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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바꿨다고 가치관이 바뀌겠나? ‘한민족’ 잊은 적 없다”

재일동포 3세 이봉우 시네콰논 사장 / 일본에 한류 뿌린 인물로 평가받아 “지금 한국 영화는 일본 아줌마 위한 것. 그러니 무슨 좋은 영화 나오나”

도쿄.유재순(재일 언론인) ㅣ 승인 2008.08.12(Tue) 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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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제공

10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는데도 늘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본 땅에서…. 재일동포 3세인 이봉우(李鳳宇·48세) 시네콰논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 영화계에서 그는 ‘히트 제조기’ ‘영화 족집게’ ‘한국 영화 전도사’ ‘북한 영화 전문가’ 등으로 통한다. 직업도 프로듀서, 영화 제작자, 수입배급업자, 극장 대표 등 여러 개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시네콰논 코리아 지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봉우’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일본에 한류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 영화가 보잘 것 없는 취급을 받을 때 나서서 그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도쿄 시내 긴자 거리의 유명 극장주를 설득해 <서편제>(관객 동원 수 15만명)를 상영하게 했고, 이어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일본에 진출시켜 1백30만명을 동원함으로써 한류에 불을 당겼다.

그는 현재 아뮤즈극장, 아뮤즈시네콰논, 시네콰논 영화학교, 영화인재 파견회사 등 총 4개의 회사를 운영하며 수입·배급, 영화 제작, 극장 운영, 영화 교육 사업 등을 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서울 명동에 일본 영화 전용관인 ‘CQN’을 개관했다가 올 4월에 문을 닫았다. 그가 낯선 땅 일본에서 이렇게 유수한 메이저 영화제작사의 경영자로 성공할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봉우 사장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시네콰논에서 제작하는 영화마다 영화상을 휩쓸고 있다. 지금까지 총 몇 편을 만들었나? 그리고 대표적인 작품은?
모두 27편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해 유럽 영화까지 총 1백60여 편을 일본에 들여와 상영했다. 우리가만든 영화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노래자랑> <고> <박치기> <훌라 걸스> 등이다.

재일동포 3세, 그것도 일본인들의 반감이 심한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시네콰논에서 맨 처음 만든 영화는 같은 동포인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였다. 솔직히 그 영화는 우리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 도와준 덕분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원작자 양석일·각본가 정의신 씨를 포함해서 출연한 배우 상당수가 우리 재일동포 출신들이었다. 당시에는 돈도 없고, 그렇다고 주류인 일본인도 아니었기때문에 같은 재일동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영화는 일본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재일동포들의 어둡고 고달픈 일상을 하이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켜 그려냈다고 극찬을 받아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덕분에 그해 53개의 영화상을 모두 휩쓸었다.

지금은 누가 봐도 메이저 제작자로 성공해 명실공히 일본 영화계의 주류에속하는데,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또, 남다른 고충 같은 것은없었나?
재일동포 3, 4세들에게 영화에 대한 꿈을 갖게 하고 있다. 사실 <훌라걸스>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도 학생 시절에 영화를 하고 싶다고 나를 찾아온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동포 후배들에게 좋은 의미에서 자극이 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도 도요타 회장이 설립한 국제 ‘리더십주쿠’에 영화 담당 강사로 후쿠오카를 다녀왔는데,그곳의 학생들이 나를 알고 있어 놀랐다. 동포 학생은 물론 일본 학생들까지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 내심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꼈다.

어려움은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영화인 모두가 공통적으로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개인적인 어려움은 없다. 영화는 전문 영역이기 때문에 이념이나 아이덴티티 같은 문제는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덜하다. 그래서 동포 영화인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재일동포 출신 영화인들이 얼마나 되나?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말을 안 할 뿐이지, 톱스타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솔직하게 같은 동포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국적을 밝히는 문제는 소속사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한다. 특히 배우의 경우는 인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국적 공개를 말리기도 한다. 음악 쪽도 마찬가지다.

현재 재일동포들의 위상은 어떤가?
물론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예능이나 스포츠 분야에는 유독 동포들이 많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동포들은 일본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본인이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주류가 될 수도 있고, 과거처럼 아웃사이더로 남을 수도 있다. 1950~1960년대의 우리부모 세대들은 일본인들의 온갖 차별과 편견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그렇지만 2세들은 다르다. 부모들과는 달리 무조건 당하지는 않는다. 당당하게 잘잘못을 따질 줄 안다. 반면1970~1980년대 태생의 3, 4세들은 아예 처음부터 자기 목소리를 낸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눈치도 보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만든 영화<고>도 우리말을 잘 모르는 재일동포 3세 작가가 쓴 소설이다. 그 내용을 보면 발랄하다. 그것이 우리 3, 4세 동포들의 현주소다.

과거에는 일본에 북한 영화를 많이 소개했지 않나? 지금은 국적이 한국인데 불편한 점은?
국적은 <서편제>를 수입할 때 바꿨다. 하지만 내 아내는 아직도 조선 국적을 그대로 갖고 있다. 국적을 바꿨다고 해서 내 사상이나 이념, 그리고 가치관과 철학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국적을 바꾼 것은 영화인으로편하게 활동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외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것이다. 내가 민족학교인 조선대학교까지 나왔는데, 그 나카미(내용)까지 바뀌겠나?나는 내가 한민족임을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내가 북한 영화를 수입하지 않는 것은 일본에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할 것이 아닌가.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양쪽 모두 좋다. 지금도 모두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북한은 통신 또는 교통 여건상 한국처럼 자주 연락하거나 오가지 못하지만 필요할 때는 수시로 연락하고 있다.

국적을 바꾸고 일본인들과 영화를 공동 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처음에는 재일 3세라는 의식을 많이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재일동포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그와 연관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재일동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남북한 영화를 수입해 일본에 소개한 것도 그 연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인으로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탈북자들의 영화 이야기인 <크로싱>도 수입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그냥 영화적인 시선으로 봐야 한다. 영화를 아이덴티티나 이념의 잣대로 재기 시작하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화가 아니다.

한·일 영화계를 오가면서 제작자, 극장주, 수입·배급업자 입장에서 느낀 것이 많았을 텐데?
우선 시스템이 다르다. 한국 영화를 보면 1990년대에는 재미있고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영화가 한류 바람으로 인해 ‘일본 아줌마’ 영화로 변질되어 버렸다. 내용과 작품성은 없고 오직 한류 스타 중심의 영화로 바뀌고 있다. 말하자면 기획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류 스타를 좋아하는 아줌마들의 구미에 맞춰 배우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러니 무슨 좋은 영화를 만들겠는가?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좋은 영화를 일본에 소개해왔던 수입업자들이 손을 떼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수출가격이 20배로 올라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어 한국 영화를 수입하려는 영화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 영화에 손을 댔다가 도산 직전에 이른 사람도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 영화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1990년대 제작 분위기로 돌아와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요즘 일본에는 30, 40대의 남자 영화가 없다. 이들 세대는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만한 영화가 없어 못보고 있다. 만화가 원작인 <꽃보다 남자>같은 10대 영화 아니면, 50, 60대 아줌마들을 타깃으로 한 멜로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는 가능하면 앞으로 30, 40대들이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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