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정책으로는 양극화 못 잡는다
  • 권영준 (경희대 교수) ()
  • 승인 2008.08.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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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정 협의 과정에서 감세 정책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법인세 인하는 물론 종합부동세를 대폭 완화하고 주택재산세를 경감하는 이른바 부동산세제 정상화가 골자다. 소득세 경감 조치도 나온다. 중산층 이상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를 진작시키고 이를 통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이 투자 및 소비를 늘려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이 혜택을 보는 후방 침투 효과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는 지극히 타당한 방안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그 효과는 상당히 약하다. 대기업들은 돈이 남아돌아도 국내에서 더 이상 투자처를 찾지 못해 오히려 배당으로 내보내는 실정이고, 개인 부자들도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해외로 나가 소비를 즐기는 것이 현실이다.

감세 정책 잘못 펴면 망국적 투기 조장할 수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종부세가 소유자에게 징벌을 가하는 것이고 부동산 가격 안정 효과도 없기 때문에 폐지 또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가? 주택은 주거복지의 대상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나 행정법원에서 이런 법 정신에 따라 종부세를, 징벌이 아니고 건강한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합헌적 세제로 판결하고 있다. 또한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 인하 효과를 가져왔다.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에는 기준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징수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미미해서 2006년까지도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대상 기준가를 6억원으로 낮춘 후에는 본격적인 투기 방지 효과가 나타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났고, 현재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된 것도 금융 규제와 연합된 종부세 효과인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부 의원들은 종부세 부과 기준을 세대별에서 인별로 바꿔 9억원까지는 부과하지 않는 식으로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현재 갈 곳 없어 헤매는 부동자금을 투기판으로 끌어내는 망국적 투기 조장 정책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단계인데, 여기에다 집값까지 급등시킨다면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이 땅에서 무슨 희망을 갖고 살라는 말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지도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우리는 두터운 중산층 만들기에 전념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다. 미국발 세계 대공황까지 일으켰던 전임 후버 대통령이 극심한 양극화 상태에서 부자와 대기업들을 위해 실시했던 감세 정책이 오히려 경제 침체를 더 악화시킨 주범임을 간파한 루즈벨트는, 국민과의 새로운 협약인 뉴딜 정책을 통해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어 증세 정책으로 양극화를 해결했다.

대공황 직전 상위 0.1%가 미국 전체 부의 20%를 차지했으나 뉴딜 정책 이후 그 비율이 10%까지 떨어졌고, 이 덕분에 중산층의 양산과 함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미국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교육, 취업, 의료, 주거 등 모든 부문에서 하루 살기가 버거운 서민들을 구하기 위한 양극화 해소인가, 아니면 2% 부자들의 종부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인가?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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