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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거리 평양은 '일없었다'

'김정일 와병설' 이후 첫 북한 방문 취재/시민들, 여유 즐기면 대동강변에서 낚시질도.. 교외로 나갈수록 어려운 경제 형편 드러나

소종섭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9.30(Tue) 13: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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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주간지로는 단독으로 ‘김정일 와병설’ 이후 처음 평양을 다녀왔다. 평온한 일상 속에 건설 붐이 이는 평양의 모습을 현지 취재했다. ‘와병설’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력은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은 그런 소식 자체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외관상 활기가 넘치는 평양과 달리 외곽으로 갈수록 말로만 듣던 경제난이 피부로 다가왔다. 노동력의 근간은 군인들이었고, 들판에 중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남북 관계의 경색에도 불구하고 민간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김정일 와병설 이후의 평양’(36~39쪽), ‘사진으로 본 평양과 백두산의 풍경’(40~43쪽), ‘정성의학센터 종합품질관리실과 조선적십자중앙병원 이비인후과·두경부외과 수술장 준공식’(44쪽) 순으로 ‘평양 특집’을 싣는다.

   
▲ 두 소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개선문 옆을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소종섭

평양은 평온했다. 출근 시간에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휴일 대동강 강변에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평양 시내 곳곳에는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강성대국’ 등의 구호가 요란했고, 거대한 김일성 동상과 벽화가 공간을 장식했지만,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군인들의 모습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최소한 겉으로 볼 때 ‘김정일 와병설’과 관련해 평양에서 특별한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기자는 지난 9월20일부터 9월23일까지 3박4일간 시민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함께 북한의 평양과 백두산을 방문했다. 이 단체가 방북한 것은 북한의 대표적인 제약연구소 겸 의약품 생산 공장인 정성의학센터 종합품질관리실 준공식과 북한 최대의 병원인 조선적십자병원 이비인후과·두경부외과 수술장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 인민대학습당에서 바라본 9월23일 오전 평양 승리거리의 표정.
ⓒ시사저널 불교닷컴제공


1백29명의 방북단은 <시사저널>을 비롯해 KBS·MBC·SBS·YTN·연합뉴스·한겨레·문화일보·불교신문·불교닷컴 등 언론사와 국민연금관 리공단 관계자 등 후원자들로 구성되었다. 방북단은 서울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이용했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해 서해로 나가 바닷길을 거슬러 올라간 뒤 항로를 오른쪽으로 틀어 평양공항에 착륙했다. 비행 시간은 50분. 지난 7월 금강산 관광객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난 뒤 직항로를 이용해 이루어진 첫 대규모 방북이었다.

와병설에 대해 묻자 “왜 이렇게 신경 쓰느냐” 힐난

‘금강산 피살 사건’과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이후 이루어진 첫 대규모 방북이어서인지 남북 양측은 방북 전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애초 북측은 ‘방송사를 제외한 언론사들의 취재 불허’를 통보했다. 남측이 항의하자 다시 “문화일보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주최측이 나서서 풀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몇몇 언론사는 방북 길에 오르지 못했다. 북측은 방송을 통해 ‘평양은 이상 없다’라는 분위기만 전달되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찬장에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약칭 민화협) 관계자들은 한 테이블에 한두 명씩 앉아 남측 인사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유독 기자들이 있는 테이블에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급적 남측 언론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이동하는 중에도 버스에 민화협 관계자가 네 명이나 탔다.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보통 두 명이 타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북측은 조선적십자병원 수술장 준공식에서 북측 관계자와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방송사들의 관련 화면을 지웠다.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선명히 나온 몇 장면도 함께 잘려나갔다.

신경을 쓰기는 남측도 마찬가지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사전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관계자에게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평양에 가면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했다. 고려항공을 이용하려는 주최측에게 대한한공을 이용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과 관련한 특별한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9월20일 있은 북측의 환영 만찬 자리에서 북측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최완규 공동대표는 “강하게 부인하지는 않았다. 모르겠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북측 이충복 민화협 부회장이 “남측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느냐”라며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했을 뿐, 엉터리라는 식으로 강하게 부인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도 김정일 위원장의 소식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 9월23일자 <로동신문>은 김위원장이 어머니인 김정숙의 동상에 화환을 보낸 사실을 내보내고 사진을 실었다. 여느 때처럼 정상적으로 집무를 보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평양은 여전히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거리는 활기차 보였다. 평양역 주변을 네 번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공원에 많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밑에 누워 잠자는 시민들도 많았다. 버스에 동승한 민화협의 한 아무개 참사는 “기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보았던 곳 중에서는 평양역과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거리 곳곳에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쓴 여성들이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했다. 길거리에는 아이스크림과 주스를 파는 상점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포장마차처럼 차려놓았는데 ‘청량음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평양국제영화축전에 참가한 외국인들도 눈에 띄어

거리는 온통 걷는 사람들이었다. 간간이 궤도전차가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걷는 사람들이었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1km가 넘는 ‘충성의 다리’ 양쪽을 오가는 평양 시민들의 도보 행렬은 낯설었다. 이따금 승용차가 지나갔지만 흔히 볼 수는 없었다. 2층 버스나 연결버스, 궤도전차는 사람들로 붐볐다. 공중전화와 버스 정류장에서는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트럭 등이 길거리에서 고장 나 수리를 하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여전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듯 밤에는 가로등이 꺼졌고, 국립중앙도서관격인 인민대학습당은 오후 7시면 문을 닫았다.

