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기업만 외풍에 약한가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11.2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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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증권, ‘Z 모델’ 리포트로 불난 집 부채질…외국인은 무차별 주식 매도

▲ 노무라 증권이 작성한 리포트는 국가별 자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연합뉴스
서울에 첫눈이 내렸던 지난 11월20일, 코스피는 1천 포인트를 깨고 다시 수직 하락했다. 파랗게 물든 주식 시세판은 일정한 간격으로 하한가 종목을 알리는 화살표가 더해져 시장의 방향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금융 부문)에서 메인스트리트(실물 부문)로 옮겨진 위기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3사가 첫 번째로 구조 신호를 보내왔다. ‘빅 3’로 통칭되는 미국의 GM·포드·크라이슬러는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망해버릴 것이라는 협박을 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떠나는 마당에 추가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고, 지원을 약속한 오바마 당선인은 힘이 없는 상황이다.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권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효율성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새로운 구조 요청의 손길은 계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미국의 실물 경제 위기는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다우지수는 8천 선을 깨고 10년 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던 시절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런 미국 시장의 위기가 우리나라 시장에는 더 큰 파급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다. 다우지수가 8천 포인트를 깨던 날, 국내 증시는 단기적 지지선인 1천 포인트 밑으로 수직 하강했다.

개인과 기관은 그나마 매수 우위를 보였지만 유일하게 매도 우위를 보인 외국인의 힘에 밀려 하루 만에 6.7%가 하락하는 무기력함을 보였다. 11월 들어 외국인은 단 이틀만 제외하고 2조원 이상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건설사들이나 중소 조선업체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고, 여기에 자금이 물려 있는 금융 기관들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은 이제 군색한 지경이다.

손절매에 가까운 수준에도 내다 팔아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매도는 무차별적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환율도 무시된다. 주식을 팔아 원화 자금을 마련해도 1달러에 1천5백원까지 오른 환율을 감안하면 손에 쥘 수 있는 달러 금액은 얼마되지 않는다. 특히 매도한 주식도 이미 손절매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유동성 문제에, 국내 시장에서 환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닌 까닭에 거침이 없다. 앞뒤 잴 틈이 없는 시간과의 싸움인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환율 급등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국내 시장에서 34조5천억원 상당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그런 탓에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지분 비율은 29% 밑으로 떨어졌다. 2000년 수준이다. 외국인 지분율은 2004년 44%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신용 위기가 불거진 이후의 지분 감소율은 극적인 수준이다. 국내 증시의 바닥권 수준을 점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1백60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보유 주식의 거래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국내 주식이 가격은 낮아졌지만 기관과 개인의 탄탄한 수요를 기반으로 현금을 확보하기 가장 용이한 시장이라는 점을 외국인 매도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거기에 난데없는 Z값 논란까지 이어진다. 노무라 증권이 지난주 ‘주식시장 전략’이라는 리포트에서 한국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아시아에서 꼴찌 수준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 되지나 않을까 싶다. 이 보고서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발표 이후 외국인의 매도세는 미국 시장의 악화와 함께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Z-Score 모델’로 불리는 이 모형은 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 1968년 에드워드 알트만 교수가 개발한 다변량 판별 모형이다. ‘순운전자본/총자산, 이익잉여금/총자산, 영업이익/총자산, 자기자본의 시장가치/총부채, 매출액/총자산’이라는 다섯 개의 재무 비율에 일정한 가중치를 곱해서 더한 값의 크기를 기준으로 도산 가능성을 판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계산한 Z값이 1.81 이하이면 부실한 기업으로, 1.81에서 2.99 사이이면 유보적인 상황으로, 2.99 이상이면 정상적인 기업으로 판정을 한다. 알트만에 의하면, 이 방식을 사용하면 기업이 도산하기 1년 전의 경우, 95%의 정확성으로 도산 기업의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노무라의 리포트에 의하면 이 Z값으로 계산한 국내 기업의 실상은 처참하다. 아시아의 3백20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건전한 기업의 비중이 15%로 분석 대상의 평균인 49%에 한참 미달한다. 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기업의 비중은 35%로 홍콩의 41%와 함께 평균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기업의 국가별 평균 비중은 우리나라를 포함해도 20%에 불과하다. 한 방에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열등기업 국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중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비교 대상이 되는 모든 나라들에 비해 건전한 기업의 비율이 최저 수준이다. 반면 위험할 수 있는 기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 싱가포르, 한국, 홍콩 순이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선 국가별 대상 기업이 적절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단순히 한 나라의 몇 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분석을 가지고 국가 전체를 평가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위기에 처한 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아시아 지역에서도 비교적 국제화가 많이 진전된 국가들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알트만의 Z 모형은 기본적으로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사용해 계산된다. 따라서 회계 원칙이 다르거나,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 동일한 명칭의 계정과목이라도 그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행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Z 모형을 개량해 국내 기업들의 상황에 맞는 별도의 모형을 개발해 적용한 바 있다. 건전한 기업이 가장 많은 것으로 계산된 중국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국가들이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회계 원칙을 사용해 그 자료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증시가 외국인의 매도세에 의해 세계적인 시각에서도 급격한 하락을 보이니까 그만큼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외국인의 매도세는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이미 디레버리지(De- leverage), 디플레이션(Deflation), 부채(Debt) 등 3D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레버리지를 줄이고 안전 자산으로 복귀하기 위해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국면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상태는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왕 팔 것이라면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메릴린치는 “중국이 가장 나은 시장” 평가

메릴린치가 11월19일 발표한 글로벌 펀드매니저 서베이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펀드매니저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 대해서는 비중을 축소하면서, 브릭스(BRIC) 국가들 중 중국 시장이 가장 나은 시장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조치에 대한 신뢰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정부는 2조 위안의 대규모 철도 건설 프로젝트, 4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 9천억 위안의 주택 보장 투자 등 일련의 경제 회생 조치들을 발표하면서 시장 안정화에 노력하고 있다. 4조 위안이면 충분하다는 시장의 평가도 받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상위 2%에 해당하는 국민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종부세 싸움이 나머지 98%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앞서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증시를 살리라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심리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시장이 신뢰는커녕 절망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을 고민해달라는 것이다. 중국의 대응 방안들을 배우기 위해 신사유람단이라도 파견해야 한다면 보내드리자. 세금은 원래 그런 데 쓰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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