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용병’들 코트가 화끈하다
  • 노우래 (스포츠칸 기자) ()
  • 승인 2008.12.0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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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구단마다 맹활약하며 ‘흥미진진’ 레이스 펼쳐

▲ 삼성화재의 안젤코(가운데)가 LIG의 칼라와 진상헌을 앞에 두고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월22일 막을 올린 NH농협 2008~2009시즌 프로배구 V리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라운드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시즌 V리그의 두드러진 특징은 특급 용병들의 등장이다. 예년과는 달리 양질의 용병들이 한국으로 진출해 흥미진진한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용병 제도가 도입된 2005~2006시즌 이후 이번처럼 용병들이 승부를 좌지우지한 적은 없었다. 쿠바 국가대표 출신인 칼라를 보유한 남자부 대한항공과 도미니카 현 국가대표인 데라크루즈를 영입한 여자부 GS칼텍스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항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GS칼텍스는 벌써부터 내년 시즌 두 선수의 잔류를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걸출한 용병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번 시즌 V리그 초반 상황을 점검해보았다.

지난 시즌 국내 프로배구에서 활약한 용병들은 대거 기량 미달로 퇴출되었다. 유일하게 재계약에 성공한 용병은 삼성화재 라이트 안젤코뿐이다.

입단 당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안젤코는 무늬만 용병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조련을 받고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정규 시즌 중반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안젤코는 MVP(최우수선수)와 득점상, 서브상까지 거머쥐었다.

지난 시즌에 안젤코가 눈에 띄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대한항공 레프트 칼라와 GS칼텍스 레프트 데라크루즈가 주목을 받고 있다.

칼라는 15세부터 각종 국제대회에서 쿠바 대표팀 선수로 뛰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에 참가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칼라는 미국 버밍엄 영 대학을 거쳐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2백5㎝·94㎏으로 파워 넘치는 공격뿐만 아니라 블로킹과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

대한항공 돌풍 이끄는 칼라의 힘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대한항공이 영입한 쿠바 출신 칼라는 내가 지난 시즌 뽑고 싶었던 훌륭한 선수이다. 올해는 좋은 선수를 데려간 대한항공이 가장 많은 이슈를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호철 감독의 말처럼 칼라는 시즌 초반 대한항공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타점이 무려 3백70㎝인 칼라의 기량은 발군이다. 주전 세터인 한 선수와 겨우 5번 호흡을 맞추고 출전한 11월23일 인천 LIG손해보험전에서 서브 에이스 6개를 포함해 22득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는 탄력을 앞세워 공격 성공률은 60.87%에 달했다. LIG손해보험 박기원 감독도 칼라의 플레이를 지켜본 뒤 “외국인 선수가 연타까지 구사한다. 한국 무대에 빨리 적응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칼라가 가세한 대한항공은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1라운드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마저 침몰시켰다.

여자부에서는 데라크루즈가 눈에 띈다. 데라크루즈는 15세에 배구를 시작해 19세에 도미니카 대표팀에 발탁되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데라크루즈는 올해 베이징올림픽 세계 예선 득점 4위, 그랑프리 득점 2위에 올랐고 지난해 일본 리그에서 소속팀 도레이를 정상에 올려놓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명불허전이었다. 데라크루즈는 국내에 들어온 용병 중 최고라는 평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1백88㎝·71㎏의 데라크루즈는 1라운드 도로공사전에서 23득점을 올리면서 가볍게 몸을 푼 뒤 라이벌 흥국생명전에서는 무려 38득점을 쓸어 담았다.

도로공사 박주점 감독과 흥국생명 황현주 감독은 데라크루즈에 대해 “소문처럼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블로킹 위에서 때리는 타점 높은 공격이 인상적이다. 쉽게 막지 못할 것 같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번 시즌 용병 국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국내 코트를 주름잡던 브라질·미국 선수들이 퇴장하고 다국적 용병들이 코트 중심에 자리했다.

내년 시즌부터 출전 시간 제한하기로

지난 시즌까지는 브라질 용병이 대세였다. 대한항공 알렉스·보비, 삼성화재 아쉐와 레안드로, LIG손해보험 키드, GS칼텍스 안드레이아와 하께우, KT&G 루시아나와 페르난다, 흥국생명 마리 등은 세계 최강 브라질 출신이다.

브라질과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미국 선수로는 LIG손해보험 프레디, 현대캐피탈 루니,흥국생명 윌킨스, 도로공사 레이첼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용병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남자부는 4명 모두 국적이 다르다. 쿠바 칼라, 크로아티아 안젤코, 네덜란드 카이, 미국 앤더슨까지 각국 대표 출신 선수들이 국내 무대로 뛰어들었다.

여자부도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가 출신들이 대거 합류했다. 데라크루즈와 도로공사 밀라는 도미니카, 흥국생명 카리나와 아우리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KT&G는 헝가리 출신 마리안을 영입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기량이 뛰어난 용병들의 합류로 국내 코트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내 선수들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용병들의 공격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국내 선수들은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보조 역할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기량이 뛰어난 용병들의 등장으로 국내 공격수의 성장이 방해받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진준택 감독은 국내 선수를 살리기 위해 용병의 경우 라이트가 아닌 레프트를 찾느라 고생했다. 진준택 감독은 “경기에서 라이트는 1명밖에 뛸 수 없다. 국내 공격수에게 뛸 기회를 주기 위해 레프트를 영입했다”라고 밝혔다.

배구와 함께 인기 겨울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농구에서는 장신 센터 용병의 영입으로 꿈나무들이 센터 포지션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 점을 우려해 남자 프로농구는 내년 시즌부터 용병의 출전 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번 시즌까지는 2~3쿼터에만 용병 1명을 기용할 수 있지만 내년 시즌에는 1~4쿼터까지 무조건 1명만 투입해야 한다.

특급 용병의 등장으로 빛과 그림자가 노출된 국내 프로배구가  어떤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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