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에서 ‘별’이 된 그녀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09.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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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MBC 창사 47주년 드라마에서 ‘폭발적 열연’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시대극…새로운 열풍 일으킬지 주목
▲ 어머니 이미숙(오른쪽 사진 가운데)과 형제로 나오는 송승헌(왼쪽 사진 오른쪽), 연정훈(왼쪽 사진 왼쪽)이 극의 중심이다. 위는 드라마의 한 장면.
<에덴의 동쪽>이 시작되었다. ‘MBC 창사 47주년 특별기획 드라마’라고 시작 전부터 엄청난 홍보가 이루어졌던 작품이다. 제작비가 2백50억원 규모라고 한다. 이 드라마가 ‘멋지게’ 등장하기 위해 <밤이면 밤마다>는 1회 연장 방영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첫 회를 뒤로 미루고 스페셜을 먼저 편성해 궁금증을 더했다.

과도한 기대는 실망을 낳기 쉬운 법이다. 보고 나서 실망하는 것까지 가기도 전에, 보기 전부터 시청자에게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두고 보자’라는 심리를 갖게 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개그도 “지금부터 정말 웃깁니다”라고 예고하면 웃길 것도 안 웃기는 법이다. <에덴의 동쪽>은 대작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래봤자 별 거 없을 걸?’ 하는 냉소와 함께 등장했다.

송승헌, 연정훈, 이다해, 한지혜 등 청춘 스타들이 출연하는 것 때문에 냉소가 더 강해졌다. 송승헌, 권상우를 전면에 내세운 대작 영화 <숙명>은 완성도에서도, 흥행에서도 실패해 청춘 스타의 대작에 대한 냉소를 부추겼다. 대작에는 그 거대한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연기력을 지닌 배우가 필요하다. 송강호가 꽃미남 청춘 스타가 아님에도 대작의 주연을 잇달아 맡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청춘 스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을까? 혹시, 그 청춘 스타들에게 맞춰 극의 성격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까? 대작은 보통 서사적인 무게감을 담게 마련이지만, 청춘 스타들이 소화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 중심의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하나 더 선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우려 때문에, 대작이라는 엄청난 홍보와 사전 기대감이 유포될수록 냉소도 커졌다. 그리고 <에덴의 동쪽>의 뚜껑이 열렸다.

우리가 살았던 한 시대 절절하게 그려

사극도 가벼운 퓨전이어야 통하는 시대다. 요즘에는 마치 게임에서 하나의 ‘미션’을 통과하듯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경쾌한 드라마들이 인기다. 대작이라는 <이산>도 그랬다. 아니면 남녀 주인공 사이의 알콩달콩한 감정선이 ‘주’가 된다. 남녀를 떠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깊은 감정은 보기 어렵고, 시대나 사회는 모두 ‘부’가 된다. <밤이면 밤마다>에서도 문화재는 ‘부’이고, 주인공끼리의 연애가 ‘주’였다.

뚜껑을 연 <에덴의 동쪽>은 오랜만에 보는 정통 시대극이었다. 아직 청춘 스타들이 나오는 본편으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극 초반만 놓고 본다면 <에덴의 동쪽>은 대작에 거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시대를 다룬 드라마로서 국민 드라마의 지위에까지 오른 <모래시계>를 떠올리게 했다.

<모래시계>는 극 초반 아역에서의 강렬한 존재감이 성인이 나오는 본편에까지 이어졌다. <에덴의 동쪽>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초반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1회 시청률 11%대로 출발해 MBC를 긴장시켰지만, 3회 때에는 15%대로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식객>은 여전히 동시간대 1위 자리를 고수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정체 상태였다. 또 다른 경쟁작인 <연애결혼>은 이 두 작품 틈바구니에서 최대의 피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는 얄밉도록 냉정하다. 관심 가는 이야기가 아니면 리모콘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에덴의 동쪽> 초반부에는 스타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연애결혼>에는 김지훈, 김민희라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지도 있는 스타가 나왔다. 무엇이 <에덴의 동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을까?

이 드라마 초반부에는 한국인이 살았던 한 시대가 절절히 그려졌다. 빈곤과 고난의 세월이었던 우리의 과거사가 <에덴의 동쪽>에서 생생히 살아났던 것이다. 남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에 시대가 배경으로 깔린 것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주인공으로 거대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주요 인물들은 평생토록 갈 강렬한 애증의 감정을 축적했다. 이것은 잔재미가 아닌 감동의 밑거름이 된다.

그 중심에 이미숙이 있었다. 이미숙이 그려내는 인물은 너무나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캐릭터 자체는 전혀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맛으로 승부하는 기호품의 얕은 맛과는 다른 진중한 울림이 있다. 연기자가 그 울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캐릭터는 도식적인 역할에 그칠 것이다. 이미숙의 폭발적 열연이 캐릭터를 살려냈다. 이미숙의 ‘포스’는 극을 완전히 장악했다.

‘민초의 한’을 고스란히 담은 어머니상

극 중에서 이미숙은 탄광 노조위원장의 부인이다. 극은 탄광 노조위원장인 이종원과 탄광소장이며 장차 회사를 물려받을 야심에 찬 조민기의 대립을 주축으로 형성되었다. 이종원은 광부의 권익을 위해 파업을 조직하려 한다. 조민기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분쇄하려 한다. 그것은 결국 이종원의 생명을 앗아가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종원이 광부들과 함께 샤워를 하며 <광부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단지 노래 한 곡, 혹은 한 장면의 잘된 구성 차원의 힘이 아니었다. 자본 축적을 위해 노동자가 억압받았던 한국 현대사, 그 고통의 무게가 그 장면에 함께 실렸다. 이종원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고통이므로 그 울림이 컸던 것이다. 이 서사적 울림이 전편을 관통했다.

이미숙의 고통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이종원의 양 어깨에 패인 광부의 상처는 그가 고난을 겪는 민초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는 지식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엘리트다. 비록 금력과 권력은 없으나 그는 일반적인 민초에게는 없는 지식과 사회과학적 신념을 지녔다. 그것이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이미숙은 그런 특별한 존재를 사랑한다. 아니, 존경한다. 이미숙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이미숙이야말로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며, 동시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한국의 전형적인 민초다. 이미숙은 본인이 ‘무지렁이’라서, 그 자격지심 때문에 평생 이종원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못한다.

그런 이미숙이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종원이 탄광소장의 흉계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서다. 이미숙이 정신을 잃은 이종원의 손을 부여잡고 ‘나 같은 무지렁이는 감히 좋아한다고 말도 못할 만큼 그렇게 당신을 좋아혔는디…. 내는, 내는 사실 말도 못할 만큼이었어…’라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고난의 현대사, 상처 많은 민족이다.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마디는 ‘한’이다. 요즘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어머니나 주부의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른, 저 심연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 <에덴의 동쪽>에서 이미숙이 그것을 건드렸다. 그것은 드라마의 구성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덴의 동쪽> 초반부는 정말 오랜만에 정통 시대극의 힘을 느끼게 했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이것이 송승헌 등 성인 연기자 등장 이후의 본편을 기대하게 한다. 그때도 과연 지금의 감동이 이어질 수 있을까? 모처럼 기대되는 시대극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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