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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지 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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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학교 추첨식 선발 방식으로 학무모들 ‘들썩’ … 준비 미흡해 서울에서 내년 개교는 어려워
▲ 서울시교육청에 국제중학교 설립을 신청한 대원중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로 수업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뉴시스

사교육 시장의 거점인 대치동, 목동, 분당, 일산 일대가 국제중학교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선거핵심공약으로 내세웠던 국제중학교 설립이 학부모들 사이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아직 교육과학부와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라며 확답을 피하고 있지만 학원가에서는 곧 국제중학교가 세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 일산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국제중학교 설립을 희망하는 학교재단들과 서울시교육청간에 모종의 협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설립 인가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에 국제중학교 설립을 신청한 곳은 대원중학교와 영훈중학교로 각각 160명을 선발해 국어와 국사만 제외하고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두 학교는 소수 영재를 위한 수월성교육을 통해 사교육의 영역이었던 인재교육을 공고육이 끌어안아 매년 1만명에 이르는 서울시 초등학생들의 유학을 막아 보겠다고 설립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취지가 무색하게 국제중학교 설립 논의 자체가 사교육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에서는 학원 주최의 입시 설명회가 줄줄이 열려 많은 학원들이 학생 모집을 마쳤고, 요즘에는 추가모집을 알리는 전단지가 돌고 있다.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모집 정원을 채웠는데도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평소보다 2~3배는 늘었다고 한다. 3년 전 개교한 경기도의 청심국제중학교에서 100명만 뽑을 때는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 냈지만 대원·영훈 두 중학교가 추가로 개교해 정원이 4백20명 정도로 늘어나면 한 번 해볼 만하다는 학부모들의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이 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교육청이 사교육 과열을 방지하겠다고 제안한 추첨식 선발 방식이 학부모들의 기대치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서울 목동의 학부모 계아무개(42)씨는 “1단계에 5배수를 뽑는다고 하는데 어떻게든 2천명 안에 들어가서 잘만 버티면 마지막 사정방식으로 예상되는 추첨에서 합격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국제중학교 열풍이 결국 학부모들에게 사행심까지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좋은 학원에 들어가려고 ‘학원 재수’하는 초등학생도

현재 국제중학교는 경기도와 부산에 두 곳이 있다. 국제중학교가 추가로 설립되어 달라질 사교육의 과열상은 두 학교의 입시 경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수도권에 있는 청심국제중학교는 입학 경쟁률이 20 대 1을 넘는다. 당연히 전문 입시 학원에 다니며 준비해야 경쟁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 좋은 학원에 들어가려고 몇 달간 ‘학원 재수’를 하는 초등학생도 있다. 일산세종국제학원 구본창 원장은 “2백명이 정원인데 20여 명은 학생회장 경력이 있고 80여 명은 토익이 9백점 이상이다. 주로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맞는 전국의 우등생들이 모인다”라고 설명했다. 이곳 학생들은 4학년부터 주중에 매일 3시간씩 인증시험 영어, 경시대회 수학, 면접용 시사와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국제중학교가 제대로 문을 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당장 학원가는 입시를 준비하려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지만, 내년 3월에 개교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는 거의 이루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택 교육감 역시 “내년 3월 개교는 빠듯하다”라고 실토한 바 있다. 실제 몇몇 국제중학교 교사들은 설령 교육과학부가 당장 설립을 승인하더라도 교과서 선택, 커리큘럼 확정, 원어민교사 확보 등이 없이 개교를 강행하면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중학교의 설립 목적은 ‘글로벌 인재양성’이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수월성 교육을 내세우지만 본질은 영어몰입교육에 가깝다. 문제는 높은 교과 수준을 요구하는 수월성 교육과 언어 습득에 중점을 둔 영어몰입교육은 양립하기 힘들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교육이 정체성마저 모호한 상황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보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그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공립 부산국제중학교의 사례만 보더라도 수월성 교육과 영어몰입교육을 동시에 하겠다는 주장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학교는 사회, 수학, 과학, 영문학 수업의 4분의 3을 한국교과서와 한국어로 진행하고 나머지만 원어민이 진행한다. 예를 들면 세계지리를 한국어로 배우되 북아메리카 지리를 배울 때만 원어민 강사와 영어자료를 활용하는 식이다.

이 학교 박인순 교감은 “영어 실력을 보고 선발한 아이들이지만 원어민이 아닌 이상 고난도의 교과 내용을 영어몰입교육으로 한다면 교육의 효율성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국제중학교가 외국인학교는 아니지 않은가. 외국 교과서로 북아메리카 지리만 가르치면 독도에 관한 교육은 언제 할 수 있겠는가. 국제중학교는 학생들이 국제적인 감각을 키워주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전교조가 교육과학부 정문 앞에서 서울시 교육청 국제중학교 설립 승인 불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제중학교 입시 위해 조기 유학 가는 아이들

영어 몰입교육을 하려면 선진국과 같이 자국의 교과서를 번역한 영어교재를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 3월 개교하겠다는 두 중학교의 경우 아직 입시 전형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결국 국제중학교가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입시용 특수목적중학교’를 세우는 결과를 빚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수목적고가 현재 고교 평준화정책과 함께 사라진 명문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명문중학교들이 나타나 초등학교에도 자연스럽게 입시경쟁을 도입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국제중학교 설립에 대한 찬반논란이 당분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교육학과 백순근 교수는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제2의 박태환이 나올 수 없다. 지금까지는 지나칠 정도로 교육의 형평성과 평등만 강조해 왔다. 국제중학교는 우수한 학생들의 전문성, 자율성,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뛰어난 학생이 개인적으로 사교육을 받는 것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박태환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닌가. 하지만 공교육이 앞장서서 사교육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원노조의 현인철 대변인은 “국제중학교가 초등학생들의 유학 수요를 흡수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국제중학교 입시를 위해 조기유학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국제중학교가 조기유학을 막는 역할을 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진정성마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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