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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면 무대가 춤을 춘다

아시아 발레 저력 보여준 ‘모던 발레 프로젝트’·<홍등>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ㅣ 승인 2008.11.11(Tue) 11: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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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홍등>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발레 <홍등>(아래)은 내용이 약간 각색되어 있다. <홍등>은 서양의 클래식 발레에 바탕하고 있지만 그 소재나 전개에서 중국 문화 예술의 풍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가을은 무용계에서 이른바 ‘시즌’으로 불린다. 1년 중 가장 다채로운 춤의 향연이 펼쳐지며 관객들의 시청각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올해 가을, 굵직한 페스티벌과 극장 기획 공연 그리고 개인 공연이 한 치 양보 없는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발레 두 편이 있었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모던발레 프로젝트’와 중국국립발레단의 <홍등>이 그것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발레단들이 아시아 발레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근래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모던한 작품을 리바이벌함으로써 큰 박수 갈채를 받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들이 모던발레와 모던댄스를 표현하는 방식이 관객에게 감흥을 주고 있는 것이다. LG아트센터와 공동 주최한 ‘모던발레 프로젝트’는 그 절정의 공연들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한스 반 마넨, 월리엄 포사이드, 크리스토퍼 휠든처럼 춤의 명장의 작품을 표현해내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프로페셔널한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격식 있는 이브닝 파티 <블랙 케이크>

한스 반 마넨의 <블랙 케이크>는 격식 있는 이브닝 파티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흐트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파티의 초반에는 남녀 간의 관계가 왈츠를 변형한 춤을 통해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다. 세 개의 연속되는 파드되(2인무)는 순수하거나 웃기는 또는 열정적인 남녀 관계를 그려낸다. 그중 첫 번째 파드되에서 강예나는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몸놀림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파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순간, 와인에 취한 사람들의 흐트러진 모습은 유머러스하다. 술을 고파하며 훌쩍이고, 적나라하게 엉덩이를 만지고, 이끌리는 대로 키스를 퍼붓는 등 허식을 벗은 그들은 때로 솔직하다 못해 경솔하기까지 하다. 잔에 와인을 채워 관객을 향해 축배를 드는 모습은 춤의 축하연의 격식 있는 마무리였다.

월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은 세 작품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모던발레를 선보였다. 강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표정한 무용수들은 마치 작품이라는 유기체를 이루는 구성원들로서 작용하며 움직인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몸짓은 단 한 순간의 느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동작을 엮어가는 방식에서 어떤 기존의 정형성은 찾아 볼 수 없다. 숨 막히도록 죄어오는 치밀한 안무에 경외감마저 일어난다. “역시 윌리엄 포사이드”라는 말이 이 작품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될 것이다.

크리스토퍼 휠든의 <백스테이지 스토리>에서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무대의 뒷모습을 코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략의 줄거리는 프리마 발레리나(주역 무용수)가 부상을 입자 그 자리를 대신한 신예 발레리나가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찬사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스타 탄생인 셈이다.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역에 임혜경은 코믹하게 망가지는 연기로 작품의 중심에 섰다. 그 밖의 무용수들도 배역에 자신의 춤추는 삶의 단면을 투영해서인지 좀더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발휘했다. 흡사 무대의 막 뒤에서 무용수들을 바라보는 듯한 연출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영화 <홍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장이모우 감독이 이번에는 동명의 발레를 들고 왔다. 장이모우의 연출과 왕신평의 안무로 만들어진 발레 <홍등>은 강렬한 영화에 비해 좀더 우아한 서정성이 농후하다. 그동안 국내 팬들에게는 베일에 쌓여 있다시피 했던 발레 <홍등>은 성남아트센터에서부터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고양아람누리극장, 경기도문화의전당, 국립극장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의 대극장과의 공동 주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보다 서정성 강한 <홍등>

발레 <홍등>의 내용은 약간 각색되어 있다. 한 젊은 여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주의 셋째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셋째 부인은 우연히 경극 배우인 옛 연인을 만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의 밀회 현장을 본 둘째 부인은 영주에게 이 사실을 밀고한다. 두 연인은 포박되고, 영주의 관심을 받으려는 둘째 부인 역시 그들과 함께 투옥된다. 서로를 용서하는 시간도 잠깐, 그들 셋은 모두 태형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 뒤로 홍등이 지나간다. 영주가 다시 새 부인을 얻은 것이다.

<홍등>은 서양의 클래식 발레에 바탕하고 있지만, 그 소재나 전개에 있어서 중국 문화 예술의 풍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같은 동아시아권에 있는 우리에게도 이국적으로 느껴질 만큼 뚜렷하다.

작품 내내 중국의 나라 색으로 불리는 붉은색은 강렬하다. 무대 배경과 소품, 의상 등에서 붉은색은 다양한 형태로 시각을 자극하며 심미감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홍등은 남편이 부인의 침소에 들 때 켜지는 불로, 이 발레에서는 중국의 봉건 사회에서 여성의 수동적인 위치를 훌륭히 상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는 무용수들의 가늘고 긴 몸의 선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길게 트인 치마 사이로 늘씬하게 뻗어나온 다리는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중국국립발레단은 엄격한 체격 심사를 거쳐야지만 입단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웬만한 서양인을 능가할 듯한 그들의 긴 사지가 이를 증명한다.

중국 고유의 전통춤과 그림자 놀이 그리고 경극은 지나치지 않은 한도 내에서 곳곳에 적절히 삽입되어 있다. 이를테면,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영주의 관심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때 각각 부채와 손수건을 들고 전통춤을 춘다. 그 둘의 춤은 조용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기제이다. 한편, 초야에서 영주가 셋째 부인을 강제로 취하는 상황은 그림자놀이로 표현된다. 막에 비치는 그림자의 크기와 명암을 빠르게 변화시켜가며 상황의 긴박감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셋째 부인의 옛 연인은 그의 배역에 따라 경극을 행하며 등장한다. 경극의 호화로운 의상과 분장, 과장된 몸짓, 독특한 음색 등은 작품 중반에 볼거리와 흥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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