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조준해서 암세포만 걷어내는 방사선의 '칼의 노래'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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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수술로 암을 치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자의 몸을 손바닥 보듯 영상을 통해 들여다보며 질병을 치료하는 첨단 의료장비 덕분이다. 방사선 치료법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시사저널 박은숙

췌장암 판정을 받은 김문석씨(66·가명)는 지난 4월 하이푸 나이프(HIFU knife)를 이용한 초음파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을 받은 후 2주일 만에 췌장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던 암덩어리가 괴사했다는 판정이 났다.

지난 2004년 간암 선고를 받은 김인식씨(63·가명)는 사이버 나이프(cyber knife)를 이용한 방사선 수술로 2.5cm짜리 간암을 제거한 후 3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수술로 암을 치료한 사례가 늘고 있다.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환자의 몸을 손바닥 보듯 영상을 통해 들여다보면서 질병을 치료하는, 공상과학영화에서 볼 수 있음직한 장면이 실제 병원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피부를 절개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환자가 받는 부담은 많이 줄어든다. 또, 수술 후 부작용과 합병증이 외과적 수술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이른바 ‘무혈 수술’은 미래의 암 치료법으로 불리고 있다.

무혈 수술의 대표 주자는 방사선 치료이다. 방사선 치료란 엑스선이나 감마선 등을 이용해 종양의 세포막이나 DNA에 손상을 주어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 방사선 치료는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나 수술 후 몸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암세포를 없애는 용도로 활용되어왔다. 외과적 수술이 표준 치료법이라면 방사선 치료는 차선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정상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암세포만 정조준해서 죽일 정도로 방사선 치료가 발전했다.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에 있는 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가 속속 보고되면서 방사선 치료가 표준 치료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항공 기술과 로봇 기술이 만나 가능해져

▲ 환자의 움직임까지 감지해 암세포를 추적·파괴하는 사이버 나이프 치료 모습. ⓒ순천향병원 제공

요즘은 사이버 나이프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사이버 나이프란, 말 그대로 가상의 수술용 칼이다. 실제로 피를 흘리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서도 수술용 칼처럼 암을 정교하게 제거한다. 이런 정밀도를 갖추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항공 기술과 로봇 기술을 활용했다고 한다. 미사일이 목표를 추적해 타격하듯 사이버 나이프가 암세포의 위치를 정확히 추적해 파괴한다.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 주변을 로봇팔이 전후좌우 각도를 바꿔가며 암세포에 방사선을 조사한다.

사이버 나이프는 진화를 거듭해 최근에는 4세대 사이버 나이프까지 등장했다. 뇌와 달리 움직이는 장기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호흡하면 흉부가 부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데 이때 암세포의 위치도 변한다. 4세대 사이버 나이프는 몬테카를로(Monte carlo)라는 계산 방식으로 환자의 호흡까지 감지해서 방사선을 암세포에 맞춘다. 그만큼 방사선으로 인한 정상 조직의 손상을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방사선량이 과거 분당 6백MU에서 8백MU로 늘어나면서 방사선 수술 시간도 30분 이내로 줄어들었다.

치료비는 종양의 부위에 따라 다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뇌와 두경부(얼굴과 목) 종양의 수술비는 약 2백만~3백만원이며 그 외 부위 종양의 수술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천만원 정도이다.

아무리 좋은 의료 장비라도 수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이버 나이프의 치료 성적에 대해 장아람 순천향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치료 성적이 외과적 수술과 비슷하므로 가까운 미래에 외과적 수술을 대처할 치료법으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환자의 피부를 절개하지 않는 만큼 환자의 회복도 훨씬 빨라진다. 다만 같은 암이라도 개인마다 몸 상태에 차이가 크므로 모든 환자가 사이버 나이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뇌와 두경부만 전문으로 수술하는 장비로는 감마 나이프(gamma knife)가 대표적이다. 동정맥 기형(arteriovenous malformation), 청신경 초종 (vestibular schwannoma), 수막종 (meningioma), 전이성 뇌종양 등 뇌질환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감마 나이프는 코발트 60이라는 방사선 동위원소에서 방출되는 감마선을 조사해서 종양을 죽인다. 2백개가 넘는 감마선이 집중적으로 암세포에 조사된다.

