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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품은 낙엽송의 바다

백두산 방문기 / 삼지연에서 버스로 정상 올라 … 남루한 북한 동포 옷차림에 연민

백두산·소종섭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0.06(Mon) 20: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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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정상 초입. 10분 정도 차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인 장군봉 부근에 오른다. 도로는 현무암을 깔았거나 잘 다져져 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든 경색되든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지난해 11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백두산 관광에 합의했지만 언제 실현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백두산 관광’은 금강산과 개성에 이어 남북 관계의 진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바로미터이다.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백두산 자체가 우리 민족의 아이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9월20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방북해 22일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지난 호(제989호) ‘평양 특집’에 이어 ‘백두산 방문기’를 싣는다.

오전 8시 평양 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 비행기는 1시간 동안 북한 하늘을 날아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는 해발 1천5백m의 삼지연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는 음료와 물이 서비스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북녘의 들녘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녹음이 우거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산에 나무도 제법 있어 보였다. 백두산 관광이 현실화한다면 관문이 될 삼지연 공항은 시설이 낙후했다. 숲 속에 있는 화장실(북에서는 위생실이라고 부른다)은 어린 시절 우리가 사용했던 지저분한 시골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리게 했다.

백두산 관광, 언제 실현될지 미지수

   
▲ 향도봉 부근. 이곳까지 차가 올라간다. 10분만 걸어가면 정상이다.

소형 버스에 나눠 타고 백두산으로 향했다. 북측 인사 두 명이 차에 탔다. 현대그룹이 제공한 차인 듯 안에는 현대 로고가 붙어 있었지만 밖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다. 차는 포장과 비포장 도로를 번갈아 달렸다. 비포장이라도 도로 상태는 좋은 편이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크게 들썩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일행은 “말 타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낙엽송의 바다였다.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낙엽송 군락이 길 양편을 가득 메웠다. 7년 전에 가보았던 캐나다 벤푸 국립공원의 원시림이 한국에 재현된 듯했다. 일행들로부터 탄성이 쏟아졌다. 차는 그 한가운데를 뚫고 내달렸다. 백두산 가는 길에 본 사람들은 슬픔이었다. 간간이 차창 밖을 스쳐가는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은 우리 화전민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피부가 검게 그을린 한 여인은 어린아이를 들쳐 업고 한 아이의 손을 잡은 채 한참 동안 차량 행렬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따금 도로 주변에서 작업을 하거나 근무를 교대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험준한 산림을 상징하듯 곰과 호랑이를 형상화한 상징물이 길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처음 3~4m 높이로 이어지던 낙엽송 군락은 시간이 지나면서 20~30m 군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3~4m 군락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무가 사라지고 평원이 나타났다. 차는 잡목도 없이 돌과 흙으로 이어진 황량한 들판을, 꼬불꼬불 S자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서서히 올라갔다. 1시간30분쯤 지났을까, 멀리 산 중턱에 글씨가 보였다.‘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위원장이 1992년에 만든 것인데 화강암으로 거대한 글자를 만들어 붙여놓았다. 천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 향도봉에 새겨진 글씨. 1992년에 만들었다.

기차를 타보지는 못했지만 천지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기차역이 있었다. 백두역이었다. 이곳에서 백두산 정상과 10분 거리인 향도역까지 궤도열차가 다닌다. 차는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2천7백44m)과 10분 거리인 향도역 부근까지 올라갔다. 내리자마자 왼쪽으로 가면 장군봉, 오른쪽으로 가면 천지로 내려가는 계단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이날 백두산에는 비가 내리고 돌풍이 불었다. 천지는 그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지 않았다. 일행은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백두산과 천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통일을 기원하며 기념 촬영을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기자는 주먹만한 돌을 기념으로 가져왔다. 북측 안내원의 설명대로라면 김일성은 14번, 김정일은 6번 장군봉에 올랐다.

북측 “유적지에 와서 왜 사진만 찍나” 불만

장군봉을 내려와 김일성의 항일운동 유적지이자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난 곳이라는 ‘백두산 밀영’으로 향했다. 차는 산속 1차선 도로를 시속50km 속도로 질주했다. 북측이 말하는 ‘1급 운전기사’다운 능숙한 솜씨였다. 가는 중간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야외에서 기내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일행은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도시락과 물, 과일을 받아들고 즐거워했다. 불과 100m 건너편은 중국 땅. 북한과 중국을 구분하는 국경선 역할을 하는, 족히 50m는 됨직한 협곡 아래로 압록강으로 가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 가는 길. 낙엽송과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두산 밀영’은 북한 대학생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혁명의 성지’이다. 곳곳에 ‘학습 장소’와 숙소가 눈에 띄었다. ‘김정숙 우물’ ‘김일성 항일유격대 사령부’ 등을 둘러보았다. 건물 안에는 이불, 책 등이 꾸며져 있었다. 일행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 안내원과 기념 사진을 찍는 데 더 열심이었다. 북측 민화협 소속 참사가 불만을 나타냈다. “유적지에 왔으면 설명을 들어야지, 왜 사진만 찍습니까?”

‘백두산 밀영’을 나온 일행은 삼지연으로 향했다.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높이 15m의 김일성 동상 앞에서 북측 인사들은 한 줄로 늘어서 절을 했다. 항일유격대 활동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들이 공원을 메우고 있었다. 북한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김일성 수령께서 다녀가신 곳’등 정치적인 구호와 팻말, 조각들이 삼지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렸다.

   
▲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으로 이동하는 소형 버스. 오른쪽 외제차가 길잡이를 한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노상에서 나눠주었다. 좌석 번호도 없었다. 저녁 7시 넘어 평양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어두웠고 그 어둠 속을 사람들이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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