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 안성모 ,김지혜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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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외환보유고ᆞ환율, 양자택일 상황 오면 큰일”
ⓒ시사저널 이종현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여당의 중진 의원이지만 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와 정부에도 비판을 마다않는 ‘소신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경제 전문가인 그는 정부가 정책을 하나하나 제시할 때마다 야당 의원 이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허와 실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위원장은 지난 10월1일 국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자금 투입을 통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밝힌 데 대해 “외환보유고와 환율,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위원장은 또 정부의 정책 추진 행태에 대해 “스케줄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데 중간에 엉뚱한 것에 매달리다 보니까 국민적인 지지가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준비들은 안 하고 있다가 나빠지면 아우성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미래 이슈를 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경제에도 위기가 올 수 있다. 아직 실물 위기는 시작도 안 되었다. 금융의 경우 ‘9월 위기설’이니 해서 몇 차례 파동이 있었지만 실물 경제는 아직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더 내려가도,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흔들리고, 이에 따라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어렵게 되고, 내수 시장은 물론 수출까지 위축되는,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정부의 대응은 적절하다고 보나?

중요한 것은 실물 경제에서 내수가 위축되고 수출이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느냐에 있다. 정부로서는 규제를 개혁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감세 정책을 통해 경제의 활력을 찾고, 근로자의 의욕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있으면 노조에서는 임금을 올려달라고 할 것이다. 이런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실물 경제가 어려워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강만수 장관은 자금을 투입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때에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좋을 게 없다. 주식시장에 개입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정부가 주식시장에 개입을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지 않았나. 돈만 날리고 혼란만 더 부추겼다. 외환시장도 그렇다. 다만 투기 자본이 들어 와서 정책 기조를 흔들거나 국가 이익을 심각하게 해칠 때는 대응을 해야 한다. 이를 잘 판단해야 한다. 외환보유고와 환율,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고 보나?

현재로서는 그렇다. 하지만 현재 충분하다고 해서 가까운 장래에도 충분할 것으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총 2천4백억 달러에서 단기적으로 지출해야 할 1천6백억 달러를 제외한 8백억 달러 정도 여유가 있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만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얼마나 빠져나가느냐에 따라 안심할 수만은 없다. 여유가 있을 때에 지출을 중단해야지 다 쓰고 난 다음에는 단돈 몇 푼으로 인해 부도가 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기대로 출범했는데, 현재까지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스케줄에 맞게 움직이고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중간에 엉뚱한 것에 매달리다 보니까 국민적인 지지가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대운하’나 ‘747’을 자꾸 고집한다든지, 외환시장에 끼어든다든지, 괜히 종합부동산세나 상속세를 건드려 말썽을 일으킨다던지. 물론 장기적으로 다 맞는 정책들이지만 지금은 급한 것부터 우선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눈에 ‘잘나가는 사람이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감세에서도 순서를 정하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감세와 중산층이 많이 사용하는 물품에 대한 감세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법인세나 소득세같이 기업 활동과 관련된 감세, 그리고 부동산시장 정상화와 관련된 세제 개편 등의 순이다. 그런데 앞의 것은 안 하고 뒤의 것만 하니까 국민이 오해하고 지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종부세 완화의 경우 당내 반대가 적지 않았는데도 정부에서는 강행했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종부세는 도입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데 동감한다. 하지만 일단 도입이 되고 나면 사회·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봐가면서 폐지 또는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시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른 정책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대로 밀고 가야된다는 사람들은 지역구 사정이나 지지자들에게 한 공약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안 하면 아예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시장에서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급하다 보니까 과거에 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요즘 해외에 투자한 펀드들이 난리인데 노무현 정권 때 저질러놓은 일이다. 그때도 그러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 정권이 바뀐 지금에 와서도 똑같이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아우성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미래 이슈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하다.

정부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텐데.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바쁘기는 한데 되는 것은 없다. 정원 가꾸는 것이 그렇다. 유능한 정원사는 쉽게 한 번에 자를 것 자르고 다 한다. 그런데 일 못하는 정원사는 여기저기 파헤치고 온갖 난리 법석을 떨지만 결과는 별것 없다.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이 한나라당의 기존 정책 기조와 차이 나는 부분이 있다.

지지자들로부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나라를 망쳐서 뽑아놓았더니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있다. 미리 대처를 안 해놓고 막상 다급해지니까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장·차관들이 공무원 조직에 얹혀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니까 공무원들은 옛날 방식 그대로 일을 하고, 그러다 보니 시장 경제에 안 맞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강만수 장관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정부의 시장 개입과 관련한 발언으로 논란이 되곤 했다.

그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대통령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그런데 개별 건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의회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고 이상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않는데, 청와대나 당 지도부에서 불편해할 것 같다.

섭섭하거나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가 잘 되라고 하는 것이다. MB 캠프의 공약을 묵살했을 때는 욕을 바가지로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 그대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겠나.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도와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지 못해서 망했다. 멋모르고 막나가는 ‘386’을 아무도 견제 안 했다가 그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잘하려고 했겠지만 실정을 몰라 당한 것이다.

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있다. 청와대가 국회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사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그런데 국회의 자존심은 의원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세상에 싫은 소리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렇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려면 할 말은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오래 잡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할이 필요하다.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쫙 깔려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망할 수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나왔는데,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한나라당은 ‘작은 정부’를 약속했다. 대선때 20조원을 삭감하겠다고 공약했다.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상황이 어렵다 보니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것 같다. ‘작은 정부’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보다는 예산을 아껴 쓰겠다는 자세는 보였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월급과 정원을 동결하지 않았나. 공기업이나 산하 단체로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정부 사업도 수요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 많아 예전보다 개선된 것으로 평가한다.

사회간접자본(SOC)에 21조원을 투입키로 하는 등 토목 건설 중심의 성장에 집중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예산안에 올라온 사회간접자본의 특징은 이전 정권과 달리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완공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한 10년 정도 지나야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 것만 내놓고는 인심 쓰듯 예산을 집행했다. 그러니 생산성이 안 올라간 것이다. 이번에는 1~2년 안에 완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5%로 잡았는데, 목표치라도 너무 높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는 어떤 점을 중점으로 살필 예정인가?

여당이라고 설렁설렁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몇 차례 이야기 했으니까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예산을 쓰려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복 사업은 없어야 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도 없어야 한다. 책상에서 만드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정리된 과거 자료들을 가지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 야당 때 정부 예산안을 놓고 많이 싸웠는데 그때와 다르지 않게 심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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