외과적 수술과 달리 수술 후 감염과 부작용은 없지만 때로는 언어 장애, 지각 장애 같은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감마 나이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환자 부담이 약 3백만원 정도이다. 따라서 외과적 수술보다 오히려 저렴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뇌와 두경부가 주 수술 부위라는 점과 암세포의 좌표값을 설정하기 위해 환자 머리에 고정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또, 감마선이라고 하지만 방사선의 일종이므로 4회 이내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정일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감마 나이프 치료에 관한 우수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어서 최근에는 뇌질환의 최우선 치료로 감마 나이프 수술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감마 나이프로 수술받은 수막종 환자 중 97%는 심각한 합병증 없이 종양의 성장을 억제시켰다. 과거에는 의사가 치료 부위의 좌표를 수동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오차가 0.5mm 정도였지만, 최근 개발된 자동 설정 기능 등으로 그 오차가 0.1mm로 줄어들어 더욱 정밀한 치료가 가능해졌다. 의사의 실수를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방사선 치료는 종양을 포함해 비교적 넓은 범위까지 방사선을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예를 들어, 두경부암의 경우 원발암의 크기가 작아도 전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부 림프절에까지 방사선을 조사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구강 건조증과 림프 부종은 비록 암이 완치되더라도 환자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큰 골칫거리였다.

▲ 초음파 치료기인 하이푸 나이프로 췌장암을 치료한 영상(위). 왼쪽 사진의 동그라미 부분에 있는 암세포가 하이푸 나이프 치료 후 오른쪽 사진처럼 까맣게 괴사했다. ⓒ여의도 성모병원 제공

그러나 최근에는 CT(컴퓨터 단층촬영)는 물론 MR(자기공명)과 PET(양전자 단층촬영)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영상의 선명도가 높아져 암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방사선 세기를 암세포에는 높이고 정상 조직에는 낮출 수 있는 IMRT(세기 조절 방사선 치료기)와 영상을 보면서 치료할 수 있는 IGRT(영상유도 방사선 치료기)도 등장했다.

이러한 기능을 바탕으로 환자의 개별적인 상태에 맞는 맞춤 치료(customized therapy)가 가능해졌다. 그 대표적인 장비가 토모테라피(tomotherapy)로 미국 MD앤더슨암센터에 도입된 이후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춤 치료도 가능

토모테라피는 한마디로 방사선 치료기에 CT를 결합한 장비이다. CT로 촬영한 암세포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방사선을 조사하기 때문에 정교한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사선 발생 장치가 360˚ 회전하면서 방사선의 세기와 모양, 크기까지 조절해 암세포에 방사선을 조사한다.

특히 종양이 신체 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거나 넓은 부위에 퍼져 있는 다발성 암에도 치료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는 1천만~2천만원 정도가 든다.

안용찬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장은 “토모테라피는 요리할 때 칼로 무를 썰듯이 종양의 3차원 구조를 CT 영상으로 얇게 조각낸 다음 각 조각에 나타난 표적에 대해 방사선 발생장치가 360˚ 회전하면서 방사선 세기와 모양을 연속적으로 조절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버 나이프로 치료하기 어려운 다발성 종양뿐만 아니라 머리 부위를 포함한 신체 어느 곳에 있는 종양도 한 번 조사로 치료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사선이 신체에 유해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초음파를 이용한 하이푸 나이프가 최근 시선을 끌고 있다. 임산부에게 사용할 정도로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진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방사선 치료기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푸 나이프는 초음파를 한 곳에 집중시켜 65~100℃의 고열로 암세포를 태운다. 마치 볼록렌즈로 태양열을 모아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특히 간암과 췌장암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또, 유방암이나 자궁근종 등 방사선 수술이 꺼림칙한 부위도 수술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치료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 1천만원 정도이다.

