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리석은’ 동물이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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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심리 실험으로 인간의 비합리성에 얽힌 비밀 밝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영국 실험 심리학의 대표적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스튜어트 서덜랜드가 100가지 심리 실험 결과를 보여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뒤엎는다. <비합리성의 심리학>(원제: Irrationality)을 쓴 그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인간됨의 예외 없는 규준이라고 주장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환자를 ‘바보’로 아는 의사들은 결국 병을 오진하는 ‘멍청이’가 되고, 나폴레옹조차 멍청한 전투 계획을 고집하다 병사들을 몰살시킨다. 1분짜리 동영상 광고에 속은 관객들은 스스로 지루하다고 느끼면서도 100분짜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청렴해야 할 공무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 스스로 만든 나태와 이기심을 조장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에 젖어 공금을 빼돌리다가 패가망신한다. 왜 사람들은 타인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기도 하는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비합리적인 믿음과 행동은 아주 보편적이다. 도박꾼이나 광신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재를 선발하는 심사위원단이나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도 곧잘 통계의 함정에 빠지거나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한다. 이 책은 비합리적 판단·선택·행동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음을 갖가지 심리 실험을 통해 명쾌하게 보여준다. 실험 하나하나에서 상식적 믿음이 하나씩 깨져나간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인습이 명료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흥미로운 연구 자료들도 동원해 왜 우리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비합리성이 우리에게 끼치는 피해는 무엇인지, 또 비합리적 행위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엄숙하고 진지한 방식이 아닌, 시종 유쾌하고 익살 섞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할 증거만을 찾기에…

저자는 “불행히도 사람들은 좀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오히려 완전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이 이미 품고 있는 신념을 뒷받침해줄 증거만을 찾기 때문에 대개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라고 덧붙였다. 저자가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비합리적인 행동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 로르샤흐(Rorschach) 검사에 쓰는 잉크 반점. 피험자들은 이것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대답하고 치료에 임하기도 한다.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내리는 판단을 ‘가용성 오류(availability error)’라고 하는데, 비합리적 판단을 가져오는 다른 수많은 오류들은 사실 가용성 오류가 좀더 진전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거나 극적인 것,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가용성’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나 틀이 만드는 것으로 첫인상 효과 오류나 후광 효과, 악마 효과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보통 물질적인 보상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유인책이라고 판단해 각종 성과급과 특별수당, 상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몹시 비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여러 실험들을 통해 알려졌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든 이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칭찬 한마디’ 해주는 것이었다.

인간이 비합리적 행동을 보이는 데는 물론 통계학적 지식에 무지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맞는 증거들만 취하려는 경향이 크게 작용한다.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투사 검사(projective test)’로는 ‘로르샤흐(Rorschach) 검사’가 있는데, 환자들은 일련의 복잡한 잉크 반점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대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편집증 환자인지,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지 따위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엉덩이, 여성의 의복, 성기를 언급하는 답변이나 성별이 모호한 사람 같다는 답변은 모두 다 동성애를 의심할 만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검사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 이런 답변들이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에게서 동일한 빈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아무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려고 수많은 정보들을 고려하지만 그 정보들 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는 작업을 소홀히 해 왜곡된 해석과 판단을 낳기 일쑤이다. 자기 신념의 입맛에 맞는 증거만을 찾으려 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려고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거나 자기를 기만하기도 한다. 생각 없이 권위에 복종하거나, 군중 심리에 휩싸여 어리석은 일을 하기도 하고, 집단에 기대 극단적인 결정을 일삼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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