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발’ 부도 괴담에 대형 건설사도 떨고 있다
  • 박일한 (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08.08.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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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3만 가구 ‘재고’로 쌓여…건자재 값까지 급등해 자금난 심각
▲ 안전 지대로 알려졌던 대기업 건설사들의 아파트에서도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3D3W!’ 요즘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다. 부도가 임박해 곧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사명 이니셜이다. ‘D’와 ‘W’로 시작하는 곳이 각각 3곳이라는 뜻으로 너도나도 해당업체 맞히기에 열을 올린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들 업체는 모두 시공능력 평가 100위권에 드는 중견 건설사라는 점이다. 여기에 이니셜 B, H, I로 시작하는 건설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위험하다며 한마디씩 위험군에 보태진다. 미분양 부담으로 명동 사채시장에서 어음 거래가 중단되었다느니, 이미 1차 부도까지 났는데 ‘쉬쉬’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더해져 어느새 건설업계 ‘부도 괴담’은 더욱 확대된다. 단순한 루머인 경우도 있지만, 제법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도 있어 충격은 더 크다.

건설업계가 ‘미분양발’ 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지방의 중소 건설사는 물론 서울 수도권에서 주로 사업하는 중견 건설사들까지도 미분양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서다. 미분양은 건설사에게 직접적인 자금 부담의 원인이 된다. 주택 전문 중견사인 A건설 관계자는 “요즘 웬만한 주택 전문 건설사들은 모두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어느 회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진행된 총 43건의 청약 접수 중 순위 내 청약이 마감된 곳은 단 3개 사업장에 불과하다.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곳은 ‘서울 휘경 센트레빌’ ‘서울 서교자이 웨스트밸리’ ‘서울 답십리 한신휴플러스’ ‘경기 화성 동탄 166 푸르지오 하임’ ‘경기 광주 오포 e-편한세상’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모집 중인 대형 건설사의 유명 브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충남 천안 다가 일봉산 사계 금호어울림’ ‘경기 화성 동탄 롯데캐슬 파티오 타운하우스’ ‘울산 풍진 힐그린파크’ ‘경기 평택 이안 청북 아파트’(1명 청약) 등은 순위 내 청약이 단 한 명도 없거나 한 명만 청약했다. 새로운 미분양 단지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정부 공식 통계로 13만 가구(수도권 2만 가구, 지방 11만 가구 수준)에 이른다. 지역별로 대구와 충청남도 미분양 가구 수가 각각 1만 가구를 넘어 가장 많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규모를 금액으로 따지면 대략 22조원 수준(수도권 4조원, 지방 18조원 수준)에 해당한다. 업계는 신고되지 않은 미분양을 합치면 공식적인 수치의 두 배에 해당하는 20만~25만 가구는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건설사들이 통상 미분양 수치를 공개할 때 40~50%는 줄여서 발표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사업을 진행할 때 택지비를 포함해 미리 투자하는 자금은 총 사업비의 30~40% 선이다. 건설사들이 실제로 미분양으로 20조원 이상 묶여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미분양 증가는 업체들의 경영난과 직결된다. 미분양은 건설사들의 ‘재고’로 분류된다. 재고가 늘어나면서 자금이 순환되지 않고, 이는 곧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진다. 금융권이 자금줄을 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부도난 건설업체들이 대부분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의 건자재 값 급등은 건설사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건설사가 가장 많이 쓰는 철근 1t당 가격은 7월 기준 1백3만원으로, 올 한 해에만 61% 올랐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급증할 듯…입주자에게도 큰 피해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부도를 낸 건설업체는 총 1백80개사로 지난해 동기(1백25개사) 대비 44.9%나 늘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미분양 등 경영 악화 때문에 면허를 자진 반납하거나 말소당한 건설사는 1천1백78개나 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전국적으로 대출 규제, 공급 과잉 등으로 수요가 대폭 줄어든 반면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분양이 급증했다. 미분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자금난에도 시달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5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전달 대비 3.1%(6백48가구)나 늘어난 2만1천7백57가구를 기록했다. 문제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앞으로 더 쌓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 전국에서 새로 집들이 하는 아파트는 서울 수도권의 7만7천여 채를 포함 총 25만1천여 채나 된다. 지방 물량 중 상당수는 미분양으로 남아 있어 준공 후 미분양 급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시공사로서는 ‘부도 수표’와 같은 존재다. 은행으로부터 공사를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한 돈을 갚을 시기가 불투명해지고, 매달 이자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청업체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준다. 공사비를 주지 못해 결국, 이들 아파트를 헐값에 ‘대물’로 떠넘기는 사례도 늘어난다.

이는 시장에 엄청난 악재로 작용한다. 자금 마련을 위해 분양가의 20~30% 선에서 공공연히 ‘땡처리’(할인 판매)를 벌이는 곳이 등장해 시장을 교란시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입주자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준공 후 미분양은 시세를 분양가 이하로 급락시키기 때문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시공사들이 줄도산한 주요 원인이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였다. 하반기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대형 건설사의 미분양 주택, 2만 호 넘을 것” 관측도

심각한 것은 미분양 공포가 지방의 일부 소형 건설사만 옥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대형 건설사들도 수천 가구씩 미분양을 안고 영업을 하면서 수천만 원대부터 많게는 수조 원의 자금이 꽁꽁 묶인 상태다. 부동산정보업체들에 따르면 GS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의 미분양 물량은 이미 5천~8천 가구 수준에 달한다. 현대산업개발, 대한주택공사 등은 3천~5천 가구나 되며, 두산건설, 대주건설, 한라건설, 극동건설, 월드건설, 화성산업, 대우자동차판매/건설부문,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도 각각 2천 가구를 넘는다. 또 중앙건설, 풍림산업, 벽산건설, 삼성건설, SK건설, 효성, 신동아건설, 쌍용건설, 금호건설, 계룡건설산업, 현진, 대동종합건설, 남광토건, 한일건설, C&우방, 동일하이빌, KCC건설 등 1천 가구를 넘는 곳은 수두룩하다.

이는 신문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통해 분양을 진행하는 대다수 국내 분양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보업체들이 매달 개별 단지별로 전화를 통해 미분양 실적을 집계한 결과다. 분양 사무실에서는 통상 미분양 수치를 축소해 공개하므로 건설사별 미분양은 각각 이보다 30~40%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몇몇 대형 건설사의 미분양은 2만 호가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이는 해당 건설사와 연관된 수백~수천 개의 자재, 건설기계 등 하청업체들은 물론 은행, 제2금융권 등 금융기관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분양은 쌓여가는데 새로운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방법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은행권은 중견 건설사들의 PF를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지침에 의해 건설 도급순위 10위권 이내 업체가 아니면 PF를 허락하지 않는 곳도 등장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서울 및 수도권에서 돈 있는 투자자들의 가수요가 형성되지 않는 한 지방 미분양은 향후 몇 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돌파구가 없다”라며 답답해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신규 주택 구매자인 20~30대보다 주택 교체 수요를 노리는 40대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갈아타기가 원활하도록 중대형 아파트 거래시 양도세 완화, 대출 조건 완화 등 수요 진착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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