조세현 여의도성모병원 하이푸 나이프센터장은 “간이나 췌장 등 소화기암에 새로운 치료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음파는 두꺼운 신체 조직을 통과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13cm 정도까지 침투하는데 신체 조직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줄어들어 소멸한다. 특히 지방이 많으면 일반 조직보다 침투 깊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비만 환자는 치료하기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최첨단 치료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정상 조직까지 파괴하는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영상을 보면서 정밀하게 암세포에만 조준하고 세기와 각도까지 조절해서 방사선이나 초음파를 조사하지만 암세포에 도달하려면 정상 조직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정상 조직이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전혀 후유증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방사선이나 초음파 수술을 받은 후 뼈와 근육에 통증을 느끼거나 피로감, 설사 등 후유증을 느낄 수 있다. 또, 방사선만으로는 몸속 깊은 곳이나 저산소 상태 등에 있는 다양한 조건의 암을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단점을 고안해 최근 도입된 장비가 양성자 치료기(proton therapy)이다. 양성자 치료기는 원통형 가속 장치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을 이용해 수소 원자의 양성자를 빛 속도의 60%로 가속시켜 암 치료에 이용한다.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는 몸속을 통과하면서 암 부위의 앞에 있는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다가 암세포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방출해 암세포의 DNA에 손상을 주고 소멸한다.

▲ 고화질 CT영상을 보며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있는 토모 테라피 치료실 모습. ⓒ삼성서울병원 제공

▲ 뇌질환 치료에 적합한 감마 나이프 치료를 준비하는 모습. ⓒ삼성병원 제공



양성자 치료기로는 안구 들어내지 않고 눈 수술

ⓒ국립암센터 제공

이 장비는 다른 치료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부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안구 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과거에는 안구를 들어내야 했지만 양성자 치료로 안구를 들어내지 않고 종양만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립암센터에 1대가 있으며, 2012년 삼성서울병원이 이 장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치료비는 1천5백만~2천만원 정도로 고가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면 전신에 전이된 암과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보다는 전이가 없는 고형암을 한 번에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조관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은 “방사선과는 물리학적으로 성질이 전혀 다른 입자인 양성자를 사용한다.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통과한 후 암세포에 도달해 에너지를 쏟아내는데, 이를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고 한다. 브래그 피크가 지나면 양성자는 스스로 소멸하므로 암 뒤에 있는 정상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장비는 구경부 종양, 안구 종양, 유방암과 초기 간암이나 폐암에 사용할 수 있다. 양성자는 정상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타격하는 만큼 치료 효과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학과 과학이 접목된 의료 장비가 미래 치료 개념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입자 치료기(baryon therapy)가 가까운 미래에 선을 보인다. 중입자 치료기는 질량이 크지만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탄소(C)나 아르곤(Ar) 등 10억개의 원자핵 알갱이를 빛 속도로 쏘아 암세포에 퍼붓는다.

박성용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수석연구원은 “기존의 양성자 치료기처럼 양성자 가속 장치를 이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치료 효과는 최고 50배까지 우수하다. 탄소 등 무거운 원자를 거의 빛의 속도로 쏘아 몸속의 암세포만을 파괴한다. 또,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기의 장점만을 합쳐 만든 치료기가 현재 개발 중인 만큼 가까운 미래에 의학과 과학 기술이 융합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과거 의사의 손에 의존하는 치료는 로봇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까지 이용하는 수술로 발전하고 있다. 피부를 절개하고 피를 흘리는 수술은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첨단 치료도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손에 망치를 쥐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바루크 법칙처럼 외과 의사는 전통적인 수술을,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는 방사선 치료만 고집하면 첨단 치료의 길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첨단 치료법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 같은 질병이라도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상담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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