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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때문에 민주주의가 헷갈려

태국, 반정부·친정부 시위대 충돌 계속돼…양극화 해소 등 근본적 해결 있어야

김회권 ㅣ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2.01(Mon) 17: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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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정부 시위를 벌이며 공항을 점거했던 태국의 반정부 시위대원 한 명이 태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

태국 어섬션 대학 산하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에이백폴은 지난 11월24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최근 친정부 시위대와 반정부 시위대로 나뉘어 극도로 혼미해진 태국 정세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질문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처신 문제로 모아졌다.

여러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해외에 체류 중인 탁신 전 총리는 12월 중순쯤 휴대전화를 이용해 정계 복귀를 선언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에이백폴은 “조사 결과 탁신 전 총리가 정치 활동을 중지할 경우 국민에게 더욱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에이백폴은 방콕 인근 수도권에 거주하는 2천7백22명을 대상으로 탁신 전 총리의 정계 복귀 선언에 대해 물었는데 47.3%의 응답자가 ‘별다른 감정이 없다’라고 답한 반면, 57.6%는 ‘정치 활동을 중지할 경우 더 많은 인기와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현재 반정부 시위대는 “탁신을 반대한다”라며 격렬히 저항 중이고 친정부 시위대는 “탁신을 지지한다”라며 맞서고 있다. 막상 당사자인 탁신은 태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에는 망명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영국 입국 비자를 취소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그런 탁신은 여전히 태국에서 1인자로 대접받고 있다. 에이벡폴의 여론조사 주제가 태국의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민·저소득층, 탁신이 재기해 빈곤 추방해주기 바라

지난 1월 태국에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2006년 9월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처음 들어선 정부이다. 쿠데타로 인해 온갖 부패와 추문으로 얼룩진 탁신은 결국, 실각하고 해외로 떠났다. 선거를 통해 새롭게 여당이 된 ‘국민의 힘(PPP)’의 수장 사막 순다라벳은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PPP의 승리는 사실 탁신의 승리였다. 사막이 이끄는 ‘국민의 힘(PPP)’은 선거 때 줄곧 탁신을 지지한다고 말해왔다. 사막 스스로가 “나는 탁신의 대리인이다”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PPP의 승리는 빈곤 대책의 지지를 의미했다. 국민의 힘이 선거에서 주장했던 정책은 ‘농촌 기금의 부활’ ‘대규모 인프라 정비 계획’ 등 탁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정책들이었다. 쿠데타의 시발점이었던 탁신은 쿠데타가 정리된 뒤 다시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현재 태국의 혼란은 탁신이 제공했다. 또 하나 더 있다. 탁신에게서 비롯된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관점이 이번 혼란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의 정치와 경제는 2001년 6월 총리에 오른 탁신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7년 통화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아래 펼친 긴축 재정으로 태국의 경제는 침체기를 겪었다. 가장 큰 피해는 농민과 중산층에서 몰락한 저소득층에게 돌아갔다. 특히 구제금융 사태 이후 태국에서도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고, 계층 피라미드의 아래에 위치한 농민과 저소득층은 빚과 마약에 빠지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2001년 사회적으로 고통을 겪던 지방의 농민들이 압력단체 ‘빈민 연합’과 연대하며 정치적 권리를 주장했다. 도시의 엘리트나 지방의 농민이나 선거에서는 같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탁신은 이들을 공략해 승리했고 총리로 취임했다. 탁신은 시정 연설에서 경제 회복과 약자 구제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표명하면서 다음의 항목을 정책 과제로 우선 꼽았다.

△농민 부채의 3년간 유예 △각 촌락에 100만 바트 규모의 농촌기금 설립 △시민 은행을 설립해 저소득층에 대한 융자 강화 △중소기업 은행을 설립해 기술 육성, 고용 촉진, 소득 향상, 수출 지원 실시 △자산 관리 기구 설립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사업의 효율화 도모 △전 질병에 대해 1회 30바트 진료로 저소득층의 의료 편리 도모 △마약 중독자 갱생 시설의 설립과 마약 박멸 등이다.

이런 정책은 농민과 저소득층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빚의 변제가 연기되었다. 농촌기금으로 자동차를 사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저금리 융자를 받게 되면 하루 벌어 근근이 먹고사는 고통스런 생활에서 숨을 돌릴 수 있다.

특히 공짜나 다름없는 저렴한 의료비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빈곤에 대한 극약 처방은 태국 인구의 60%로 추정되는 농민과 저소득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탁신이 계속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한 표를 행사했다. 태국 타마삿 대학의 스비나이 교수는 “이전의 정권에서 무시당했던 농민과 저소득 계층이 정치적으로 눈을 뜬 과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무시당한 도시의 엘리트 계층과 농촌의 부유층은 탁신에게 강한 정치적 반감을 품게 되었다. 반정부파의 뒤에는 탁신의 정책으로 이권을 잃게 된 사업가나 정치인, 노조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태국의 프리랜서 기고가인 파니탄 씨는 “반정부 투쟁이 장기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연료를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배후설에 힘을 실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단체는 민주주의시민연합(PAD)이다. 그들은 2006년 탁신 정부가 쿠데타로 물러나는 데 일조한 바 있다.

엘리트 계층과 농촌 부유층, 쿠데타로라도 정치 개혁 희망

   
▲ 11월1일 라자망가라 스타디움에 모인 현 정부 지지자들이 탁신 전 총리의 화상 연설을 보고 있다. 이날 탁신은 “나를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은 민중의 힘뿐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AP연합

이들은 탁신의 정치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그를 지지하는 지방 사람들을 ‘중우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표현한다. PAD의 가장 큰 고민은 우선 지금의 투쟁이고, 그 다음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 현실 정치의 한계이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정치’를 제안 중이다. 이들은 “현재의 태국 정치는 일부의 정치인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표를 돈으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한다. 반정부파가 정치 개혁을 생각하는 이유이다. 물론 그 전에 현재의 잘못된 정부를 추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들은 선거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70%의 의원은 각 직능 대표나 단체의 대표로 임명하고, 나머지 30%만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의 선거 결과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과 농민이나 저소득 계층이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이다.

하지만 PAD를 중심으로 한 반정부파가 자본에 의한 정치는 반대하면서도 2006년의 경우처럼 군의 개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PAD가 지난 8월 총리관저 점거를 시작으로 지난 11월25일 수완나품 국제공항까지 점거하는 등 격렬히 투쟁하자 “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할 만한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PAD는 탁신이 태국을 공화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자신들은 왕정 지지자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군이 왕정을 옹호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이제 탁신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싸움은 한 인물에 대한 찬반의 단계를 넘어섰다. 태국의 계층 및 지역 갈등 그리고 엇나간 대의민주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고차원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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