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한국 축구, 맞춤형으로 대응하라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08.0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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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첫 경기 카메룬전 승패 따라 8강 진출 갈릴 듯…최종전 온두라스는 무조건 이겨야
▲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지난 7월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호주와 마지막 평가전(위)을 가졌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다시 올림픽으로 향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래 여섯 차례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에 출석 도장을 찍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최고 성적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밟아본 8강 고지가 전부다. 좌절과 통한의 세월을 지나온 한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사가 베이징에서는 과연 어떻게 쓰여질까.

우리가 받아든 이탈리아, 카메룬, 온두라스와 D조 편성은 그리 친절한 편은 못된다. 하지만 다른 조의 상황들을 보면 그리 불평할 일도 아니다. A조에는 아르헨티나, B조에는 네덜란드(2007 21세 이하 유럽선수권 우승), C조에는 브라질이 각각 포진해 있다. 이 세 팀은 ‘액면가의 전력’을 바탕으로 평가할 때 우리 조의 이탈리아와 더불어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다. 여기에 A조에는 대회의 다크호스라 할 만한 세르비아(2007 21세 이하 유럽선수권 준우승)가 있다. B조의 나이지리아와 미국도 다크호스급 팀들이며, C조에는 벨기에가 존재한다. C조의 경우에는 중국의 홈 어드밴티지가 예상될 수 있는 까닭에 중국을 만만찮게 여기는 견해들도 있지만, 객관적 전력으로만 본다면 벨기에가 한 수 위의 팀이라고 평가된다. 결국 이번 올림픽 축구에서 쉬운 조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사실 올림픽에서 손쉬운 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1988년(한국 조 3위)에는 아르헨티나, 옛 소련, 미국, 1992년(한국 조 3위)에는 스웨덴, 파라과이, 모로코, 1996년(한국 조 3위)에는 멕시코, 가나, 이탈리아, 2000년(한국 조 3위)에는 칠레,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최고 성적을 거두었던 2004년(한국 조 2위 8강 진출)에는 말리, 멕시코, 그리스와 같은 조에 속했던 한국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 편성은 친절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평균적인’ 수준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실상 모든 조가 ‘죽음의 조’

어찌되었든 우리와 경합하게 될 D조에는 우승 후보들 중 하나인 이탈리아, 유럽파들이 즐비한 카메룬, 북중미에서 돌풍을 일으킨 온두라스가 있다. 이들 가운데 이탈리아는 틀림없이 전력상 가장 앞서 있다. 이탈리아의 2006 월드컵 제패가 유로 2008의 대실패로 돌변한 것은 세대 교체가 미진했던 탓이 컸지만, 바로 이번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이야말로 향후 10년간 이탈리아 축구의 강세를 기대하도록 만드는 세대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마술사적 기질을 유감 없이 펼쳐보인 쥬세페 로시(비야레알)를 필두로, 미드필드의 번뜩이는 재능들인 리카르도 몬톨리보(피오렌티나)와 세바스티안 지오빈코(유벤투스)가 버티는 이탈리아의 창조성은 이번 올림픽의 ‘양대 산맥’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도전할 만한 수준이다. 파올로 데 첼리에(유벤투스), 로렌초 데 실베스트리(라치오)의 양쪽 측면에서의 오버래핑 또한 날카롭다. 와일드 카드를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토마소 로키(라치오)에만 할애한 판단도 나쁘지 않은 듯싶다. ‘늦깎이 스타’인 로키가 이탈리아 선수단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법하기 때문이다. 8강 진출을 놓고 우리와의 경합이 불가피한 카메룬은 최고의 거목 사무엘 에토(바르셀로나)를 선발하지 않았다. 에토의 불참은 우리에게 나쁜 소식은 아니다. 일단 거물급 공격수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에토의 불참을 의외의 상황으로 보기는 어려운데, 그것은 그가 이미 지난 시즌 후반부터 소속 클럽에서의 입지가 매우 불투명해져 있었고 결국, 바르셀로나 잔류 혹은 다른 클럽으로의 이적에 상당한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에토뿐 아니라 쟝 마쿤(리옹), 모데스테 음바미(마르세이유)와 같은 알려진 스타들의 제외는 이번 올림픽에 임하는 카메룬을 다소간 ‘경량급’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카메룬은 여전히 약한 전력의 팀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통해 알려진 앙드레 비케이(레딩), 알렉상드르 송 빌롱(아스널)을 비롯해 스테판 음비아(렌), 크리스티앙 베카멩가(낭트), 프랑크 송고(포츠머스) 등에 안토니오 곰시(메시나)와 구스타브 베베(앙카라귀쉬)가 와일드 카드로 가세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카메룬 성인 대표팀에서 중요한 선수들로 뻗어 나가고 있거나 적어도 A매치 데뷔를 경험한 선수들.
마지막으로, 북중미 예선에서 멕시코를 제치며 ‘작은 파란’을 일으켰던 온두라스는 올림픽 본선에서까지 파란을 기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전력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의 온두라스 축구가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다는 점과 프리미어리그 위건에서 눈독을 들여온 수비형 미드필더 헨드리 토마스(올림피아)가 최종적으로 팀에 가세할 경우 공수 양면에서 전력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 경기 카메룬전부터 마지막 온두라스전에 이르기까지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각각의 팀을 상대할 때 유념해야 하는 대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홍콩에서 열린 ING컵 대회에서 카메룬의 마르 음부아가 네덜란드 수비수를 제치고 있다. ⓒAP연합

이탈리아전의 키워드는 ‘압박’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들은 ‘끈기’ ‘침착’ ‘스피드’ ‘정확성’이다. 터프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을 다수 보유한 카메룬은 우리와의 대결에서 꽤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카메룬의 스타일에 최대한 침착하고 끈기 있게 대응하면서 카메룬 선수들의 ‘조급증’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고, 카메룬이 무질서한 경기를 펼치는 순간을 노려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성공시켜야 한다. 아프리카의 팀들이 경기 중 좋은 흐름과 나쁜 흐름의 편차가 비교적 극명하다는 점, 또한 이러한 연령대의 대회에서 조직력보다는 개인 전술에 더 많이 의존하곤 한다는 점도 활용해야만 한다. 우리의 8강 진출 여부가 상당한 정도로 이 승부의 결과에 영향받게 될 공산이 크지만, 바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카메룬보다 더 침착하고 영리해야 한다.

이탈리아전의 키워드는 ‘압박’이다. 이탈리아의 토마소 로키와 쥬세페 로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좀처럼 허비하지 않는 능력의 소유자들임을 감안하면, 미드필드에서부터의 적절한 압박을 통해 양질의 패스가 전방으로 공급되는 횟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수들에게 많은 공간을 주지 말아야만 함도 물론이다. 또 한편으로, 이탈리아 측면 수비수들의 잦은 오버래핑을 우리가 역습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온두라스와 벌일 조별 리그 최종전은 그 이전까지의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이겨야만 하고, 또 이길 수 있는 경기로 본다. 순발력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온두라스 수비 라인의 뒷 공간을 무너뜨리는 공격을 자주 시도해야 하며, 수비시에는 위험 지역에서의 불필요한 파울로 세트피스를 허용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조별 리그 통과에 성공을 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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