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불씨’가 핵 전쟁 뇌관 건드릴라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12.0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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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테러로 인도-파키스탄 갈등 고조

▲ 11월29일 인도 뭄바이 시민들이 파키스탄 국기를 태우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12월2일 파키스탄 물탄에서 인도 국기를 태우는 파키스탄 무슬림들. ⓒEPA

거의 2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뭄바이 테러는 테러와의 전쟁이 부시 대통령만이 아니라 인도나 파키스탄의 전쟁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판 9·11로 불리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양국 관계는 2001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당시 파키스탄 특공대의 인도 의회 공격으로 양국은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다. 영국은 60년 전 카시미르를 분할해 이슬람 인구가 많은 지역을 인도의 관할 하에 두었다. 인도에 귀속된 무슬림들은 힌두족의 냉대를 받으면서 증오를 품고 살아갔다.

힌두족과 무슬림의 갈등으로 양국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이번 테러의 범인들이 카시미르 분쟁 지역에서 왔고, 파키스탄이 이들을 도왔다는 일부 증거가 나옴으로써 사태는 예측불허로 치닫고 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도의 영향력 증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인도는 파키스탄 내 과격 이슬람 반군과의 전쟁이 인도 내부로 파급되는 것이 싫다. 이런 지정학적 배경에서 뭄바이 유혈 사태가 터졌다.

핵을 보유한 두 나라가 이번 일로 무력 충돌이라도 하는 날에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리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국이 갈등하면 가장 좋아할 측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이다. 이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적대할수록 미국과의 싸움에서 유리하다. 미국이 다급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인도는 자국 주재 파키스탄 대사를 불러 파키스탄의 개입설을 제기하고 응분의 조치를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에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을 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도는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따라서 두 나라가 불화하면 미국의 대테러 작전은 치명상을 입는다. 부시 대통령이 나토 회의 참석차 런던을 방문 중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즉각 인도에 파견한 것은 사태의 긴박성을 말해준다. 라이스는 런던에서 인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양국이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주기를 주문했다. 부시는 마이크 밀런 합참의장도 인도에 보냈다.

생포된 테러범 “인도 뭄바이 테러 배후에 파키스탄 있다” 주장 

테러의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는 주장은 생포된 테러범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다. 카사브라는 이름의 이 용의자는 인도 범죄수사국 간부에게 자신이 과격 이슬람 테러 조직 라스카르 에 타이바의 멤버이며 파키스탄에서 테러 훈련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조직은 탈레반 및 알카에다와도 공조하면서 인도가 관할하는 카시미르와 여타 지역에서 여러 번 테러를 자행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소지품에서는 관련 증빙 서류가 발견되지 않았다. 파키스탄은 테러 배후설을 일축하면서 관련 사실이 확인된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테러범 10명 중 9명은 사살되었고 1명은 체포되었다. 인도는 테러를 기획한 용의자 20명이 현재 파키스탄에서 은신 중이라며 이들의 인도를 요청했다. 

이번 테러로 인도 정부에 대한 국민 감정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인도 정보 당국은 대도시에 대한 테러가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를 여러 번 무시해온 데다 테러 작전에서도 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이로 인해 집권 의회당 소속 내무장관과 보안장관이 사임했다. 미국의 정보 기관은 2007년 인도의 대도시에서 테러가 있을 것임을 경고했으나 인도는 이를 무시했다. 인도 해안은 테러범들의 침투에 무방비 상태이다. 이번 공격을 자행한 테러범들은 모두 보트를 타고 해안으로 침투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전 경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도 보안 당국에 대한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게다가 테러 현장에 급파된 특공대는 단 10명의 범인을 제압하는 데 60시간을 허비하는 무능을 보였다.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를 놓고 인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스스로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데칸 무자헤딘 조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파악한 것이 없고, 이들의 말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 그래서 카시미르 분쟁 지역에서 왔다는 라시카르 무장 조직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이들은 한때 파키스탄 정보국의 지원 또는 비호를 받다가 2001년 불법화된 조직이다. 인도와 미국 정보 기관은 이들이 지금도 파키스탄과 모종의 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두 핵보유국 간에 긴장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는 경우이다. 파키스탄은 이미 인도와의 충돌에 대비해 파키스탄 북부에서 알카에다를 소탕하던 다수의 병력을 인도 접경으로 이동할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알카에다는 더욱 활개를 칠 것이 뻔하다.

마노한 싱 인도 총리는 아직까지는 최대한의 자제를 보이고 있으나 당장 파키스탄에 보복을 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증거가 있든 없든 일단 파키스탄에 본때를 보여주라는 것이 인도 국민의 심정이다. 그러나 무력 충돌할 경우 막대한 인명 손실은 물론이고 잘 나가는 인도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인도 지도자들은 국내에서 종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일설에는 인도 내 무슬림들이 그동안 힌두족에 비해 심한 인종 차별을 받은 데 앙심을 품어 테러를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파키스탄 내 알카에다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로 입증되면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종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인도에 자생한 테러 조직일 수도 있어…진상 조사가 급선무

현재로서는 감정을 억제하고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파키스탄의 민선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이 최고 정보 기관 ISI의 책임자를 즉각 인도에 보내 공동 조사를 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파키스탄 배후설이 나돌고 있음에도 이번 테러가 인도 안에서 자생한 테러 조직의 소행일 수 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뭄바이 테러는 규모와 심도 그리고 상징성에서 기존 테러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격을 받은 타지마할 호텔과 오베로이 호텔은 인도의 번영과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 시설이다. 따라서 이 호텔들에 대한 공격은 인도 사회에서 소외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한풀이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낳는다. 이는 5개 지방의회 선거에 맞춰 테러가 발생한 사실 때문에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집권 의회당은 무슬림 표를 의식해 이전의 테러에 온건하게 대처했다고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의 BJP당은 주장한다. 이에 의회당은 이번 사건이 BJP가 힌두교 표를 모으기 위해 무슬림을 배척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사실 인도에서 종교적 감정을 정치에 이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테러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힌두교도는 대부분 석방되고 무슬림은 가혹한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그 결과 무슬림들은 정부를 불신하며 극단주의에 빠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국제 지하드 조직에 가담하고 더러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테러리스트들과 제휴했다. 정부가 이들의 활동에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이번에는 힌두교도들도 정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이래저래 두 종교 세력으로부터 불신을 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과격 단체가 뭄바이를 공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뭄바이 테러는 오바마 미국 차기 행정부에 악몽을 안겨준 셈이다. 오바마는 부시가 넘겨준 알카에다와의 전쟁 외에 이번 사건을 일으킨 또 다른 테러 조직을 상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그는 필요하면 파키스탄 내 테러 조직을 공격하겠다는 인도 정부의 으름장에 대해 “누구나 주권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라며 일단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했다. 파키스탄의 협조도 의식해야 하는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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