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게시판에서 ‘알바’들도 결투하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07.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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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미ᆞ완성도 놓고 호평과 혹평 ‘팽팽’
▲ 을 두고 네티즌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댓글 마케팅과 관련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7월17일 개봉한 <놈놈놈>은 전국 9백62개 상영관을 장악하며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 통합전산망 집계에 의하면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1백67만3천9백70명을 동원했으며 영화사 관계자에 따르면 7월24일 현재 3백만 관객을 넘어섰다. 개봉 2주차 예매 순위에서도 점유율 47.18%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개봉 기대작 <님은 먼곳에>(27.55%)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다.

하지만 박스오피스 결과와는 관계없이 인터넷에서는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놓고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를 옹호하는 네티즌은 10점 만점을 클릭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영화에 실망한 네티즌은 과감히 1점을 선사하며 혹평을 쏟아붓는다. 4점에서 8점의 일반적인 점수를 주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영화 내용처럼 좋은 놈과 나쁜 놈(물론 영화에 대한 판단의 옳고 그름으로 나눈 구분은 아니다)이 대결하고 이상한 놈이 양념을 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며 서로를 ‘댓글 알바’라고 비난한다. 포털 사이트의 <놈놈놈> 리뷰 게시판에 올라오는 많은 의견이 댓글 알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댓글 논쟁 이어지면서 “알바” 비난 주고받아

“이 영화는 분명 내용은 없지만 재미있고 웃기고 유쾌하고 즐겁다. 그것만은 정말 분명하다(다음 대화명 펄샤이닝)” “난 이 영화 재미있게 봤다. 내가 알바냐, 아니면 영화를 재미있게 본 나를 알바라고 단정 짓는 놈들이 알바냐(네이버 id kings7171)”라는 옹호 글이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재밌다고 하신 분 진심 아니죠? 그냥 자신만 희생하세요. 남들한테까지 돈 쓰게 하지 마시고 제발(네이버 id goori7)” “일반인보다 알바가 더 설치는 영화는 이게 첨인 듯. 알바만 한 80% 돼 보이네(네이버 id gayaioi)”라는 비판의 글도 만만치 않다.

<놈놈놈> 홍보를 맡고 있는 반짝반짝영화사의 박혜경 실장은 “우리 영화에 대한 10점과 1점의 극단적인 평점을 주는 네티즌이 많아서 알바 논쟁이 생기는 것 같다. 현장에서 조사한 관객들 반응은 8대 2 정도로 좋은 편이다. 대부분이 ‘세 배우의 캐릭터가 재밌다’ ‘화면과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악평의 경우는 한결 같다.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영화는 스피드 자체가 내러티브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기대를 모았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인터넷에서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해의 최대 흥행작 <디워>도 인터넷 게시판을 넘어서 TV 토론의 주제로 다루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놈놈놈>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끄러운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우성·이병헌·송강호라는 특A급 남자배우 세 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등 화제성이 컸던 데다 일반 공개 전 칸영화제에 공개되면서 현지에서 미리 본 기자들의 ‘찬사’만 일방적으로 전달되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일반인에 공개된 뒤 ‘찬사 일색’이 아닌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놈놈놈>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평선이 드러나는 광활한 대지와 리듬감 넘치는 몇몇 액션 장면 등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평균치의 대작 오락영화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짜임새나 사건의 필연성, 캐릭터의 선명함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네티즌들이 ‘스토리가 없다’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론가들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리뷰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교통 정리 없이 좁은 곳에 쏟아지다 보니 드라마의 선명성이 떨어져요”라고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평론가 주성철씨는 <씨네 21>의 20자 평에 “정서보다 속도로 다가오는 호쾌한 황야의 액션 활극”이라고 호평하며 별 4개를 선사했다. 영화를 볼 때 어떤 면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서 <놈놈놈>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댓글 알바’의 존재다. 이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지금 시점에서 댓글 알바가 실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영화 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알바를 동원한다고 해도 티가 안 나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막기도 어렵다. 알바를 조직적으로 운영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네티즌들은 영화 보는 수준이 높기 때문에 담당자 중에 누군가가 글을 올리더라도 홍보성 글이라는 지적이 바로 나온다”라며 알바의 존재를 부인했다. 윤리적인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하루에 수백 개, 수천 개씩 올라오는 댓글을 알바생 몇 명의 힘으로 바꾸어놓는다는 일은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는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설전을, 집단화를 추구하는 네티즌들의 성향에 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끼리 강하게 결속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집단 따돌림을 가하는 사이버 세계의 속성이 영화평 게시판에 나타났다는 얘기다.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영화를 재밌게 본 측과 그렇지 못한 측 사이에 미묘한 편 가르기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알바라는 말이 돈을 받고 일한다는 원래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의 영화 보는 눈을 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댓글 논쟁은 또 한 편의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님은 먼곳에>의 개봉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 100억원짜리 영화인 <님은 먼곳에>는 <놈놈놈>에 비해 스타파워도 약하고 유명 영화제를 이용한 마케팅도 없기에 예매율 싸움에서 개봉 첫 주부터 <놈놈놈>에 밀렸다.

▲ (위)는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는 순이(수애 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쇼박스 제공


<님은 먼곳에>는 댓글 논쟁 적고 대체로 ‘호평’

하지만 일반 시사회가 끝난 뒤 이어진 인터넷 댓글에는 악평보다 호평이 많아 뒷심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에서도 사전 마케팅보다는 일반 개봉 뒤 관람객의 호평으로 뒷심을 발휘한 경우이기에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놈놈놈>이 스케일에 방점을 찍은 데 비해, <님은 먼곳에>는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 시절을 살아간 한 여성의 사랑의 방식과 결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원톱 여주인공을 맡은 수애의 매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는 영화평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극을 달리는 <놈놈놈> 게시판에 비해 아직 개봉 초반이기는 하지만 <님은 먼곳에>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평균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님은 먼곳에> 게시판에도 알바 운운하며 극단의 평가를 내리는 글도 있지만 <놈놈놈>처럼 찬반이 꼬리를 물며 리뷰 하나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반복되는 갈림길에서 선 ‘순이’의 선택에 공감하느냐, 공감하지 않느냐가 평점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입소문은 영화 흥행에 중요한 요소다. 입에서 입으로 직접 전달되는 경우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겠지만 사이버 세상에서의 입소문도 무시 못할 위력을 지녔다. 인터넷에서 반응이 좋으면 흥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매체나 영화 평론가의 평은 흥행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기에 갈수록 ‘알바’를 이용한 댓글 마케팅에 대한 유혹이 커지는 모양새다. 물론 인터넷에서의 찬반 논란이 나쁜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영화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개봉 초기의 논란이 오히려 뒷심을 발휘하는 데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디워>의 경우 개봉 초기 ‘전문가’들의 혹평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떨어뜨렸지만 이것이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후반부까지 힘을 유지할 수 있었다. 100억원대 이상의 거대 예산이 들어간 영화 <놈놈놈>과 <님은 먼곳에>의 최종 승부는 영화 자체의 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뒷심은 요즘 관람객의 손끝에서 나온다. 바이럴 큐브의 김형우 대표는 “바이럴 마케팅의 기본 조건은 제품이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바이럴 마케팅은 알바를 이용해 댓글을 직접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티핑포인트까지 인도하는 것이다. 말과 글을 통해 퍼뜨리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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