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여의도를 못 믿고 한나라당은 '중심'을 못 찾고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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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드라이브 시동 건 여권, 대통령 밀어붙이기에 눈치보다 "일 날라"
▲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한승수 총리와 한나라당 박희대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4년전 열린우리당을 보는 것 같다.” 최근 종합부동산세 완화 문제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한나라당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1백72석을 지닌 거대 여당이 정부 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면서 내부 진통을 겪었던 과거 여당과 닮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도하고 당이 끌려 다니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 충분한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정 운영을 위한 역할 분담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이 정책 드라이브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중점적으로 처리할 법안을 선정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주요 법안을 4백92개로 정했고, 이 중 국정과제 이행 관련 법안, 민생 관련 법안, 규제 개혁 관련 법안 등 2백1건을 반드시 처리할 법안으로 꼽았다.
특히 청와대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비롯한 44개 법안을 ‘대통령실 중점 관리 대상 법률안’으로 분류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줄 것을 한나라당에 요청했다. 주요 법안을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챙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여권의 ‘정책 대공세’는 사실상 청와대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청와대, 44개 법안 통과시켜달라 주문

▲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청와대가 4개 분야로 분류한 중점 법안 대부분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감세와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14건이 ‘경제 살리기’, 채권 추심을 위한 심야 방문 및 전화 금지 등 5건이 ‘생활 공감’, 교원평가제 도입, 종합유선방송사업 소유 제한 완화 등 14건이 ‘미래 준비’, 신문·방송 겸영 및 교차 소유 규제 완화, 인터넷 포털의 언론중재법 적용 등 11건이 ‘선진화’ 법안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우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청와대가 처리를 요청한 법안 상당수가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들 법안을 ‘사오정 법안’으로 규정하며 “중산층과 서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법안이다”라고 비난했다. 박영선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경제 살리기와 관련된 총 14건의 법안은 서민경제와는 무관한 재벌 살리기 입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선진화 입법이라고 규정된 11건은 대부분 후진화 입법, 독재 시대 회귀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생활 공감 입법 5건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첫 오찬 회담에서도 입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9월25일 열린 영수회담에서 국정 동반자로서 주요 국정 현안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지만 경제 정책을 비롯한 국정 운영 기조에 관해서는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정대표는 회담 후 “각종 세제나 국가 균형발전 등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 구할지도 난제이지만 여당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는 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확고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종부세 개편을 놓고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 당 지도부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는 정부의 입법 예고안에 대해 반대 의견이 쏟아지자 입장이 오락가락했다. 박희태 당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정부 입장을 수긍한 반면, 홍준표 원내대표는 마뜩치 않은 반응을 보여 지도부 간에도 입장이 달랐다.

전체 의원을 대상으로 이틀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소동’ 끝에 일단 정부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갈등 요소는 여전히 남았다. ‘종부세는 잘못된 법체계를 가진 세금이다’라는 공감대와 ‘정부 안을 여당이 반대해서는 곤란하다’라는 지적에 따라 갈등 국면은 진정되었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종부세 감면은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 21’은 “새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정책의 우선 순위가 잘 가려지고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번 종부세 개편안은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안으로 그 원안 수용은 어렵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초선 의원 모임 “종부세 개편안 원안 수용 어렵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강공 드라이브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종부세 개편안은 정부의 경제 수장인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장관은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것은 괜찮은 거냐”라고 되받기도 했다. ‘MB노믹스’를 설계한 강장관이 밀어붙인 만큼 사실상 이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내 논란이 일자 이대통령이 직접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내에는 ‘대통령 지시에 무작정 따른다’라는 비판이 일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거수기 정당’이라는 야당의 공세에 휘말릴 경우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이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개편을 밀어붙이는 데는 ‘현행 종부세에 문제가 있다’라는 기본 인식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관 대변인이 “종부세는 잘못된 징벌적 과세로 단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러한 이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취임 직후 맞은 ‘촛불 정국’으로 인해 ‘MB식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자신감도 한몫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론에 민감한 의원들의 입장은 대통령과 다를 수 있다. 종부세 논란이 불거진 이후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주간 정례조사에서 ‘종부세 완화 조치는 잘못되었다’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65.7%에 이르렀다. 덩달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전주에 비해 3.4% 포인트 하락한 25.6%를 기록했다.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는 10.2% 포인트나 상승해 65.3%로 치솟았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지율 변화보다 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더 중요시할 수 있지만, 다음 선거를 대비해야 하는 의원들로서는 여론의 역풍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여권의 ‘정책 공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의 ‘밀어붙이기’는 그 힘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대통령 입장에서는 주요 법안을 직접 챙기면서 국정 운영의 틀을 다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황인상 피앤씨(P&C)정책개발원 대표는 “이명박식 정책을 보여주겠다는 입장에서 성과를 빨리 내고 싶고, 이를 통해 성장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어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황대표는 “이대통령 입장에서는 여러 색깔을 섞어 펼치기보다 기존에 준비했던 정책으로 승부를 가져가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여권 내부의 이견 돌출이 더 문제

그런 만큼 이번 종부세 논란과 같은 여권 내 ‘불협화음’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황대표는 “정권 초기에는 청와대 중심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으로서는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대비해 여론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또 당내 계파별로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초거대 정당에서 다양한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야당의 ‘발목 잡기’보다 여권 내부의 ‘이견 돌출’이 정책 드라이브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민주당은 물리적 저지를 통해 법안 통과를 막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질 것은 따지면서 선명한 입장을 내놓겠지만 책임은 여당에게 있다는 식으로 물러설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법안 통과는 여권 내부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정·청 간 의견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렸다. 황인상 대표는 “당의 정책 기능을 조율할 원내대표가 이미 권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라 여권의 균열은 초반부터 불가피해졌다. 그런 만큼 친이 세력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이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내 정치 권력의 분화를 촉진하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황대표는 “청와대의 정무 기능과 손상된 당 지도부의 조정 기능을 매칭시키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당 따로 정부 따로 갈 수도 있다”라고 예상했다.
김능구 대표도 “당 권력의 중심이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내부 진통을 겪을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당 지도부가 상처를 입을 만큼 입어서 교통 정리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김대표는 “당내 한편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당내 이견이 나오는 것은 한나라당이 이전보다 건강해졌다는 의미이다. 여당이 정부 안을 아무 의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진일보한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이후 정책은 당·청 간에 상당한 조율을 통해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정부 안이 좌절될 수 있겠지만 이를 갈등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회동을 갖기 위해 청와대 오찬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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