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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막힌 곳에서 ‘살아남기’

한국 지사·상사들, 시장 위축으로 수익 악화…한국계 은행들도 단기자금 조달에 애먹어

최은무 (뉴욕중앙일보 기자) ㅣ 승인 2008.10.21(Tue) 18: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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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뉴욕 총영사관에서 열린 민관 합동 경제회의에서 한국 지사 ·상사와 기관 관계자들이 미국 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지사·상사들은 이번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영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줄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매출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각 지사·상사들은 대응책 마련을 위해 연일 회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뽀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금융 위기의 파장이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부문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업계이다.

미국 내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도 나름으로 선전해오던 한국산 자동차들이지만 지난 9월 현대자동차의 미국 내 판매 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4% 급감한 2만4천7백65대에 그쳤다.

기아자동차 역시 9월 판매 대수가 1만7천3백83대로 지난해에 비해 27.8%나 떨어졌다. 현대모터아메리카 김철환 부장은 시장 위축이 가장 문제이다. 소비자들이 차를 사고 싶어도 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딜러들도 거래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차 주문을 늦추고 있다. 김부장은 “판매와 마케팅, 재정 부분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시장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시장 침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한창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던 한국산 타이어들도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금호타이어USA의 경우 지난 9월 실적이 매출 예상치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금호타이어는 가격 인하와 마케팅 강화 등 적극적인 판매 촉진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 항공사들은 금융 위기에 따른 국제 유가 동향과 환율의 영향, 여행 수요 감소 등 복잡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연료비 감소 효과는 달러 환율이 뛰면서 상쇄되고 있다. 여기에 경기 침체로 인한 항공 여행 수요 감소로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뉴욕여객지점장은 “지난 9월 뉴욕발 비즈니스석 승객은 10%가 감소했다.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미국 내 기업체 시장을 공략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영헌 아시아나항공 뉴욕여객지점장은 “금융 위기 이후 뉴욕-인천 노선 탑승객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에서 중국과 베트남, 일본 등으로 연결되는 노선에 대한 잠재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사·상사들은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계 은행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본사와 주거래 은행 관계인데 다 미국 내 영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뉴욕 일원에는 산업·기업·국민·수출입·신한·우리·하나 은행 등이 지점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현지법인 형태의 소매 은행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금융 위기는 한국계 은행에도 같은 파급력을 나타내고 있다. 류후규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장은 “한국계 은행들은 모두 단기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6개월짜리 대출은 아예 막혔으며,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 조달만 가능한 상태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글로벌 대출 은행들이 시중 은행으로 자금 공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원 국민은행 뉴욕지점장은 “한국계 은행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산이 유가 증권이나 거래가 힘든 부문에 몰려 있어 현금화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용도 높지 않은 중견 기업들, 금융 위기 장기화 땐 파산 불 보듯

은행들의 돈줄이 막히자 이에 따른 영향은 거래선인 기업들로 바로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에 영업 활동을 위한 자금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급하게 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들은 하루짜리 초단기 융자를 매일 연장해가며 급한 불을 끄고 있다.

지사·상사들은 대부분 거래 은행으로부터 ‘한도성 대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기업들의 자금력이 약화되면서 만기가 돌아온 대출금을 갚지 않고 계속 연기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종전까지는 만기된 대출금을 갚고, 다시 새로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규 대출이 어렵기 때문에 자금 관리 차원에서 만기가 되더라도 대출금을 갚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이나 LG처럼 신용도가 우수한 한국 기업의 현지법인들은 이번 금융 위기를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금 유동성도 확보하고 있는 데다 그동안 쌓아놓은 신용을 바탕으로 미국 내 대형 은행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기업들의 현지 직원들에게는 아직까지 금융 위기에 따른 별다른 지침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이다.

문제는 달러 확보가 어렵고 신용도도 높지 않은 중견 기업들의 지사·상사들이다. 이런 기업들은 이번 금융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 지원 외에는 뾰족한 수 없다”

 
   
한국 지사·상사들의 연합체인 미한국상공회의소(KOCHAM)의 직원들은 요즘 경제 관련 정보 파악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금융, 유가, 환율, 주가 등의 경제 지표가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지사·상사들이 영업 활동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에 e메일로 발송되는 ‘코참 데일리’를 통해 그날의 주요 경제 뉴스와 업계 정보를 전한다.

 지난 10월2일에는 웰스파코뱅스 수석부회장과 미국 한미은행장을 지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금융학과  손성원 석좌교수를 초청해 미국 금융 위기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세미나를 여는 등 회원사들이 현 정세를 파악하고 영업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줄만한 사업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마영남 KOCHAM 회장(대우아메리카 사장·사진)은 “현재 미국 내 한국 지사·상사들은 금융 위기로 유동적 자금줄이 묶이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에게는 ‘초유의 비상 사태’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기업은 거래 은행들과 일정 한도 내에서 언제든지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한도성 대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대출 계약서에는 은행측이 언제든지 자금 공급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계약 규정이 지금 발효되고 있다는 것이 마회장의 지적이다.

 마회장은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실제로 은행들은 각 기업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자금 위기 상황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시장에 현금 흐름이 막혀버리면 거래선과의 수금과 지불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마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현 상황에서 기업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금 지원 외에는 별다른 대응 방안을 생각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비용 절감 정도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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