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퇴각 나팔' 김 빠지는 소리
  • 이경호 (파이낸셜뉴스 건설부동산부 기자) ()
  • 승인 2008.09.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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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와대 밀어붙이기에 여는 헷갈리고 야는 결사반대…계층 간 갈등 더 벌어질 수도

광우병 파동으로 불붙었던 촛불이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인하를 기화로 다시 한 번 타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가 부동산 부자에게 메기는 종부세의 부과 대상과 세율을 낮추려 하자 서민과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학계, 정치권이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종부세를 낮추려는 정부와 청와대의 신념은 확고해 보인다. 아예 이번 기회에 종부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 국회 앞에서 토지주택공공성넷,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종부세 인하를 둘러싼 찬반 양론은 정치권도 휩쓸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물론 종부세 인하에 합의했던 여당 내에서조차 종부세 인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 사이에서도 종부세 인하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부세가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양극화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부동산 부자들을 겨냥한 ‘부자세’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종부세가, 입장에 따라 조세 정의를 위한 특수세와 부자세로 해석되면서 계층 간의 갈등을 나타내는 전선이 되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조세 정의의 실현을 위해 지난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산세와는 별개로 공시지가 기준 6억원 이상 고가 주택에 대해 일정액의 세금을 더 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 ⓒ연합뉴스
종부세는 조세 정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부동산 값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고가 주택을 갖고 있을 때 세금을 많이 물리면 고가 주택에 대한 가수요가 줄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몽상으로 끝났다. 종부세를 도입하고도 주택 가격은 더 뛰었다. 종부세의 부과기준을 9억원 초과로 잡았던 지난 2005년 종부세 도입 당시는 물론 2006년 부과 기준을 6억원 초과로 강화했어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 광풍은 주택담보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LTV(담보대출인정비율)와 소득에 따른 대출 이자 상환액을 제한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요건을 강화한 뒤 한풀 꺾였다.

집값 안정 장치로써 기능하지 못하는 종부세는 조세 정의 차원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뚜렷한 소득이 없는 고령자나 집 한 채 밖에 없는 저소득자의 경우 빚을 내서 세금을 낼 수밖에 없어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정의에만 집착한 나머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집값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빚내서 세금을 내는 꼴이 된 것이다. 이제 종부세는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민을, 종부세를 거부하는 부자 집단과 옹호하는 가난한 집단으로 편을 가르는 수단이 된 것이다. 미래 한국 사회에 핵폭탄과 같은 파괴력으로 갈등을 불러올 뇌관, 양극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셈이다.

종부세 개편을 앞두고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당정 협의를 거쳐 발표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에 대해 여당이 다시 당론을 수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이미 확정해 발표한 종부세 개편안에 대해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다시 수렴했다. 국민은 의아해하고 있다. 당내에서조차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내용을 정부와 합의해 확정한 것처럼 발표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 당직자의 의견만 반영된 일종의 ‘여론 떠보기식’ 촌극인지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정책 추진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거대 여당으로 재탄생한 한나라당은 종부세 인하안을 두고 자중지란의 모습까지 연출하고 있다. 고위 당직자조차 종부세 인하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개혁 성향의 초선 의원 10여 명은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안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라며 반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조세 원칙과 보유 세제의 일반 원칙에 맞지 않는 종부세 제도는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종부세 인하에 대해 원론적 찬성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과세 기준 금액 상향 조정, 세율 인하와 과표 조정 등 전면적인 개편은 헌재 판결 이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추진해야 한다”라며 종부세 개편의 전제 조건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제시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역시 “국회의원들은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신중론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적 공감대를 두고 의견 절충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종부세 인하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당론이 ‘포퓰리즘(집단인기 영합주의)’에 흔들린다며 반발하는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당정이 마련한 종부세 개편안은 종부세 부과 대상을 현행 공시가격 기준 6억원 초과 주택에서 현행 공시 가격의 80%를 기준으로 상하 20% 범위 안에서 주택의 가격을 결정하는 공정시장가액 기준 9억원 초과 주택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주요 내용이다. 65세 이상 1주택자에 대해서는 종부세를 감면해주고, 과표 적용률은 80%로 동결하는 한편, 세 부담 상한율을 3백%에서 1백50%로 낮추는 내용도 들어 있지만 이들 내용에 대해서는 당정 안팎에서 이견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종부세 부과 대상의 주택 가격 기준이 종부세 인하 파장으로 인한 갈등 해결의 단초가 된다.

전문가들 “6억원 유지해도 세율 낮출 수단 많다”

사회적 갈등을 빨리 봉합하기를 바라는 전문가들은 갈등 요인인 부과 대상을 지금과 같이 6억원으로 유지해도 세율을 낮출 수단은 많다며 정부 안의 수정을 주문하고 있다. 즉, 당정 합의대로 공정시장가액을 도입하면 집값이 현행 공시가격의 60% 선으로 떨어지고, 여기에다 2010년에 농어촌 특별세가 폐지되면 종부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지금과 같이 세대별이 아닌 인별 합산을 도입하면 12억원까지 종부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종부세 부담을 더욱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이다.정부는 당정 협의에서 마련한 종부세 개편안의 수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최근 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 안에서 많은 토론을 거쳤고, 정부는 원안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입법 예고 과정이 우리 부의 의견을 중심으로 하지만,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기에 나중에 수정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정부가 탄력적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해달라”라고 말해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수정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종부세 개편안은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헌재의 위헌 여부 판결이 나온 뒤 정기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항목이 수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종부세를 없애고 대신 재산세를 부과하는 주택의 과표 구간과 세율을 조정해 종부세를 흡수하는 방안은 더 강한 국민적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세간의 우려대로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부족한 세 수입을 재산세를 높여 추징하는 방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지만 부족한 세수를 메울 구체적인 방안도 아직은 제시된 것이 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재산세를 올려서 종부세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는 아직까지는 립서비스일 뿐 정부가 세수를 앞장서서 포기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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