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우유'에 구멍 뚫린 만리장성
  • 베이징·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08.09.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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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멜라민 분유'사태로 안절부절…전세계 불신에 '올림픽' 이미지까지 흠집 나

 “요새 우유 먹어요?” “아니, 안 먹죠. 지진은 자연 재해라 할수 없지만 사람이 먹을 것을 관리 못해서 목숨을 잃게 만들면 안 되는데.”

▲ 중국이 멜라민 우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장결석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와 역학조사를 기다리고 있는 주부. ⓒAP연합

 베이징에서 택시기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중국 사람 특유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조심스럽게 우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작은 중·소 업체도 아닌 대기업 제품에서 공업용 원료를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 사람에게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반가워서, 중국에는 이런 류의 식품들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더 나아가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식품 관리를 하는 링다오(장관급인 질검총국장을 말함)가 물러났고 정부가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했으니좋아지지 않겠냐”라며 이전과 달리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세계가 중국발 멜라민 공포에 휩싸였다. 멜라민이 들어간 분유·우유는 물론 과자·사탕·초콜릿·빵 등 중국산 유제품을 원료로 쓴 먹을거리가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은 조용하다. 언론들은 정부가 우유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처해 산업 자체를 크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신화통신의 보도만을 전제하라고 각 언론에 지시했다. 중앙 CCTV도뉴스 말미에 잠깐 언급하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베이징의 수퍼마켓에 가면 아직도 우유 등이 예전과 변함없이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다. 홍콩이나 타이완 등지에서는 가게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정작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통상 저녁 8시께에 가면 항상 다 팔려나가고 없던 우유가 최근에는 언제가도 그득히 쌓여 있다. 정부가 입을 막았지만, 그래도 중국민들이 알 것은 다 안다는 뜻이다.


중국민들은 불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정부와 관련된 것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게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검역 체계의 문제에 대한 반성도 하겠지만, 이것이 사회적 동요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중국민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가 또 전면에 나섰다. 그는 병원을 방문해서 멜라민으로 인해 병에 걸린 어린아이들의
부모를 위로하고 “참담하다”라는 고백을 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다짐도 했다. 리커창 부총리는 허베이 성의 병원으로 날아가 “피해자들은 모두 무료 진료를 받을 것이고 필요한 기
자재는 병원에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더불어 관련 공무 원들을 줄줄이 잡아들였다. 장관도 갈아버렸다.


원자바오 총리, 병 걸린 아이들 위로하며 “참담하다” 고백


▲ 원자바오총리가 한 수퍼마켓에 들러 우유에 대해 묻고 있다. ⓒAP연합
중국 정부가 발빠른 대응을 한 것은 이번 사태가 중국이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어서이다. 최초에 발견된 멜라민 분유는 시중에서 3백g들이 한 봉지가 18 위안에 팔리는 최저급 제품이다. 쉽게 말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분유이다. 고급 분유에서는 멜라민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 지도부가 왜 긴장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빈부 격차가 갓 태어난 생명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
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번에 멜라민 분유 파동을 일으킨 싼루나 우유에서 멜라민이 발견된 멍니우 이리 등은 모두 지방 정부가 관장하는 국영기업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회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제품
에 공업용 물질을 넣었다고 하는 것은 지도부 입장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 정부가 발빠른 대응을 한 것은 이번 사태가 중국이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어서이다. 최초에 발견된 멜라민 분유는 시중에서 3백g들이 한 봉지가 18 위안에 팔리는 최저급 제품이다. 쉽게 말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분유이다. 고급 분유에서는 멜라민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 지도부가 왜 긴장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빈부 격차가 갓 태어난 생명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번에 멜라민 분유 파동을 일으킨 싼루나 우유에서 멜라민이 발견된 멍니우 이리 등은 모두 지방 정부가 관장하는 국영기업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회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제품에 공업용 물질을 넣었다고 하는 것은 지도부 입장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지도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멜라민이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 주가가 오르고 있는 싼위앤(三元)이라는 우유 제품이 있다. 싼위앤의 우유팩 표지에는 ‘인민대회당 연회 전용
공급’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인민대회당은 국가의 지도자급이 참석하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전국인민대회도 여기서 개최되고, 외국 지도자들과 중국 지도자의 만남도 여기서 열린다. 그러니까 높은
사람들이 먹는 우유는 멜라민이 안 들어 있었던 셈이다. 오비이락인지 모르지만 최저급 멜라민 분유와 오버랩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AP 통신은 중국 고위 관리와 가족들은 성장 호르몬을 투여하지 않고 방목해 키운 내몽고산 쇠고기, 티베트산 유기농 차, 산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로 재배한 쌀 등 ‘특수 식품’을 공급받는다고 보도했다. 이들 식품은 모두 정부가 엄격한 규정 아래 운영하는 ‘국무원 중앙 국가기관 식품특별공급센터’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짜 상품과 농약 등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먹을거리만을 공급받고 있는 중국 라오바이싱(서민)들의 불만은 쉽
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아이들에게 도대체 뭘 먹여야 하느냐는 부모들의 울분과 가난한 사람만 당해야 하느냐는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신화통신이 피해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는 데 그치지 말고 정신
적 치료도 해야 한다고 따뜻한 립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올림픽으로 애써 쌓아올린 국가 이미지가 멜라민 한 방에 날아갔다는 평도 나온다. 베이징 대학의 한 교수는 사석에서 “올림픽으로 힘들게 중국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는데, 그것은 17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라고
한탄했다. 올림픽 때 다른 것은 몰라도 식품 안전만은 인공위성을 동원해서라도 철저히 그리고 완벽하게 지키겠다던 말의 진정성이 도마에 올랐다. 올림픽 개막 훨씬 전부터 싼루의 멜라닌 분유가 신고되었었고, 올
림픽 개막을 위해 쉬쉬해왔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림픽 공급 업체로 선정되었던 멍니우 이리 등의 우유에서 멜라민이 나왔다. 올림픽 공급 업체가 불량 식품을 납품한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이
받는 타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듯싶다.


선진 강국의 꿈 꾸던 중국 위상도 추락


중국 식품에 대한 불신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가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가봉 공화국까지 중국 우유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중국의 값싼 유제품 원료를 사용했던 외국의 업체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제품이
아닌 다른 식품까지도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해 유해 치약, 유해 장난감, 애완 동물용 독성 사료 등으로 국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중국산 유해 상품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멜라민 파동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
이다. 지난해 유해 상품 파동으로 미국의 관리들이 직접 중국에 와서 생산 과정을 검사토록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중국으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이 문제를 사과해야 했다. 선진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던 중국의 위상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외국계 은행에서 일을 하는 장씨 성을 가진 한 베이징 시민은 “부끄러워
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어떻게 사람이 먹는 음식에 공업용 원료를 넣고 전세계에서 이것을 가지고 난리법석을 떨고 원 총리가 유엔에서 사과하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멜라민 분유 사태를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특수한 환경과 거기서 파생되는 모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공산당 1당 독재와 그에 따른 부패 구조의 형성이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
이다.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나 언론의 감시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자정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중국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검사 기능을 강화하
는 한편, 우유 및 낙농 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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