안 보여

지난 7월21일 이명박(MB)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계승하는 지역발전 정책을 발표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존폐가 거론되고 주요 국가 균형발전 사업의 변경 내지 폐지가 논의되던 저간의 사정에비추어볼 때 이번 발표는 한 단계 진보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번 발표의 내용을 살펴볼 때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어서 여기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변화된 새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이 균형발전 정책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새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패러다임을 균형·혁신·분산으로 보고 이를 각각 상생·경쟁·분권으로 전환했다. ‘균형보다 상생’이라는 변화에서는 수도권 배려의 냄새가 풍긴다. 노무현 정부도 수도권에 대한 질적 개선과 지방의 여건 마련을 통한 상생을 추구해왔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상생을 내세운 것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해 수도권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놓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균형발전이 전제되지 않은 상생은 불가능하다.

‘혁신보다 경쟁’이라는 변화에 대해서는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앞으로는 지역 혁신에 필요한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혁신의 퇴보는 양적 팽창주의가 가져온 한국 경제의 파국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소치다.

‘분산보다 분권’이라는 슬로건에서도 역시 탈(脫) 지방의 먹구름이 보인다. 물론 분권은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자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자치는 분권을 통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구사한 분산 정책은 분권을 가능케 하고자 한 정책이었다. 지역 간의 극심한 격차가 분권의 시행을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분산 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도 분산을 버리고 분권을 취한다 함은 중앙 집중의 폐해를 시정하는 데 분산 정책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처사다. 분산 정책 없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분산보다 분권을 강조하는 것은 지방에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 간 협력 체계 뒷전 … ‘빈익빈 부익부’ 가속화할 것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배경으로 지역발전 정책(균형발전 정책이 아닌)이 발표되었다. 전국토의 성장 잠재력 극대화, 신 성장 동력발굴을 통한 지역 특화 발전 견인, 지방 분권 강화,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 기존 시책(혁신·행정중심복합 도시)의 발전적 보완 등 5개분야다. 성장 잠재력 극대화 분야에는 초광역경제권, 광역경제권, 기초생활권 등 공간 단위의 정책을 담았다. 초광역경제권은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둘러싸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마련해놓은 ‘□자형 계획’과 크게 다르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앙 집권적 정책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 분권을 크게 강조한 패러다임에서 이를 어떻게 수용해낼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과거 광역권 발전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자치체 간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충분치 못한 점이 애로사항으로 작용했음을 지적하고 싶다.

신 성장 동력 발굴을 통한 지역 특화 발전 견인 분야에서는 새만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공항 개발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정책에서는 향후 소지역 간 경쟁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지방 분권 강화 분야에서는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 이전, 님비 문제 해결, 지방 재정·세제 개선 등이 대상이다. 특히 법인세·부가세가 평균 증가율을 초과해 징수되는 경우, 세수 증가분의 일정 비율을 지자체에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원한다는 정책이 눈에 띄는데, 세수 징수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자체에 부여하겠다는 것은 발전이 잘되고 있는 지역에 지원을 증대시켜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다. 지금 잘되고 있는 분야나 지역이 미래에도 그러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는지금은 소외된 분야와 지방에도 골고루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재정의 자율성 증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지방 재정의 자율성 제고는 반드시 지방 이전 재원 증대를 수반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은 없다. 한편, 시·도지사에게 규제 권한을 대폭 위임한다고 했는데, 혹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규제 권한을 위임해 수도권의 규제 철폐를 관철하려는 또 다른 시도는 아닌지 모르겠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 분야에서는 지방 정책으로서 지방 전용투자 펀드 확대 등 지방 이전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수도권 정책으로서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 발생하는 개발 이익을 지방에 환원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7월21일 청와대에서 지역발전 정책추진전략 보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수도권 규제 문제다. 그리고 지방에도 규제완화를 적용하겠다는 정책을 통해 앞으로 있을 수도권 규제 완화 역시 일반적인 규제 완화 정책인 것으로 포장하려고 하고 있다. 수도권 개발 이익 지방 환원은 지방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선수도권 개발·후 지방 위무 정책은 아닌지 염려된다. 지방의 영원한 서울 종속을 전제하는 발상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시책(혁신/행정중심복합 도시)의 발전적 보완 분야에서는 혁신도시 정책과 행정도시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혁신 도시에는 산업 용지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고 산학연 클러스터 용지 일부를 임대 산업단지로 조성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의 산업단지, 기업도시, 테크노 파크 등과 연계할 것이며, 기존 도심 공동화에 대비해 혁신도시 개발 이익 등을 도심 재생 사업에 사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공기업 민영화는 지방 이전을 조건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도시에 산업단지를 공급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공공 기관의 이전에 장애가 되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 장애 요인을 어떤 방법으로 제거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도심 공동화는 도시 발달 과정에서 이미 일어난 사안이다. 혁신도시와 기존 도심 공동화를 연계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혁신도시는 그 지역의 직접적인 발전보다도 그 도시를 모델로 해 지방에 발전을 전파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혁신도시는 주변의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 발전의선도 도시가 되어야 한다.

수도권 과밀의 폐해 없도록 수도권에 유리한 정책 제고해야

행정중심복합도시 정책에서는 행정도시에 첨단 기업, 연구소, 우수대학, 비즈니스 지원 기능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토지 저가 공급, 개발권 부여, 세금 감면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능 이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행정도시로서의 성격 형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상업도시 구성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서 본래의 의도가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된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다. 규모를 키우려면 서울만 아니라 지방도 우리의 국토답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지방이 수도권에 비해 너무 기우는 현 상태를 기준으로 지역 간 경쟁 정책을 구사하면 대부분 수도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는 수도권 과밀의 폐해, 국가 경쟁력 하락이다. 바람직한 경쟁 정책은 한 지역 내의 여러 가지 사업들이 서로 경쟁해 지역 내 사업으로 선택되게 하는 것이다. 국가는 지방이 그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예산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된다.

이상으로 MB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나 수도권 우대 정책으로 해석되는 점이 있어 우려된다. 부디 이런 우려가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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