양각도호텔 옆에 있는 평양국제영화회관에는 제1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시민이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양각도호텔에서 만난 영국과 프랑스에서 왔다는 두 명의 영화 관계자는 북한 곳곳을 촬영한 사진집을 보여주며 “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북한에 왔다. 다음 주에는 한국에 간다”라고 말했다. 높이 1백70m인 주체사상탑에 올라 바라보니 건너편 대동문 앞에 있는 보트장에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오리보트를 타고 놀고 있었다. 옥류관 쪽에도 보트장이 있었다. 대동강가에는 낚시를 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개선문 부근에서는 아이들과 손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이 눈에 띄었고, 때로는 가족들이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모여앉아 식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린 학생들은 지나가는 방북단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평양 시내에서 작업을 하는 군인들은 눈에 띄었지만 총을 든 군인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북측 관계자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를 철저히 막았다. 하지만 때때로 이동 중에 낮잠을 즐겼을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도 일상을 영위했다. 9월21일 일요일 정오, 옥류관 앞은 냉면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민화협 김신혁 참사는 “북한 주민들은 100원을 내고 냉면을 사먹는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받는다”라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을 쳐다보았고,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분위기로 볼 때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와병설’ 자체를 잘 모르는 것으로 보였다. 언로가 철저히 통제된 사회에서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북측 민화협 관계자들과 평양 거리 분위기 등을 종합해보면 김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던 것은 사실로 보이나 현재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김위원장이 출생했다는 백두산 밀영을 방문했을 때 북한군 고위 장성과 중국군 고위 장성이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 목격된 것도 참고할만하다.

‘평양 거리는 공사 중’이었다. 궤도 선로를 새로 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평양대극장도 지붕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까는 작업을 하느라 지붕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동강호텔이 신축되고 있었고, 일부 대동강 강변은 난간을 대리석으로 단장했다. “궤도 선로를 까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군인이 아니냐”라고 묻자 민화협 한 아무개 참사는 “맞다”라고 답했다. 웬만한 노동력에는 군인들이 동원되는 것으로 보였다.

북측 “6ᆞ15, 10ᆞ4 선언 실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

   
▲ 평양은 공사 중이다. 9월 23일자 <로동신문>은 만수대 거리 개건 공사 소식을 보도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9월23일자 <로동신문>은 김위원장이 평양을 더욱 웅장·화려한 인민의 도시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만수대 거리 재건 공사가 힘 있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화협 김신혁 참사는 “2012년까지 평양을 새롭게 단장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때문인지 2년 전에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그때보다 거리가 더 깨끗해진 느낌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평양 시내에서 교외로 나가면서는 짐을 실은 트럭 위에 허름한 옷을 입은 노동자 10여 명이 올라타고 이동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으로 이동하는 차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남루한 모습도 평양 중심부와 달리 지방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평양에서 파악한 남북 교류에 대한 북측의 생각은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의 기조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 민화협 이충복 부회장은 “6·15, 10·4 선언 관철 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여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한 관계자는 “북측은 항상 주장해왔듯이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와 10·4 선언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실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이고 대화의 기준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민화협의 한 참사는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우리가 이렇게 해줄 것이니 당신들은 이렇게 해달라는 것이다. 도와주면 고맙지만 안 도와주면 우리 식으로 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 시장이 있다는데 가볼 수 없느냐”라고 묻자 “남쪽 정부가 시원하게 해준다면 시장을 왜 못가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남북 교류·협력의 질과 내용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점칠 수 있는 편린도 엿보였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인 영담 스님은 “북측은 경기도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개성에서 함께하려는 사업들을 가능하면 평양 쪽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라고 말했다. 북측이 전에도 이런 말을 했었기 때문에 향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사업들이 상대적으로 활성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공식적인 남북 관계가 경색될수록 민간 차원에서는 서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이면서도 내용 있게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가고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향후 남북의 교류·협력 사업은 한 단계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꼬를 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 교류는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6·15 남측 지역본부 대표단·민노총 인사들이 이미 평양을 방문했다. 민간의 교류는 앞으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화해 분위기를 견인해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주체사상탑 옆에서 SBS기자가 리포트하고 있다(위 왼쪽). 대동강변에서 낚시하는 시민들(위).
ⓒ시사저널 소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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