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이기고 ‘야유’받을라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5: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에 거는 기대 너무 커…경제 위기 극복, 이라크 전쟁 종식 등 ‘가시밭길’

▲ 오바마 지지자들이 미국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 모여 대통령 당선을 기뻐하고 있다. ⓒEPA

오바마 신드롬’은 계속될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오바마 신드롬’은 오바마 당선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TV 화면에는 오바마 뒤에 자리 잡은 흑백 및 세대를 아우르는 지지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자신들의 생활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들이 오바마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이다. 하지만 이 기대가 무너진다면 오히려 오바마에 대한 지지는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오바마의 참신성은 언제든 독이 될 수 있다.

암초는 곳곳에 존재한다. 우선 월가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이다. 사실 경제 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누가 더 잘 쓰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쓰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부시 정부도 금융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반면 앞으로 경제 대책에 필요한 예산이 증가하면서 차기 정부는 엄청난 재정 적자를 안고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10월31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사회는 재정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자극은 소비자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지출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출발부터 가시밭길인 셈이다.

‘친기업적’ 오바마, 서민들 기대와 충돌할 수도

게다가 부시 정부는 임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친기업적인 규제 완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10월31일 워싱턴포스트는 “환경 규제 완화 등 산업계에 큰 이득을 줄 수 있는 법안들이 현재 이야기되고 있다. 에너지업계를 위해 공해물질 배출을 완화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라고 보도했다. 경제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차기 정부에게 부시는 폭탄을 선물해줄 모양이다.

하지만 오바마 스스로가 폭탄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케인은 친기업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부시 정부에 대한 반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반면, 개혁과 변화의 상징인 오바마는 압도적인 득표를 할 수 있었다. 오바마 지지자들은 경제 회복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오바마는 친기업적인 인물이다.

지난 2월 포토맥 예비선거가 끝난 직후 비즈니스위크 홈페이지에는 “Is Obama For Business?”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메인 주의 당원집회에서 승리한 뒤 한 통의 e메일을 썼다. 선거 스태프가 아닌 UBS 은행의 CEO인 로버트 울프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두 사람은 경기 부양책의 상원 통과 여부와 주말의 G7 경제 회담에 관한 의견을 e메일로 주고받았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오바마의 중요한 경제 자문역이다. 오바마가 당선된 직후 볼커는 차기 정부의 재무장관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볼커는 이미 30년 전인 1979년 FRB 의장으로 임명된 뒤 재임 7년 동안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시행한 전례가 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금융 자본으로 뭉칫돈이 이동하면서 소수의 금융 엘리트에게 부가 편중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오랜 경제 불황이 일어나 당시 레이건 정부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마치 현재의 모습과 비슷하다.

오바마의 연설문에는 평범한 미국민들의 힘든 삶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을 예로 들며 그들을 위해 미국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해 청중들을 고무시킨다. 하지만 금융권의 거물들과 함께해 온 오바마와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오바마는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전쟁광 미국’을 바꾸는 것도 그를 뽑아준 유권자와 전세계가 오바마에게 기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착시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5년 전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정치적 영향력이 전무했던 때였다. 그러면 지금은?

오바마는 지난 7월21일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CBS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불안정하므로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추적을 위해서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중심축을 이동하려는 부시 정부의 계획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주장이었다.

차기 오바마 정부의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이다. 외신들은 그의 유임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게이츠는 지난 10월28일 카네기 국제평화기금회의 강연에서 “중국·이란·북한 등 핵 개발을 하려는 국가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응징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미국도 핵실험 재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게이츠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부시 정부의 생각이기도 하다.

‘강한 미국’ 재건 못하면 ‘흑인’이 약점으로 공격거리 될 가능성

▲ 오바마에게 ‘전쟁 종식’을 기대하기도 한다. 위는 이라크 현지의 미군들. ⓒAP연합

오바마가 장관직을 제안하더라도 게이츠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를 고려한다는 사실이 차기 정부의 대외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오바마를 ‘반전 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라크 전쟁은 전략적 실패였다”라고 생각하며 전략적 전환을 고려하는 워싱턴의 지배 계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자금 감시단체인 ‘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의 조사에 따르면 군수 산업체들이 오바마에게 낸 정치후원금은 매케인보다 34%나 많았다.

사람들은 오바마가 많은 문제점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반면, 오바마측은 당선 이전부터 기대감을 낮추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10월31일 영국의 더타임스는 “갑작스런 금융 위기로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지자 선거 진영에서는 당선 뒤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10월30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의료보험법 개정과 같은 주요 이슈의 법제화 가능성에 대해 “빠른 개혁보다는 조금씩 진전하도록 맡기는 것이 좋다”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오히려 초당파적으로 지지를 모을 수 있는 경기 부양책 등 한정적인 이슈만을 법제화할 가능성을 피력했다.

선거 때 넘었던 인종의 장벽이 오히려 대통령일 때 다시 제기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한계점이 될 수도 있다.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인종적 약점을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유권자의 기대와 달리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정치·외교적인 문제에서 실수가 발생하고, 그래서 ‘강한 미국’을 재건하지 못할 경우 ‘흑인’이라는 그의 약점은 좋은 공격거리가 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흑인 대통령을 뽑았기 때문에 이렇다”라며 공화당과 보수 언론이 공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