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한 ‘신도시’냐, 김샌 ‘쉰 도시’냐
  • 박일한 (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08.08.26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8ᆞ21 부동산 대책, 시장 활성화 ‘약발’ 미미… 규제 완화 정책은 계속될 듯

▲ 국토해양부 이재영 주택토지실장이 신도시 추가 지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위). 왼쪽은 검단신도시 예정지 부동산 단속 현장. ⓒ연합뉴스

일요일이었던 지난 8월1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느닷없이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계획을 추석 전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은 내부적으로 일정한 그림을 갖고 있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리곤 “전매 제한 제도를 보완하고 주택 수요 확대 및 신규 주택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 있고, 재건축 규제 합리화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해 종합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이 발표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대변인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은 술렁거렸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 완화 대책을 기대하며 곧 나올 ‘추석 선물’을 기대하는 건설업계의 목소리부터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을 투기장화하려 한다는 시민단체의 우려까지 많은 반응이 쏟아졌다. 동시에 한나라당, 국토해양부 등에서 내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공식적이지 않은 규제 완화 계획이 하나 둘 공개되기 시작했다. 전매 제한 규제는 물론, 대출 규제, 재건축 규제, 세제 개편 계획까지 사실인 양 흘러나왔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왔다. 국토해양부는 8월21일 ‘8·21 부동산 대책’을 전격 발표했다. 추석을 앞둔 9월께나 되어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규제 완화 계획이 이날 공개된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명박 정부에서 그동안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을 포함시킨 대목이었다. 인천 검단신도시를 현재 1천1백20만㎡에서 1천8백10만㎡로 확대해 판교신도시의 두 배 크기로 만들고, 경기도 오산 세교2지구를 2백80만㎡에서 8백만㎡로 키워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세금 규제 완화나 대출 규제 완화 등은 계획에서 빠져 있었다.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내 불평을 터뜨렸다.


신도시 추가 지정으로 미분양 더 늘어날 가능성

사람들은 우선 이명박 정부가 당초 꺼렸던 신도시 건설 카드를 뽑아든 데 의아해했다. 이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신도시 조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필요한 곳에 공급을 늘리겠다’느니 ‘용적률을 높여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느니 하는 계획을 꾸준히 밝혀왔다. 때문에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나 강북 뉴타운 등의 집값이 크게 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돌연 인천 검단신도시와 오산 세교신도시 조성 계획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이 평소 신도시 조성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방침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돌출 계획’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는 수도권에서 필요한 연 30만 가구의 공급 물량을 채우려면 신도시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도심 재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를 추진했지만 부동산 값이 급등하는 등 쉽게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해 결국 공급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손쉬운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로 인해 건설사들이 분양을 하지 않고 있고, 이는 입주가 시작되는 2∼3년 후에 공급 감소로 나타나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도시 추가 지정은 단기간에는 오히려 미분양을 더욱 늘릴 가능성이 크다. 추가 지정된 오산 세교신도시와 인천 검단신도시는 모두 서울에서 50km 정도 거리로 도심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 지역은 수도권임에도 미분양 물량이 수백 가구씩 있다. 두 지역 모두 인근 신도시 공급 물량으로 과잉 공급이 우려된다. 인천 서구의 경우 김포신도시, 경제자유구역 3개 지구 등을 중심으로, 오산의 경우는 인근 동탄1·2신도시에서 2010년 이후 한꺼번에 분양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가 주택 공급이 줄자 궁여지책으로 신도시 카드를 들었지만 단기간에는 주택시장에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재건축 규제 완화나 전매 제한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시장 평가는 싸늘한 편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 대책은 오히려 재건축 시장에 ‘악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유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폐지’로 시장에 매물이 급증할 가능성이 커서다.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는 2003년 말부터 시작되어 4년 이상 이어져왔다. 오랫동안 꿈쩍도 하지 못했던 조합원들이 여건만 되면 본격적으로 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대책에는 용적률 상향 등 재건축 사업성을 높이는 조치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안전 진단 절차 간소화’ ‘층수 제한 완화’ 등의 조치도 사업성을 높이는 조치와는 무관하다. 단적인 예로 개포 주공아파트도 안전 진단은 통과했지만 수익성 때문에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층수 제한 완화는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이로써 오히려 조합원 분담금만 늘릴 가능성이 크다.

당장 사업성이 좋아질 가능성은 희미한 대신 매매가 좀더 편해진다면 급매물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자기 사업장에서 1∼2년 내 수익성을 높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급매물은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부동산 투자자들이 반길 규제 완화책 머지않아 나올 것”

수도권 전매 제한 기간을 완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번에 수도권에서 적용되고 있는 공공 택지 10년(85㎡ 이하)~7년(85㎡ 초과), 민간 택지 7년(85㎡ 이하)~5년(85㎡ 초과)의 전매 제한을 각각 3~5년씩 줄여 최장 1년에서 최대 7년으로 단축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조치가 거래에 다수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겠지만 시장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씨티은행 조성곤 전략영업센터장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0%에 달하하는 반면 집값은 오를 가능성이 없는데, 단지 거래가 좀더 자유로워졌다고 누가 돈을 빌려 매입에 나서겠냐”라고 주장했다. 지방 대부분 지역이 사실상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제를 받지 않지만 미분양이 급증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규제 완화 대책이 미약하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사실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당장 이달 말이나 내달 초 기획재정부가 세금 규제 완화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물론 당장은 종합부동산세 기준 상향 등의 조치는 나오기 어렵고, 1가구 1주택자 가운데 장기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소득세 공제율을 높이는 수준의 완화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직 강남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비판에 대비할 논리를 만들지 못했고, 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확신이 없어서다. 하지만 종부세조차도 전체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으며, 국토해양부의 경우 재건축 규제 완화를 위한 추가 대책 등 지속적으로 본격적인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 규제는 꾸준히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시장 상황을 보아가며 지속적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제로 “시장 상황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붙으면 재건축 용적률 상향이나 재건축 소형 및 임대 의무 비율 축소 등 사업성을 높이는 규제도 푼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반길 규제 완화 대책이 머지않아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올 하반기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본격적인 규제 완화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풀고 있는 여러 규제 완화 대책들이 향후 시장 상황이 호전될 경우 상호 작용하면서 큰 상승 효과를 낼 수도 있다”라고 예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