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목청껏 노래했지만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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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ᆞ고환율 여파로 여행사 부도 잇따라…업계, “시장 재편 불가피” 한목소리
▲ 업계에 ‘연쇄 부도설’이 나도는 가운데 한 여행사의 사장이 자살했다.(위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시사저널 황문성

중소여행사들이 밀집한 서울 무교동 일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흘러넘치는 돈을 쓸어담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여행사 사장들이 부도를 맞았다거나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등 우울한 이야기가 잇달아 들린다. 일부 여행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설과 함께 감원 괴담이 나돌아 흉흉하기까지 하다.

여행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황 여파로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 한국관광협회중앙회 등 관련 단체는현재 “자료가 없다”라며 구체적인 현황 공개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여행사가 최근 경영난으로 부도를 냈거나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특별시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서울 지역에서만 6곳의 여행사가 부도를 냈다.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로 입지를 굳힌 하나로항공여행사를 비롯해 e-편한여행사, 투어랑여행사 등이 문을 닫았다. 지방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안 좋아 폐업 업체 수가 훨씬 많으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서울시 관광협회측은 연말까지 전국적으로 100개 안팎의 여행사가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적지 않다. 여행 경비를 미리 지급했다가 여행사가 부도나면서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최일태 서울시관광협회 회원지원 팀장은 “협회에서 관할 구청과 함께 부도난 여행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확인절차를 거쳐 채권을 변상해주고 있다. 올해만 100여 명으로부터 피해 접수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시장 재편설’ ‘연쇄부도설’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자본력이 약한 영세 업체들이 무너지고, 대형업체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리라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 여행사인 모두투어의 홍기정 부사장은 “해외 여행객 증가로 업계는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성장률이 제로에 가깝다. 영세 업체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뻔하다”라고 말했다.

▲ 성수기에도 한산했던 서울 무교동 일대 중소 여행사들이 속속 구조 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중소 여행사 사장, 경영난 못 이겨 자살하기도

김영민 세계투어 이사도 “여행업체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현재 등록된 1만1천여 개 여행사 중에서 규모를 갖춘 곳은 10%도 되지 않는다. 수익률이 떨어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이 중소 여행사들이다. 지금 같은 불황이 계속되면 시장 판도는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전춘섭 세계투어 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중견 여행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현재 상황이 1998년과 비슷하다. 고유가와 고환율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여행업계가 직격타를 맞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여행업계의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여름 휴가 시즌과 추석 연휴 기간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해외로 나가려는 여행객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특히 올해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려 업계에서 일정 부분 ‘여행 특수’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여행객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면서 평소만큼의 중국행 수요마저 없어져 중소 여행사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관련 협회도 “통계는 없지만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임재철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홍보실장은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여행업계다. 최근 고유가와 고환율 등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상당수 여행사가 부도났거나 부도날 위기에 처해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뚜렷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일련의 상황이 고유가나 고환율에 따른 소비 심리 하락으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일시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홍기종 모두투어 부사장은 “최근 악재가 많았지만 영업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예약률도 많이 좋아졌다. 10월 정도면 경기가 정상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관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 결국은 누가 먼저 망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임재철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홍보실장은 “추석이나 여름 휴가 시즌 동안 많게는 40% 가까이 여행객이 줄어든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다가 업계가 줄줄이 도산할지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도 그다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여행사의 발권 수수료(항공사가 항공권을 판매한 여행사에 지급하는 커미션)를 기존의 9%에서 7%로 낮춘다고 밝혔다. 오는 2010년까지는 발권 수수료를 완전히 폐지할 예정이다.

국내 중소 여행사의 경우 매출의 70~80%가 이 발권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사들이 장기적으로 수수료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수익 기반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이는 대형 여행업체도 마찬가지다. 하나투어나 모두투어를 제외한 상당수가 여전히 발권 대행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률 악화에 이어 발권 수수료마저 없어진다면 여행사들의 존립 기반은 허물어지게 된다.

무교동 일대의 중소 여행사들은 요즘, 사무실을 함께 쓰거나 직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업계의 관계자는 “대형 여행사 중 상당수가 현재 유급휴가제나 희망휴가제를 도입하는 등 긴축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라고 전했다.

몸집 불리던 대형 여행사들도 ‘비상 경영’ 급선회

업계에서는 이런 불황이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출혈 경쟁으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김영민 세계투어 이사는 “지난 2000년 하나투어가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 업계의 화두는 ‘덩치 키우기’였다. 시장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업체는 무분별하게 늘어났고, 덤핑 경쟁까지 하면서 제살깎기식의 경영에 몰두하다가 스스로 우물을 판 셈이다”라고 말했다.

세계투어는 최근 수익 모델을 개선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신문 광고를 통해 여행객을 모집하는 직판 영업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최근 대리점 영업으로 노선을 완전히 바꾸었다.

김이사는 “단순히 기획 상품을 만들어 파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장이 정체 상태에 돌입하면서 업계의 어려움이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으로부터 대행료를 받는 ‘서비스 피(Service Fee)’ 제도나 멤버십을 확대하는 등 연결 비즈니스를 개발해 수익 모델을 다변화할 때라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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