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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도 흔든 중앙아시아 영화의 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 등 6편 상영 …작품성 뛰어나 주목

반도헌 ㅣ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0.07(Tue) 10: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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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2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스탈린의 선물>의 감독과 주연 배우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포토세션을 갖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중앙아시아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만들어진 <스탈린의 선물>을 선정했다. <스탈린의 선물>은 예매 시작 1분30초 만에 매진되어 역대 최단 시간 매진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역대 개·폐막작들은 지난해의 <집결호>(펑샤오강·중국), <신세기 에반게리온 : 서>(안노 히데아키·일본)를 비롯해 <쓰리타임즈>(허우 샤오시엔·타이완), <2046>(왕가위·홍콩) 등 동북아를 중심으로 잘 알려진 거장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선물>은 우리에게 영화로는 생소한 카자흐스탄의 작품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를 담당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영화 자체의 힘이 훌륭하고 영화계에서 소외된 지역의 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 영화제의 역할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 중앙아시아 지역, 특히 카자흐스탄은 영화적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라고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소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많아

부산영화제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개막작을 포함해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4편, 뉴커런츠 부문에 1편 등 총 6편이 소개된다. 전체 출품작 수가 60개국 3백17편에 이르는 규모에 비추어 숫자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개막작을 중앙아시아에 돌린 것에서 보듯이 부산영화제가 중앙아시아 영화에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막작인 <스탈린의 선물>은 카자흐스탄의 가장 유망한 젊은 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와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나리오 작가 파벨 핀, 카자흐스탄의 실력파 국민 배우 누르주만 익팀바에프 등이 함께 만들어낸 4개국(카자흐스탄, 러시아, 폴란드, 이스라엘) 합작 대하 드라마이다. 1949년 옛 소련 정부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소수 민족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할아버지와 함께 강제 이주 열차를 탄 유대인 꼬마 사쉬카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주 도중 할아버지가 죽고 사쉬카는 카자흐스탄의 어느 외진 마을에 내린다. 그곳에서 만난 카심 할아버지와  정착하게 된다. <스탈린의 선물>은 유대인 소년과 카자흐스탄 할아버지가 인종과 연령을 초월해 나누는 우정과 인간적인 연대를 그리는 감동 드라마이다. 제목인 ‘스탈린의 선물’은 1949년 70회 생일을 맞는 스탈린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면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쉬카의 희망과 당시 핵폭탄 실험으로 무고한 희생을 낳았던 스탈린의 죽음의 선물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개막작 말고도 이번에 부산에서 소개되는 중앙아시아 영화들 대부분은 놀랄 만한 작품성을 선보인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그중에서도 <도서관 할아버지> <무당의 춤> <유르타>를 반드시 챙겨봐야 할 목록으로 추천했다.

사빗 쿠르만베코프와 카님벡 카심베코프가 공동으로 연출한 카자흐스탄 영화 <도서관 할아버지>는 존경받는 마을 지도자에서 얼떨결에 도서관 사서가 된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세월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변함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25년 전에 빌려간 책을 돌려받기 위해 골몰하는 할아버지 도서관 사서와 시끌벅적한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이 귀엽게 그려진다.
카자흐스탄의 여성 감독 구카 오마로바가 내놓은 <무당의 춤>은 마을에 주유소를 지으려는 투자자들과 갈등을 빚은 후 사라졌던 무당이, 완성된 후 불타버린 주유소 화재의 배후로 의심받은 사업가의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이다. 자본과 개발 위주의 성장 정책 속에서 사라지는 동양적 전통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감독인 구카 오마로바는 첫 장편 <스키조>로 2004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던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감독이다. <스키조>는 2005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05년 최고의 영화 20편에 선정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영화인 <유르타>는 우즈베키스탄의 광야를 배경으로 과거로 인해 고통받으며 아들을 과잉 보호하고 가두려고 하는 아버지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아들 간의 애증을 다루고 있다. 과거와의 단절과 미래에 대한 회의를 놓고 벌어지는 두 인물의 갈등이 극을 이끌고 있다. 
이 밖에도 가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두 부자의 이야기를 그린 카자흐스탄의 가족 영화 <아빠와 함께>, 이웃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과 카자흐스탄인인 두 남자가 부인들이 출산한 아이의 피부색을 보고 서로 상대방을 의심하면서 균열되는 관계를 그린 <남쪽 바다의 노래>도 챙겨볼 만한 작품이다.

   
▲ ‘아시아 영화의 창’에 소개되는 <무당의 춤>.

중앙아시아의 영화는 주로 일상 생활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들이 많다. 도처에 황야와 사막이 있는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인간 본성이 가지고 있는 고독함을 말하고 있다. 사실주의적 전통과 신비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영화 세계를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던 바크티아르 쿠도흐나자로프 감독의 <루나 파파>의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이야기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중앙아시아 영화에는 유독 거친 황야, 벌판, 계곡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중앙아시아 영화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소구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영화는 옛 소련 시절부터 영화 제작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카자흐스탄에는 옛 소련에서 두 번째로 큰 스튜디오가 있었다. 이 스튜디오에서는 명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 뒤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영화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다.

역량 돋보이는 제작자ㆍ감독 수두룩

특히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카자흐스탄의 굴나라 사르세노바를 위시한 제작자들의 역량이 뛰어나다. 사르세노바는 제작자로 나선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몽골>을 비롯해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와의 합작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동북아시아권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영화의 합작 프로젝트를 생각해볼 때 폭 넓고 과감하게 합작을 시도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제작자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에는 이미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감독들이 많다. 이란의 명감독 모흐센 마흐발바프가 각본을 맡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양자>의 악탄 압디칼리코프, 민병훈 감독과 공동 연출한 <벌이 날다>의 잠쉐드 우스마노프, <루나 파파>의 바크티아르 쿠도흐나자로프 등이 그들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이번에 소개한 작품 외에도 가져오고 싶은 작품이 많다. 마흐발바프와 압디칼리코프의 신작은 완성되지 않아 안타깝게 소개하지 못했다. 경제 형편이 나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외의 국가에도 재능 있는 감독들이 많지만 제작 여건으로 인해 차기작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PPP를 통해 제작된 <남쪽 바다의 노래>와 같이 중앙아시아 영화가 부산영화제를 계기로 성장·발전해 언젠가는 이란 영화처럼 세계의 중심에 오르는 날이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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