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따라 ‘야동’을 금하노니…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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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포르노 규제 법안’ 통과로 갈등 격화…“이슬람 윤리 강요 말라”

▲ 비무슬림 인구가 많은 발리에서는 ‘포르노 규제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는 법안 통과를 비난하는 발리 시민들. ⓒEPA
인도네시아의 발리가 뿔났다.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꿈꾸는 관광객들은 앞으로 옷을 걸치고 벤치에 누워야 할지도 모른다. 발리의 인기 코스인 민속 춤을 추는 무희들이 노출을 염려해 몸을 가려야 할 가능성도 있다. 발리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앞으로는 전통 의례를 할 때마다 하나하나 관공서의 허가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며 현실을 비꼬았다. 인도네시아 일간 영자지 ‘자카르타포스트’는 이를 두고 “코미디 같은 법안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발리의 주민들은 이 코미디 같은 법안 때문에 반정부 시위에 나서고 있다.

고민의 시작은 ‘포르노 규제 법안’이다. 인도네시아 국회는 지난 10월30일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통과되자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들은 즉각적으로 “알함두릴라(신께 감사드린다)”를 연발하며 “인도네시아의 도덕성이 부활되었다”라고 환영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던 이슬람 여성회의는 그동안 “남편들이 포르노에 노출되어 있으면 가정이 붕괴된다” “포르노 때문에 강간이나 살인이 늘 수 있어서 여성들의 안전이 위험하다”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법안은 사진이나 동영상, 만화와 애니메이션, 공연과 회화 등 문화·예술 전 영역에 걸쳐 외설적인 메시지를 전파할 경우 단속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10년의 징역 또는 50억 루피아(우리 돈 7억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법안 통과에 고무된 이슬람 보수파들은 한 발짝 더 나갈 기세이다. 누르스자바니 국민계몽당(NAP) 의원은 “나는 이 법안이 포르노를 막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폭력, 지배, 정복 등이 포르노의 본질인데 이 법에는 그런 포르노의 정의가 제대로 내려져 있지 않다”라며 법안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슬람 보수파들 “법안 더 강화해야 한다” 

이번 포르노 규제 법안이 인도네시아에서 논쟁으로 번진 것은 규제 범위가 모호해서이다. 인도네시아를 성 산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이슬람 단체들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법안을 반대하는 측은 “음란물을 단속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의 생활과 전통 양식 그리고 종교적인 가치에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대려고 한다”라고 비판한다. 처음에는 여성의 허벅지와 가슴, 배꼽을 드러내는 것까지 단속하려고 했던 법이었다.

이슬람의 윤리를 강제하려는 시도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인도네시아 여성권리운동의 회원인 아디타는 “이번 법안 통과는 보수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이 우리를 자신들만의 윤리 기준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이다”라며 우려했다. 게다가 ‘외설’의 범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문화계 인사들도 고민이 많다. “표현의 자유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처럼 여성계와 문화예술계, 발리 등을 비롯한 몇몇 지역의 반발이 거세지자 규제 법안은 조금 고쳐졌다. 관광업의 타격을 우려해 발리에서는 비키니를 허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수정 사항이었다.

제출된 뒤 10년 동안 정체되어온 포르노 규제 법안이 이제야 통과된 이유는 따로 있다. 불씨는 미국의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가 당겼다. 지난 2006년 4월 <플레이보이> 인도네시아판이 출판되자 이슬람 과격 단체인 ‘이슬람수호전선’의 회원 수백 명이 출판사를 찾아가 돌을 던지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창간호에는 속옷을 걸친 모델이 등장했을 뿐, 그 흔한 누드 사진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이슬람 보수파는 “포르노 규제 법안의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라며 <플레이보이> 사건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플레이보이> 사건을 이용하려는 보수파들에 맞서 개혁 세력과 여성단체, 문화단체들은 자카르타 중심부에 모여 6천명의 시위로 맞불을 놓았다. <플레이보이> 사건은 단순한 음란물 사건을 넘어서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의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보수파에게 포르노 규제 법안은 ‘도덕성’을 넘어 정치적인 싸움을 의미했다. 이 법안은 정치 투쟁의 영역이었다.

▲ 편집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법원 앞에서 한 무슬림이 책을 찢고 있다. ⓒEPA
자카르타 포스트는 “내년 총선거에서 이슬람교도인 대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기대감 때문이다”라고 법안 통과의 배경을 설명했다. 로이터는 “국회에서 다수파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슬람 소수 정당들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내년 총선거에서 고전이 예상되는 여당이 이슬람 유권자들의 표를 잡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의 90%가 이슬람을 믿지만 “발리로 오세요”라고 외치며 개방적인 이슬람 국가를 표방한 인도네시아이다. 헌법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발리에는 힌두교도가 많고 파푸아 주 등 동부 지방에는 기독교 신자들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슬람 보수파들의 시도는 이같은 인도네시아의 다양성을 붕괴시키고 있다.
종교 간의 갈등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간혹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레스토랑 등지에서 영업 정지를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포르노 규제 법안이 비무슬림에게 주는 압박감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법안의 20~23조에는 ‘지역 사회는 포르노의 제작과 유통 및 사용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특히 21조에 따라 사람들에 의한 감시가 가능해졌다. 자카르타 포스트는 “이 조항이 이슬람의 도덕률을 강요하는 단체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반대가 극심한 곳은 관광지이자 힌두교도가 많은 발리이다. 지난 11월15일 발리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포르노 규제 법안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이슬람교의 윤리관을 타 종교인들과 지역 주민에게 강요하는 법안이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 소송을 준비 중이다. 발리 주지사인 마데 망가 파스티카 씨는 이미 “발리에서는 민족 대립을 일으키는 포르노 규제 법안의 시행을 보류하겠다”라고 발표해 중앙 정부와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상태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다. 유도요노 대통령도 이 문제를 두고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정치적인 손익을 고려하고 있다. 라 리퍼블리카는 “유도요노 대통령이 위헌 법률 신청의 움직임과 여론을 살펴본 뒤에 서명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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