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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관계 개선은 우리의 운명”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 “건강 이상ᆞ포스트 김정일 등 지나친 관심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아”

안성모.김회권 ㅣ 승인 2008.09.23(Tue) 13: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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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영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 각국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김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물론 후계 구도나 북한 집권층의 움직임 등이 주변 정세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한 사회도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은 김위원장의 유고와 관련한 대응책을 내놓으라고 정부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특히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은 삼가는 것이 좋다”라며 차분히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걸쳐 통일부 수장을 지낸 정 전 장관은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을 모토로 내세웠던 햇볕 정책의 산 증인이다. 현재 4년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9월19일 여의도 민화협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어떻다고 보나?
열흘 가까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급변 사태니 권력 공백이니 보도했던 일부 언론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난 9월11일 장남인 김정남이 베이징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가 직무를 못할 정도로 위독하거나 중대한 병고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있겠나. 상황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 언론의 반응은 어땠다고 평가하나?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 정부도 말을 아꼈고, 중국 정부는 일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김하중 통일부장관의 경우 국회에 나와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모범 답안이다. 지금은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의 운명이다. 비켜갈 수 없다. 남남으로 살 수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관계를 맺으면서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정부의 대응책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대응책이 왜 없겠나. 서로가 상황을 주도하려는 상황에서 남측도 북측도 다 가지고 있다. 상식이다. 그것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 비상 대책)은 개인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다 밝히라고 하는 것은 국가 경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작계 5029’와 관련해서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바꿔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제 ‘작계 5029’의 골격은 다 알려지지 않았나. 결국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국가 경영 차원에서는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법이다.

‘포스트 김정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단 전제를 달아야 한다. 지금 시기에 ‘포스트 김정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히 남북 관계를 다루거나 북측과 접촉해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자극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남북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전제속에서 김정일 위원장 이후의 북한 정치 체제를 전망한다면, 그 시점에 북한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며, 또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치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불안정할 수도 있고 새로운리더십이 연착륙할 수도 있다. 북한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미국 대선 결과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오바마가 승리할 경우 미국의 대북 관계가 지금보다 부드러워질 것으로 보이고, 매케인이 될 경우는 부시 정부 초기 못지않게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전개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핵 문제가 그동안의 힘겨운 협상을 통해 많이 해결되었다. 이제 고개만 넘으면 된다. 그런데 7월 말에서 8월 초 미국이 특별사찰(불시사찰포함)을 요구하며 강하게 나왔고, 북한이 노골적으로 반발하면서 다시힘겨루기를 했었다. 최근 중국이 중재에 나서서 그럭저럭 해결 국면으로 가고 있지 않나 싶다. 핵문제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북·미 관계도 점점 개선되는 방향으로 간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 체제는 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 관계가 좋아지면 특별히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은 줄어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리더십이 교체가 된다면 한때 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새로운 권력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를안정시키려는 기본 입장을 취할 것이다. 김위원장 시절에는 벼랑 끝 전술도 취했지만 새로운 권력의 경우 좀더 유연한 자세를 취하지 않겠나.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연하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가 그 권력이 붕괴되면 집단지도체제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후 다시 소수로권력이 집중되고 결국에는 한 사람만이 남는다. 북한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선군정치’를 펼쳐온 북한의 현재 상황을 봐서는 국방위원회가 권력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국방위원회가 모든 사안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김위원장은 경제와 외교의 경우 내각에 있는 전문 관료들을 활용했다. 김위원장의 지시면 몰라도 이들이 김위원장이 없는 상황이라면 국방위원회의 지시를 따를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경제나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서 관료의 말을 몇 번 따르다보면 권력 중심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권력은 인민에게 빵을 줄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3대 세습’에 대해서는 김위원장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하는데.
2004년 12월 베이징에서 북한과 관련한 고급 정보를 가진 연구기관의 책임자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들은 그정보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었다. 김위원장의 참모들이 ‘이제는 후계자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니’라고 하니까, 김위원장이 ‘그게 내 대까지 되겠느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김위원장이 상황파악을 정확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점이 정확한 상황파악이라는 말인가?
김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1970년대의상황과 지금의 북한 상황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부터 그렇다. 당시에는 북쪽이 우리보다 잘 살던시대였다. 북쪽 사회가 자신만만할 시기여서 “대를 이어 혁명을 완수하자”라는 구호가 인민에게 먹힐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또, 남북 교류 협력이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북한 사회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변했다. 엄청난 사회·문화적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04년 4월에 개정된 형법을 보면 경제와 사회 관련 처벌 조항이 대폭 늘었다. 그런데 추가된 조항은 사회주의형 범죄가 아니라 자본주의형 범죄를 대상으로 하고있다. 대부분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라 개방적인 사회에서 벌어진 범죄에 관한 것들이다. 북한 사회가 개방이 되다 보니까 ‘3대 세습까지 인민들이 허용하겠느냐’라는 것이 김위원장의 생각인 것으로 여겨진다. 권력에 대한 욕구도 김위원장과 비교했을 때 김정남을 비롯한 아들들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정책의 기본 방향이 초기에는 ‘비핵·개방 3000’으로 요약되었는데 8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상생·공영’ 정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적으로 본다.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는데 차라리 그것이 더 낫다. ‘상생·공영’이라는 이름을 걸어놓고 앞으로 현실에 맞게 남북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햇볕 정책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국민 여론이 정부가 ‘상생·공영’ 정책으로 옮겨가도록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럼 안에 채워질 정책의 내용이나 기조는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나?
우선 남북 관계와 핵문제는 연결 지을 것이 아니라 병행하는 것이 좋다. 핵문제는 다자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지연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 거기에 남북 관계를 걸어놓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우선 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지금과는 반대로 남북 관계를 한·미 관계보다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한·미 관계는 상수이다. 언제나 기본적으로 고려한다.

그러니 변수인 남북 관계로 시작해 북·미 관계를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가 좋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는 6·15 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 의사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밝히면 풀 수 있다. 우리는 많은 합의서 중 둘이라고 말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김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두 건의 문서이다. 북측의 정치문화를 고려할 때 그것을 무시해서는 대화를 재개할 수가 없다.

민화협이 10주년을 맞았는데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아직 해소되지 못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햇볕 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면서 ‘퍼주기’라고 하는데, 대북 지원의 결과가 돌아오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이 자본을 투자해 이익을 얻으려고 해도 보통 몇 년이 걸리지 않나. 통일이라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긴 사업이다.

지난 6~7년 동안 대북 지원을 한 것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분단 상태에서 각자 살아가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서독 사례를 봐도 그렇다. 우리의 경우 남북협력기금으로 국회 심의를 받는 것이 5억 달러 정도인데, 당시 서독의 경우 연간 1백20억~1백30억 달러를 동독에 지원했다. 이를 통해 동독의 민심을 서독으로 오게끔 해서 통일이 된 것이다. ‘퍼주기’라는 말을 하려면 통일이라는 말은 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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