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 경제 정책에 “뒷골 당기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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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장관 등 신뢰 잃은 주체가 독주 “경제 전문가 한승수 총리, 어디에서 뭐 하나”

▲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2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설이다. 그 어느 정부보다 경제 전문가가 많이 포진해 있는 이명박 정부가 ‘위기’라는 단어가 실감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국제 환경 탓도 있지만 경제팀이 ‘과연 대응을 제대로 했느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경제팀이 신뢰를 상실했다”라며 ‘강만수 아웃!’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대통령이 평소 사람을 한 번 쓰면 잘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라는 말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대통령은 “지금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정부를 믿고 힘을 모아달라”라며 자신감을 보이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권력’ 주체들은 과연 한몸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당-정-청은 제대로 소통하며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가.

요즘 어디 할 것 없이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이지만 국무총리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가정책조정회의 등을 주재하고 포스코를 방문하는 등 현장 행보를 하고 있지만 도드라지지 않고 있다. ‘정치형 국무총리’라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런데 한승수 국무총리가 누군가. 미국 요크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17년간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노태우 정부 때는 상공부장관, 김영삼 정부 때는 재경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김대중 정부 때는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냈다. 그가 쓴 <경제정책론>은 경제 관료들의 필독서가 된 지 오래이다. 경력으로 보면 어디 내놓아도 이만한 경제 전문가가 없다. 이대통령이 경제 전문가라고 하지만 그는 현대건설 CEO를 지냈을 뿐이다. 뛰어난 경영인이었지만 경제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사라진 총리’에 대해서는 여권 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10월8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총리가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장관 “자꾸 신뢰를 걱정해서 신뢰가 떨어진다”

사공일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별 다르게 주목되지 않는 가운데 ‘경제 사령탑’으로 불리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전면에 나와 있다. 그는 1982년부터 소망교회를 다니기 시작해 대통령과 인연이 남다르다. 지난 대선 때 이른바 ‘MB 노믹스’를 기초한 대선 공신으로 집권 전부터 경제 정책의 중심에 섰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움직이는 인물들 가운데 그만한 창업 공신은 없다. 한나라당의 한 경제통은 “대통령은 강장관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강장관의 ‘뚝심’은 국정감사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경제팀이 신뢰를 상실한 것이 위기를 키웠다”라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을 “자꾸 신뢰성을 걱정하면 신뢰가 떨어진다”라고 맞받았다. “경제 정책이 뒤죽박죽이다”라는 비판에는 “무엇이 그렇다는 말이냐”라고 대거리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에서 ‘강만수 책임론’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당분간 그의 거취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 위기의 파고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변함없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만약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책임론이 대통령에게까지 번질 위험성이 있다. 시장의 신뢰를 너무 잃었기 때문에 국정감사 이후 강장관의 거취가 정리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지난 10월7일 강장관이 시중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은행들이 해외 자산을 매각해서라도 외화예금 유치에 나서야 한다”라고 하자 시장에서 “정부의 달러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강장관과 같은 부산·경남 출신이면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20년 넘게 경제 관료로서 생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장관은 행시 8회, 박수석은 17회이다. 강장관이 재경원 차관으로 있을 때 박수석은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의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는 최근 “미국과 달리 금융 파산이 없을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계속되겠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이다”라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박수석이나 조원동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등은 전 정권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다.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박수석은 노무현 정권 때 재경부 차관을 지냈고, 조실장은 재경부 차관보를 지냈다.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여당인 한나라당의 힘이 달린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강장관이 재무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있을 때 같은 사무실에서 사무관으로 있었다. 재경부 과장 출신인 임의장의 말이 고위 경제 관료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의장은 경제 위기와 관련해 지난 10월7일 긴급 소집되었던 ‘청와대 서별관 회의’ 참석자 명단에 없었다.

청와대나 당이나 금융 전문가 없기는 마찬가지

한나라당 한 경제통은 “경제 분야에 관한 한 당정 협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불거졌던 ‘종합부동산세 논란’이다. 당에서 검토할 것처럼 하더니 결국, 정부 안대로 가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강만수 장관이 국감에서 “(국회가) 서로 싸우다가 법이 늦게 시행되는 바람에 정부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라며 ‘정치권 책임론’을 거론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 당과 정부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다 보니 정부 정책이 직접 밑바닥까지 가닿지 못하면서 불만이 쌓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 못지않게 정부를 비판했다. 한나라당에 ‘금융 전문가’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청와대가 지난 6월 말 청와대 금융비서관을 없앤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홍보기획관을 신설하고 청와대 직제 일부를 바꾸는 과정에서 금융비서관과 재정경제비서관을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합쳐 재정 쪽 인사에게 맡겼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에 금융 전문가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불과 몇 달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경제담당 국가정보관도 4월 이후 공석 상태이다. 그동안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전무와 우리금융지주 최공필 전무 등 경제 전문가들이 이 자리를 맡아왔는데 6개월 동안 후임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과 강장관이 앞장서서 끌고 가는 가운데 곳곳에서 동맥경화 현상이 노출되고 있다. 신뢰를 잃은 주체가 독주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혈맥이 막혔다. 정보가 소통되지 않고 있다”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적절하게 권한을 배분하지 않다 보니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던지는 사람보다 “결국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겠느냐”라는 식의 태도가 여권 전반을 지배하는 분위기이다.

국정감사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경제부총리를 부활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지만 현재 여권의 문제는 ‘위상’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시장의 신뢰 속에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느냐, 각 책임 주체들 간 적절한 권한 배분과 상호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느냐, 정책과 국민이 느끼는 민생의 거리를 최대한 일체화할 수 있느냐 등이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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