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소리‘반감’ 폭발시킨 한ᆞ중 국민 ‘소통의 다리’가 필요하다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8.09.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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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성숙한 공존ᆞ공영의 관계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뜨거운 문제로 떠오른 반한ᆞ반중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해묵은 ‘반한 감정’의 뿌리를 추적해보았다.

▲ 지난 8월 베이징올림픽 당시 중국 관중과 응원단들은 ‘일체’가 된 것처럼 한국 선수와 한국 응원단에 적대적 야유를 퍼부었다. ⓒ연합뉴스


최근 우리나라 언론 매체들은 중국 내에 반한 감정이 크게 불붙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올림픽 입장식 때부터 한국 팀에 대해 냉대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중국 관중들이 거의 모든 종목의 경기에서 한국팀의 상대방 팀을 계속 응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SBS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리허설을 몰래 촬영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이른바 ‘반한 감정’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다. 8강전에서 한국 축구팀이 이탈리아팀을 이겼을 때 중국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중국 관영 CCTV의 여자 아나운서는 이탈리아팀의 탈락에 눈물을 흘렸고, 많은 중국 축구팬들은 심판의 편파 판정을 문제 삼았다. 필자는 한국팀이 독일에게 준결승 경기에서 패했을 때 상하이의 한 중국 여성이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페인팅을 하고 다녔던 광경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이 무렵부터 한국이 정의롭지 못하게 승리를 도둑질했다는 인식이 중국인들 사이에 상당히 퍼지게 되었고, 이것이 상당한 정도의 반한 감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유럽 축구에 매료되어 있었고, 특히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한국 축구가 실력이 없으면서도 심판의 편파 판정에 힘입어 부정하게 승리를 ‘도둑질’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인들, ‘세계 제2 강국’이라는 평가 수용하지 않아

실로 중국은 오랜 역사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구가해왔다. 1750년대 청나라가 생산하는 상품은 당시 세계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32%를 점유했는데, 이에 반해 당시 영국은 겨우 1%를 갓 넘었을 뿐이다. 1800년 세계 상품에서 영국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3%였지만 청나라는 33%를 점하고 있었다. 영국이 처음으로 중국을 추월한 것은 1860년으로서 영국은 19.9%, 중국이 19.7%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중국이 세계 슈퍼 대국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오로지 최근세의 ‘매우 단기적인 시기’에 국한될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중국’으로서의 ‘중화주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구나 현재 욱일승천하는 국력 증강에 힘입어 중국인들의 긍지는 분명히 고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실제로는 아직 자신들이 세계적인 대국이 되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단지 최근 들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증가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현재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했다고 파악되지는 않는다.

2007년 프랑스의 한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0%를 넘는 유럽인들은 중국이 이미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 제2의 강국이라고 응답했다. 서방 세계라는 외부인들의 눈에 중국이라는 존재는 이미 이렇듯 강대국의 이미지로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 인식으로부터 서방 세계에 이른바 ‘중국위협론(The Theory of China Threat)’ 또는 ‘황화론(黃禍論)’이 광범하게 형성·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아직까지 세계 강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해인 2007년 11월 중국 <환추시보(環球時報)>에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서 “과연 중국은 세계 강대국인가?”라는 질문에 무려 80%가 넘는 중국 네티즌들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베이징 대학 장이우 교수는 “이 조사 결과는 중국인들이 이른바‘강대국’ 현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현재의 중국 발전에 ‘객관적인 자기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갈수록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인의 ‘현재 위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 루쉰 선생이 말한 대로 ‘불만은 향상(向上)의 초석이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부족에 대한 인식’은 미래 중국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다”라고 분석했다.

▲ 8월26일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숲을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중국 추월’에 대해 불편한 감정 가질 수 있어

막강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에 밀려 줄곧 수세적 상황에 몰리기만 했던 중국 공산당은 중국 동북 지역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동북 지역에서 초기 중국 공산당 당원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넘어간 ‘조선인’들이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김일성의 ‘영웅적인 항일 투쟁’도 대부분 중국 공산당이라는 기치 하에서 수행되었던 것이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도 태항산(太行山) 전투 등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하다가 목숨을 바쳤으며, 조선의 비행사로 이름을 떨쳤던 안창남도 중국 국민당의 항공부대에서 활동하다가 섬서 성의 타이위안(太原)에서 비행 사고로 숨졌다. 이렇게 중국 대륙에서 스러져간 ‘조선인’들은 무려 수만 명에 달한다. 한국인들은 항일 투쟁을 위해,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공산당에 소속되어(당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민족 구분을 떠나 본인의 소재지 공산당에 입당하도록 강제 규정되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처절하게 산화해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이 적지 않은 한국인들의 희생에 힘입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수천 년 전부터 문화적인 세례를 받아왔으며, 중국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좌파 세력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등 우파 세력에게도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는 등 항일 운동을 공동으로 전개하고 지원했다. 이러한 역사적 관련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최근 한국의 대외 투자 중 대중국 투자가 1위를 달리고, 중국이 한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으로 등장하는 등 현재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상당 부분 중국 경제의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있다.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등 한반도 평화 정세에서도 중국을 빼놓고서는 결코 논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한류(韓流)의 광범한 유행으로 대표되는 사회·문화적 교류도 날이 갈수록 확대·심화되고 있다. 실로 수천 년 동안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근린 국가로 공존해온 양국은 이제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불가분의 밀접한 근린 국가 관계로서 자리매김되었다.

