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바람’에 떠는 후보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08.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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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도전자들, 섹스 스캔들에 시달리며 곤욕…민주당 에드워드가 가장 타격 클 듯
▲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와 존 에드워드(사진 오른쪽)가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

“외과의사의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후 남편이 환자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여성 이혼 전문가이자 상담가인 언론인 질 브루크가 던진 질문이다. 바람난 남편의 상대 여자 집을 찾아가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했던 얼마 전의 한국 여성들이라면 “당연하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브루크는 다시 질문한다. “2008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 지명을 노리는 존 에드워드가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도전했을 당시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던 아내 엘리자베스가 지지 유세에 참가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하십니까?” 브루크의 정답은 한 가지다. “아니다”다. 외과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것이 직업이듯 정치는 에드워드의 직업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남편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 출마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미국 유권자의 시각은 다르다. 에드워드를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부부는 사랑과 신뢰, 충성으로 이루어진 관계인데 에드워드는 신뢰를 노골적으로 저버렸다는 것이 비난의 골자다.

에드워드는 지난 2006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직후 선거 광고 영상 제작 때문에 만난 영상 제작자 리엘 헌터와 혼외 정사를 가졌다. 헌터는 지난 2월 딸을 출산했다. 딸의 이름은 아버지 성 대신 헌터의 성을 따랐다. 딸 프란시스 퀸 헌터의 아버지가 에드워드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에드워드 후보와 염문을 뿌린 리엘 헌터(인터넷 캡처 사진).

미국 유권자들, “신뢰할 수 없는 인물” 비난

에드워드는 줄곧 헌터와의 관계를 부인하다가 지난주 방송에 출연해 언론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거듭된 부인이 거짓말이었음을 사과했다. 그러나 프란시스가 자신의 딸인지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언했다.

에드워드는 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의 경우처럼 자신의 스캔들도 ‘개인적인 문제’로 봐주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번 에드워드의 혼외 정사 사건은 이번 여름부터 본격화할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흥미로운 전환점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요 선두 주자들이 모두 크고 작은 비슷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에드워드가 걸고 넘어간 존 매케인은 9년 전인 지난 1999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도전했을 때 30년 정도의 연령 차가 나는 비키 아이스먼과 정사를 가졌던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스먼은 당시 통신회사 로비스트로 매케인에게 접근했다. 매케인은 처음에는 이를 부인하다가 아이스먼을 만난 것을 시인하고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사과했다.

메케인은 첫 번째 부인 캐럴과 정식으로 이혼하기 전에 현 부인인 신디와 관계를 지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케인은 이 스캔들이 이번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물론 매케인과 아이스먼의 30년에 달하는 나이 차이가 세간의 의혹을 증폭시키지 못했고, 아이스먼 스스로 매케인과의 관계를 부인해 언론이 더 이상 흥미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매케인에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임에 분명하다.

매케인은 슬그머니 버락 오바마를 걸고 넘어졌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가 시카고의 법률회사 재직 당시 라본 로빈슨이라는 여직원에게 연애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고 흘렸다. 매케인측은 올 가을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오바마의 사람 됨됨이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키웠다. 오바마의 부인 미셀은 당시 같은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미셀 오바마는 이를 한마디로 묵살했다. 미셀은 이같은 공격을 흑색 선전이라고 일축하고 “나의 결혼 전 이름이 미셀 라본 로빈슨”이라고 덧붙였다. 미셀의 이 한마디에 오바마 스캔들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다른 데로 떠나버렸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경우 매케인·오바마와 달리 작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드는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의 러닝메이트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노스 캐럴라이너 주를 중심으로 한 남부의 지지 세력이 단단하고, 지난 2004년에는 대통령 선거 당시 존 케리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된 적이 있다. 에드워드는 이번에 부통령 후보를 차지하면 백악관 입성의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드워드의 낙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오바마와 막판까지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그의 러닝메이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남편 빌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몰렸을 때 남편을 지지했던 것이 다시 세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힐러리는 불륜을 용서한 것이 남편에 대한 충성이나 신뢰가 아닌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섹스도 진보적이냐” 민주당에 우스갯소리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양당 전당대회에서 러닝메이트가 확정되는 9월이 되면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섹스 스캔들이 과연 이번 대선전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선거 자체가 정강 정책을 비롯한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아 섹스 문제가 돌발적인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후보들 모두가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그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 매케인 공화당 후보(오른쪽)와 그의 부인 신디. ⓒAP연합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섹스 스캔들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던 인물은 민주당의 게리 하트와 에드워드 케네디다. 이들은 여자 문제로 인해 가장 유력했던 후보 지명전에서 퇴진해야 했다. 하트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망자들 가운데 압도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29세의 모델 도나 라이스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도되고 혼외 정사가 문제가 되자 1주일 만에 후보를 사퇴했다. 가장 유망했던 대통령 후보가 비참하게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1972년과 1974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이른바 채퍼퀴딕 사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달아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케네디는 1969년 여비서 메리 조 코페크니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가다가 채퍼퀴딕 섬의 한 다리에서 추락했다. 이 바람에 동승했던 코페크니가 사망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케네디는 당시 불륜 관계였던 코페크니를 의도적으로 살해하기 위해 위장 추락 사건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백악관 도전의 길을 접어야 했다.

미국 정치에서 섹스 스캔들의 진원지는 주로 민주당이라는 말이 있다. 하트와 케네디는 물론 빌 클린턴과 에드워드 모두가 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면 성문제에도 진보적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섹스를 쟁점으로 치러져서는 안 되겠지만 작지 않은 변수가 될 가능성은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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