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 북’이 출판계 효자였다고?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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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가’ 무기로 이마트에 선보인 이후 서점까지 확산 … 출판계에는 별 소득 없어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해 9월 대형 할인점 이마트가 서적 코너에 선보인 ‘핸디 북’이 큰 인기를 얻자, 다른 대형 할인점들과 편의점들도 가세하고, 올해 들어 서점과 출판계에서도 직접 나서서 ‘핸디 북 열풍’을 만들었다. 언론도 ‘문고본 전쟁’이니 ‘미니멀리즘’이니 하는 용어들을 앞세워 ‘핸디 북 열풍’을 보도하기 바빴다. 마치 출판계에 획기적인 트렌드로 떠오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출판계의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비싼 책들을 거론하며 핸디 북이 사랑받는 이유가 저가임을 강조해, 출판계에 가격 인하 압력을 주는 듯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핸디 북 열풍’의 속내를 들추어보니, 겉만 보고 또는, 일부 성공 사례만 보고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될 듯하다. 출판계가 여전히 불황의 긴 골짜기를 걷고 있다는 목소리들이 더 많이 들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핸디 북을 기획해 출판한 임프린트코리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임프린트코리아는 지난해 9월 베스트셀러 위주로 12×17㎝의 작은 책을 제작해 이마트에 공급하게 되었다. 책을 축소하고 고급 표지 등 불필요한 부분들을 떨어내면서 제작 비용을 대폭 줄여 단가도 기존 책의 60% 이하로 낮추었다. 출판사와는 판권을 빌리는 조건으로 인세 계약처럼 해서 판매된 부분에 대해 정가의 20%를 주기로 했다. 출판계가 불황인 시점에 모험적인 시도였다.

이마트에 공급한 결과 고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7월 개장한 이마트 황학점에 핸디 북 코너를 개설하느라 바쁜 임프린트코리아의 정우영 팀장은 “20여 종을 냈던 초기 월 5만부가 팔려나갔는데, 현재 종수가 2백여 종으로 늘어나 월 10만부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핸디 북 매출액만 40억여 원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정팀장은 “문고본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데, 비슷한 책을 낸다고 되겠느냐는 우려 속에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판매 추이와 고객 성향을 분석해 리스크를 많이 줄였다”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육아ㆍ자기 계발 분야서로 재미

초기에 낸 책들이 다 좋은 반응을 보였을 리 없다. 책별로 들쑥날쑥한 매출을 분석하면서 임프린트코리아는 이마트 고객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팀장은 “베스트셀러를 핸디 북으로 만들면 무조건 성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마트를 찾는 고객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육아 등 자녀 교육서와 자기 계발서가 꾸준히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두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반 이상이다. <화내는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가 월 5천부 이상 나가고 있고,

<친구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 <사람을 얻는 기술> 등이 각각 월 3천부씩 나가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핸디 북이 강세를 보이면 출판사가 원래 펴낸 큰 책의 매출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정팀장은 “실제로 걱정을 한 출판사들이 있었다. 핸디 북을 직접 제작하는 입장도 아닌 출판사로서는 본 책 매출이 떨어지면 핸디 북에서 생긴 수입이 수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핸디 북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인터넷 서점의 본 책 판매가 더 늘어나는 등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핸디 북 열풍의 진원지가 된 이마트도 재미를 본 셈이다. 이마트 홍보팀 박태훈 대리는 “본사의 저가 정책과 맞아떨어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마트로서는 신상품 기획 중 하나가 맞아떨어진 것인데, 구색 맞추기 정도의 서적 코너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계기가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또 “종수가 늘어나 ‘신상품’이 계속 들어오면서 핸디 북 매대가 올리는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마트가 재미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자 다른 대형 할인점과 편의점 업체에서도 단독 기획 상품 등으로 개발하거나 출판사에서 공급받아 매대를 꾸미고 있다”라고 전했다.

핸디 북은 서점에서도 따로 코너를 만들어놓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출판유통발전협의회가 주도해 21개 출판사가 ‘보급판 문고본 대전’으로 1백1종을 한시적으로 내놓았다. 지난 6월에는 학고재·김영사·문이당·효형출판 등 17개 단행본 출판사들이 손잡고 ‘핸드 인 핸드 라이브러리’ 시리즈를 내놓았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위주로 6개 분야에 걸쳐 1백6권을 선보인 것이다.

대교문고 용산아이파크점 조정수 북자키는 “요즘은 출판사에서 신간을 낼 때 큰 책과 핸디 북을 동시에 출간하기도 한다. ‘핸드 인 핸드 라이브러리’ 말고도 출판사가 단독으로 핸디 북을 제작하기도 해 종수가 일시에 급증했다. 처음에는 핸디 북 코너만 따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종수가 많아져 각 코너에 흩어져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출판계 “종잇값 인상으로 저가 책 이문 없다”

유통업계는 재미를 보고 있는데,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출판업계도 핸디 북에 웃었을까. 학고재 박영민 영업부장은 “핸디 북과 관련해 몇몇 회사가 돈을 벌었겠지만, 출판사들이 핸디 북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핸디 북 시장이 새로운 시장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출판사들로서는 별로 환영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작게 제작한다고 해도 다른 비용은 그대로인 채 종잇값만 절약되는데, 정가를 내리면 이문이 더 줄어들기만 한다. 창고 비용도 늘어나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발송비도 안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고재 또한 ‘핸드 인 핸드 라이브러리’에 <입에 익은 우리 익은 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4종을 올렸다. 베스트셀러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좋은 ‘경험’을 한 셈이라고 박부장은 평가했다.

시들해져가던 베스트셀러를 핸디 북으로 내 다시 상승세를 탄 책들도 있다. 하지만 직접 출간하지 않은 핸디 북들은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출판계에는 별 소득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학고재 박부장이 출판계에서는 ‘반짝 유행’일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요즘 서점에 가보면 신간들이 핸디 북만큼은 아니라도 사이즈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단행본들이 그렇다. 굳이 핸디 북이 아니라도 작은 사이즈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것이다.

종이 유통 회사인 승일지업의 이병로 이사는 “지난해 말부터 종잇값이 인상되어 최근까지 30% 정도 올랐다. 올해 말까지 예상하면 40%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난해 가을 나온 핸디 북을 새로 인쇄할 경우 종잇값이 30% 올라 남는 것이 있을까 싶다. 또 새로 출간하는 핸디 북의 경우 정가를 올리면 핸디 북의 장점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출판계로서는 핸디 북이 어떤 돌파구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마트와 임프린트코리아가 합작해 국내에도 트렌드를 새롭게 창출해낸 핸디 북. 그들 ‘1년의 성공’이 서점과 출판계가 새로운 독자를 발견해내는 데 일익을 담당했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생긴 독자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마트 덕에 저가 책 또는 작은 책에 대한 독자의 수요가 크다는 것은 확인되었지만, 종잇값 상승과 매출 부진으로 허덕이는 출판계에 또 하나의 제살 깎아 먹기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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