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본능’
  • 유창선 (시사평론가) ()
  • 승인 2008.12.09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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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떨치는 민주당

▲ 유창선 (시사평론가)
장면 1 : 민주당은 김민석 최고위원을 지키는 데 나섰다. 사전 구속영장 집행까지 저지하며 버티었지만,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최고위원은 구속되었다.

장면 2 : 종부세 폐지 반대에 거당적으로 나서며 1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였지만 ‘제2의 촛불’이 되지는 못했다. 종부세 일부 위헌 판결이 내려졌고, 결국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종부세법 개정 절충을 벌이게 된다.

장면 3 : 재수정 예산안 제출, 감세 법안 철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예산 심사를 계속 거부했다. 급기야 상임위 전면 거부까지 갔다.

장면 4 : 가족이 쌀 직불금을 수령했지만 쌀과 비료 구매 실적이 없는 국회의원 명단을 그대로 공개했다. 당사자들은 가족이 실제 경작하고 있음을 밝히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후폭풍을 맞았다.

최근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들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와 투쟁에만 익숙한 과거 시대 야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간에, 사안만 생기면 일단 반대하고 터뜨리고 투쟁부터 하고 보는 야당의 본능이 민주당에 살아넘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보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관성조차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과정은 보여주고 있다.

옛날 그대로인 개혁-실용 갈등

그래서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민주당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실제로 민주당의 앞길에 대한 우울한 전망들이 당내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진단과 처방조차도 상이하다. “선명 야당의 깃발을 들고 투쟁해야 한다”라는 흐름이 있는 반면, “무조건적인 반대로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라는 흐름이 있다. 정세균 대표 체제를 좌우에서 비판하고 있는 두 입장 사이의 충돌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에서의 개혁-실용 노선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관전자로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벌써 몇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정권 교체가 있었고 정치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했는데도, 민주당 내부에서의 논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범하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그들이 국민의 마음과 같이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이 부딪히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는 경제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역시 경제 위기 극복의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 생활을 챙기는 데 진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와 관련해 국민에게 어떠한 인상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절박한 요구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선명한 투쟁’으로만 제1 야당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방식으로는 경제 위기 시대의 책임 있는 야당으로 신뢰받기 어렵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노선도 바뀌는 것이 마땅하거늘, 민주당은 과거식 야당의 모습을 답습하는 데 안주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저렇게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이 유지되도록 하는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 아닐까. 이제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야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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