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한반도 전문가 누구를 뽑을까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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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외교 정책 위해 3백여 명 영입 북핵 문제 직·간접 경험 인물 ‘수두룩’

▲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고든 플레이크 사무총장, 샘 넌 전 상원의원,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 ⓒITAR-TASS / EPA / 연합뉴스

지난 11월18일 ‘오바마-바이든 계획’이라고 불리는 미국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계획이 나왔다. 국가 안보 정책 중 북핵 관련만 따로 떼어놓고 살펴보면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들이 위반할 경우 자동적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면서도 우선은 직접 외교에 방점을 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차기 오바마 정부에게 시급한 것은 내치이다. 무너진 미국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대외 정책에서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우선이다.

오바마 정부는 북핵 문제의 우선 순위가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일단은 외교적인 방법을 먼저 택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북한의 비핵화는 적극적으로 시도하겠지만 북핵 문제를 지금보다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을 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에 대해서는 그동안 부족한 외교 경험이 약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오바마는 그 해결책으로 경선 때부터 민주당의 ‘비둘기’들을 영입해 조언을 들어왔다. 외교 정책을 위해 영입한 사람만 3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핵심 인사들의 의견은 앞으로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인수위원회에서 대외 정책 부분은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과 수잔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가 맡고 있다. 둘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고,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까지 신생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자문단으로 활동했다는 점도 같다.

스타인버그 전 부보좌관은 오바마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될 것이 점쳐지는 인물이다. 그는 클린턴 정부 때 NSC에서 근무하며 대북 문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관여했다. 북핵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오바마가 그의 의견을 상당히 신뢰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바마 캠프에서 초기부터 국가 안보 자문역을 맡아온 라이스 전 차관보는 오바마 정부의 대외 정책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BBAB(Before Bush, After Bush)’ 라이스 전 차관보는 “대외 정책에서 부시의 8년과는 다른 길로 가겠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북핵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북·미 공동커뮤니케’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라이스 전 차관보 “부시의 8년과는 다른 길 가겠다”

경선 때부터 오바마 캠프에서 활동해온 인사들 중 샘 넌 전 민주당 상원의원도 중용될 듯하다. 그는 국방부 인수팀을 돕는 비공식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민간 핵문제 전문 연구기관인 NTI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샘 넌 전 의원은 24년간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그중 8년간을 군사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1991년 걸프 전쟁 때에는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으며 민주당 내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91년 그와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이 제출한 ‘넌-루거 법안’은 옛 소련 지역에서 핵무기를 해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자금과 장비, 기술을 제공해 옛 소련의 핵무기를 해체하고 군사적으로 쓰인 핵기술과 인력은 민간 분야로 전환하는 데 협력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오바마 당선인은 상원의원 시절 루거 의원과 함께 이 법안의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을 정도로 ‘넌-루거 법안’에 관심이 많다. 북핵 문제에도 샘 넌 의원의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 대선 기간 동안 국내에서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 정책팀장으로 알려진 프랭크 자누지는 북핵 문제의 최일선에 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전문위원인 그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 라인을 담당할 것이 유력하다.

자누지는 1993년 북핵 위기 때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평양도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지난 2004년에는 영변 핵시설을 시찰하고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면담한 경험도 있다. 그는 지난 11월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의 한반도 전문가 회의에서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을 만나 상견례 겸 간단한 의견 교환을 한 바 있다.

당시 이 자리에는 성 김 국무부 북핵 담당특사, 토머스 허바드·스티븐 보스워스·도널드 그레그 등 전직 주한대사,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전·현직 관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중 보스워스와 그레그 전 주한대사는 한반도 문제에서 오바마의 핵심 자문역을 맡고 있다.

한반도 담당할 동아태 차관보 자리 놓고 고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사무총장도 오바마의 대북 라인에 들어 있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에 관해 “오바마는 외교의 중요성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과 공조에 비교적 잘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 캠프에서 북핵팀장을 맡았던 조엘 위트 컬럼비아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도 중요하다. 그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상 때도 참여한 바 있는 북핵 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자누지가 좀더 넓은 범위의 한반도 정책팀을 담당하고 있다면, 조엘 위트는 그중 북핵 문제에 집중한 인물이다. 위트는 지난 2월12일부터 4박5일간 북한을 방문해 ‘넌-루거 프로그램’에 관해 북한과 논의를 한 바 있다.

위트가 2월16일 북한을 떠나고 얼마 뒤인 2월26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의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에 깊이 관여한 바 있다. 철저한 대북 관여 정책을 주장하던 페리는 부시 정권의 북한 정책에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지난 5월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고문에서 “부시 정권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시켜 핵무기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오바마 진영의 자문 그룹에 속해 있다. 페리와 함께 클린턴 정부의 북핵 협상을 이끌었던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자문 그룹의 일원이다.

오바마 진영에는 한반도와 연을 맺은 사람도, 북핵 문제에 관해 직·간접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한반도를 담당할 인물들의 윤곽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권 인수팀이 발족하고 인수위원들은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반도를 담당하는 직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기존의 동아태 차관보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 핵문제만을 전담으로 처리하는 자리를 따로 떼어내 만들 것인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장관급으로 격상시킨 북·미 조정관 자리를 신설해 깊이 있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북핵 협상을 주도할 인물들은 앞선 위상 문제가 먼저 정리되고 난 뒤에야 얼굴을 내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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