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심장 겨눴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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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회장을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과연 ‘비자금의 꼬리’를 잡은 것일까.

▲ 11월28일 검찰이 태광실업을 압수 수색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노무현 정부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것인가.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박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정권 핵심 인사와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검찰 수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핵폭발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를 넘어서까지 수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검찰은 “(박회장 회사와 관련해) 회계를 분석해보아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부분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상황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회장을 노 전 대통령 그룹의 ‘로열 패밀리’의 한 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 노건평씨는 부동산을 사고파는 등 절친한 관계이고 노 전 대통령 참여정부 인사들과도 이러저러하게 얽혀 있다.

▲ 왼쪽부터 박용석 중수부장, 임채진 검찰총장, 권재진 대검 차장. ⓒ연합뉴스

‘박연차 수사’ 강도 높인 배경

이번 수사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맥락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집권 초부터 지난 정권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에 대해 칼을 들이댔던 검찰은 박회장과 관련해서도 5월쯤부터 축적된 자료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남경우 전 농협축산경제 대표의 비리를 수사하면서 휴켐스가 박회장에게 넘어갈 때의 의혹 등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해 검찰에 넘겼다. 대검 중앙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경찰에서 넘어온 자료와 그동안 축적되었던 파일을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검찰 관계자가 “사건을 쥐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수사해왔다.

이런 와중에 국세청이 뛰어들었다. 7월부터 박회장이 운영하는 신발 제조회사인 태광실업과 골프장을 운영하는 정산개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들 회사는 경남 김해에 있는데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직접 칼을 빼들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착수 또한 권력 변화에 따른 정치적인 행태로 해석되었다. 국세청은 10월 말에 12월5일까지로 조사 기한을 한 차례 연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국세청은 2차 조사가 끝나기도 전인 11월21일 박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혐의는 박회장이 해외에 유령 회사를 세워 거래하는 과정에서 2백억원대의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검찰과 국세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박회장을 압박하는 데는 양 기관 수장들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올 중반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임채진 검찰총장, 한상률 국세청장과 관련한 소문은 하반기 내내 두 사람을 괴롭혔다. 한 관계자는 “잊을 만하면 새로운 소문이 나와 미칠 지경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권을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 “후원하는 건설사가 있다”라는 등의 소문은 대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은 내부는 물론 경찰, 심지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까지 영향을 미쳐 음해성 정보가 사정 기관과 여권 내부에 흘러다녔다. 임총장과 한청장은 이 때문에 각계 요로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다. 또 임총장은 경남 남해, 한청장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의 주류인 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의 핵심은 대구·경북 세력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선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조만간 가시화할 ‘개각’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박회장에 대한 두 기관의 강도 높은 수사와 조사 막후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태광실업보다 ㅈ사를 눈여겨보라”

▲ 노건평씨 몫으로 지목된 상가. ⓒ시사저널 임준선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박회장에 대한 조사는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국세청은 박회장의 탈루 혐의를 잡았고, 세무조사 과정에서 출처와 주인이 불분명한 뭉칫돈의 존재를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농협이 세종증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인 정화삼씨와 정씨의 동생에게 세종증권측이 30억원을 준 사실을 확인해 구속했다. 나아가 당시 농협 회장이었던 정대근씨와 친분이 두터운 노건평씨에게까지 칼끝을 겨누고 있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와 관련해 관심이 가는 대목은 전 정권 핵심 인사와 관련 있는 비자금을 발견했는가, 했다면 수사가 거기까지 나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국세청이 조사 과정에서 박회장 소유가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수십억 원의 뭉칫돈을 발견해 실제 주인이 지난 정권의 핵심 인물이 아니냐고 박회장을 압박했다”라고 보도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일단 노건평씨를 능가하는 지난 정권 핵심 인사의 연루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국세청도 내부 직원들에게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해 함구령과 언론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조사 내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용이 흘러나와도 검찰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국세청이, 2백억원을 탈세했다며 박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태광실업의 해외 법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태광실업보다 ㅈ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지난 정권의 핵심 인사와 관련해 무언가를 찾았다면 이 회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확보하고 있던 유력한 카드 가운데 하나가 이 회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 경선 캠프에서 일했던 이 관계자는 “캠프 핵심부에서 경선이 있기 약 한 달쯤 전에 이 회사가 당시 여권 핵심부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추적에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관련자들이 두세 차례 현지에 내려가 조사하고 자료화하는 작업을 할 때쯤 당시 여권의 대선 구도가 바뀌면서 힘이 실리지 않아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를 내세우려던 친노무현 그룹이 정동영 후보에게 밀리면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노무현-이해찬’을 공격 대상으로 하던 전략이 정동영·문국현 후보나 이회창 후보쪽으로 바뀌면서 이 정보가 카드로서의 효용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일을 관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사는 “지난 일이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입을 열지 않았다. ㅈ사와 관련된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3의 인물’인 ㅂ씨는 현재 지방에 있는데 전화를 피했다. 여비서는 “메모는 전했는데 말씀 없이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 관계자는 “사정 당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사정 당국은 이번 조사를 통해 지난 정권 핵심 인사의 아킬레스건을 확보한 셈이 된다. 공개하지 않는다 해도 ‘알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상당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정치적인 목적의 수사이다. 별다른 내용 없이 끝날 것이다. 돈을 받았거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보도 후 국세청 움직임 빨라져

▲ 노건평씨 몫으로 지목된 적막감이 도는 노건평씨 자택(위). ⓒ시사저널 임준선

대선 전 선거 구도가 짜여지면서 ㅈ사 카드가 폐기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노건평씨와 인연을 맺었다.(<시사저널> 제996호. ‘추부길-노건평 핫라인’ 기사 참조) 추 전 비서관이 노씨와 만나게 된 것도 지난 정권의 ‘민감한 부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대선 전 추 전 비서관이 소개해 건평씨와 이대통령측 고위 인사가 만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추부길-노건평 라인이 단순히 사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경우도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추 전 비서관은 “전·현 대통령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추 전 비서관이 최근 노건평씨의 부탁을 받고 박연차 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움직인 데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말할 수 없다”라고 했던 추 전 비서관은 <시사저널> 보도 이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능력이 없는 사람이고, 그 양반도 체면이 있지 박회장까지 이야기하겠느냐”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추 전 비서관이 여권 핵심부를 상대로 박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움직인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공교롭게도 <시사저널> 보도가 나간 11월17일 이후 검찰과 국세청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추 전 비서관을 매개로 한 박회장이나 노건평씨의 ‘구명 로비’가 오히려 핵심부를 분노케 해 역효과를 낸 것이 아니냐”라고 추측했다. 검찰은 지난 11월18일 세종증권을 압수 수색했고, 21일 정화삼씨와 동생을 체포하는 등 일사천리로 수사를 진행했다. 국세청이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에 넘긴 자료에 ㅈ사와 관련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의 한 소식통은 “검찰이 비자금의 꼬리를 잡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검찰 수사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그만큼 박회장에 대한 수사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분명한 것은 전·현 정권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험로를 걸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덩달아 여권 내부에 은밀하게 통용되었던 ‘로열 패밀리는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묵계도 깨졌다. 검찰은 진정 ‘비자금의 꼬리’를 잡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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