다만 한국에 대해서는 수천 년 동안 이른바 조공 관계에 놓여 있으면서 주종 관계가 분명했던 만큼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근원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비록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깊숙이 받아왔지만 근세 이후 급속한 성장에 이어 대륙 침략을 진행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경계 심리, 최소한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한국이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훨씬 뛰어넘어 앞서서 달리고 있으며, 중국이 적지 않은 한국인들로부터 근거 없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재기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고 그와 동시에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투쟁과 희생의 실천 속에 실현시킨 장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단순히 미국의 원조와 도움에 의존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태도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견을 가진 시각일 뿐이다.

인터넷의 한ᆞ중 네티즌 공방을 침소봉대한 언론도 문제

최근 쓰촨 지진에 대해 한국 네티즌이 중국을 비난했다고 하여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커다란 동요가 인 것은 인터넷 언론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히 살펴보면 이는 한국의 어느 한 네티즌의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일 한 가지를 가지고 한국인 전체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침소봉대한 것이고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이는 서울에서 일어난 올림픽 성화 봉송 사건에서 빚어진 감정적 대립의 후유증으로 인해 ‘한국어를 아는 중국 유학생’이 한국 온라인에서 그러한 글을 발견하고 중국 인터넷에 전파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물론 이는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근거 없이 무시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한국인들도 이러한 측면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 및 사례를 보도하는 양국 언론의 태도다. 이러한 단순하고 사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무책임한 저널리즘의 태도야말로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상하이의 푸단(復旦) 대학 한국연구센터 주임 스위안화 교수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과 한국 관계와 관련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적지 않은 부정적인 측면이 언론에 의해 제기되고 있지만, 작금의 중·한 관계에서 기본면(基本面)은 매우 건강하고 양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양국 관계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측면에서 고찰되어져야 한다.

양국은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중국과는 적대적이었던 한국은 현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측면에서 교류가 비약적으로 심화·확대되었고 동시에 지금 이 시각에도 부단히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주류는 역시 양국 교류가 우호적으로 확대·심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8월31일 중국 쓰촨 성 남부 후이리 현의 한 마을에서 전날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을 둘러보던 노인이 울먹이고 있다(왼쪽).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중국 랴오닝 성 후안런 현에 위치한 오녀산성의 사적진열관 안내문에는 고구려를 ‘중국 고대 북방 소수 민족’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옆에 중국에 유리한 고구려사 연표가 걸려 있다(위). ⓒ연합뉴스 ⓒAP연합

비주류의 문제를 주류의 문제로 착시해서는 안 되며, 이를 심각한 차원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작은 문제를 큰 소동으로 확대시켜도 안 되고, 매스컴이 이를 선동하고 증폭시켜서도 안 된다. 특히 네티즌의 개인적 소견을 언론 매체들이 침소봉대해 양국 국민의 우호적인 감정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양국 학자들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이영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도 “양국의 사정을 잘 이해하는 양국 학자들이 함께 모여 양국의 각종 현안 문제를 조율하고 우호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지한파(知韓派)와 지중파(知中派)가 머리를 맞대고 우호적인 양국 관계를 모색하는 기구가 시급하게 조직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본래 근린 국가 관계란 상호 충돌과 갈등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역시 충돌과 갈등의 측면보다는 교류의 측면이 더욱 지배적이고 또 강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근린 국가란 한마디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중국 경제가 쇠퇴하면 우리 한국으로서도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역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혹은 안보 정세가 악화될 경우 중국도 자국의 경제 발전에 심각하게 불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무수한 전쟁과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상호 적대적 관계에 놓였던 유럽 국가들이 지금 유럽연합(EU)을 결성해 모두 함께 공존 공영할 수 있는 큰 틀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사실은, 동북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근린 국가로서의 상호 존중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건설적인 우호 관계의 정립에 의한 성숙한 공존이 시급한 시점이다.

다양하고 공식적인 접촉 창구를 통해 양국 국민의 소통 전개돼야

한 중국인 교수는 최근 사석에서 “동북공정만 없었다면 중국과 한국 관계가 지금쯤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양국 사정에 정통하고 세계 정세의 추세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지닌 양국 학자들이 공식적으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 간에는 양국 간 역사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중·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는 기구가 가동 중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 간 공식적 접촉뿐만 아니라 이른바 민간 차원의 제2 트랙(Track Ⅱ) 방식에 의한 한국과 중국의 다양하고도 공식적인 접촉 창구와 소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양국 국민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상호 공존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학습해나가야 할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에서 중국팀들이 중국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한국민들에게 뜨거운 환대와 응원을 받았었지만, 불과 20년 만에 반한·반중 감정이 커다란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현 상황은 양국 국민으로 하여금 지나온 과정을 차분하게 반추하고, 성숙한 공존 공영의 태도로써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해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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