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제2 중동’ 되는가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1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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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 이어온 종교 갈등, 뭄바이 테러로 ‘폭발’…세계화로 인한 빈부 격차가 대립 부추겨

▲ 12월4일 파키스탄의 한 이슬람 단체가 뭄바이 테러에 파키스탄이 연루되었다는 인도측의 주장을 반박하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EPA

남아시아가 폭력과 테러가 빈발하는 ‘제2의 중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뭄바이 테러 사건이다. 지중해에서 미얀마 정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서 공통적인 현상이 생겼다. 몇 천 년을 두고 이어온 종족 분쟁이 양산해내는 테러와 폭력이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고, 남아시아에서는 힌두와 이슬람이 대립하고 있다.

인도의 델리는 중세 대부분과 초기 현대사에서 카불과 함께 같은 지배권에 속해 있었다. 16세기와 18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의 무슬림이 건국한 무가이(Muhgai) 제국은 인도의 북부와 중부, 파키스탄 대부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다. 이때부터 인도의 힌두 마라타 전사들은 무가이 제국에 대항했다.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이나 오리사 같은 힌두 사원은 투르크멘과 페르시아 문명의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무슬림의 끝없는 침략이 두 이단적 문명의 잡탕을 만들어냈다. 

힌두와 무슬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1947년 인도 대륙 분할 당시 1천5백만명이 집을 잃고 근 50만명이 목숨을 잃는 전쟁을 치렀다. 이 역사를 감안할 때 다수의 힌두와 겨우 1억5천만명의 무슬림이 불안한  평화를 유지해온 것은 그나마 인도의 민주주의가 성공한 덕분이다. 인도의 민주주의는 두 종족 간 증오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치유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수 세기 전의 미움과 갈등이 살아 흐르고 있었고 이것이 뭄바이에서 폭발했다.

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질긴 역사의 질곡

최근 사태의 주범은 세계화이며, 또한 이를 주도한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 네루가 서구 식민주의에 맞서 세운 세속적 민족주의는 과거의 박물관 속으로 사라졌다. 인도 경제는 거대한 서구 경제와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힌두와 무슬림은 각자의 뿌리를 보존하기 위한 암투를 벌였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힌두이즘을 지역 수준의 변형 종교에서 글로벌 문명의 주류로 밀어올렸다. 이 도도한 탁류를 거치며 경제적 번영에서 소외된 무슬림들은 점점 폐쇄된 이슬람 공동체 멤버로 고착되어갔다.

힌두 민족주의에 대한 무슬림의 반응은 폭력이나 증오보다는 심리적 위축으로 나타났다. 턱수염을 기르고 부르카를 착용하는 식으로 그들이 자초한 고립은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빈민굴마저 그들에게는 안식의 공동체였다. 

뭄바이 테러 공격에는 다양한 목적이 숨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간 팽팽한 대결에  뇌관을 심는 것이다. 무슬림 지하드 전사들은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인도의 파괴도 원한다. 이들에게는 인도의 모든 것이 증오 대상이다. 자유 분방하고 민주적인 힌두교도들이 점점 친미로 돌고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짝짜꿍을 하는 꼴은 눈엣가시이다. 지하드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 두 국가와 친밀한 모든 나라와 제도를 증오한다. 지하드 전사들이 인도에 대한 9·11 수준의 공격에 그처럼 환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초 이라크의 혼돈이 레바논에서 이란에 이르기까지 오토만 제국 이후의 중동 지도를 뒤흔들었듯이 파키스탄을 휩쓸고 있는 무정부 상태는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인도 대륙 전체를 흔들고 있다. 파키스탄 정보 기관과 연관되면서도 이 나라 민선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라시카르 에 타이바 같은 테러 조직의 존재는 혼란의 실체를 증명한다.

만약 파키스탄이 망하면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이 없어진다. 이는 인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는 무가이 시대의 국경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식의 역사 역류는 반드시 폭력을 동반한다. 이번에 테러 분자들이 파키스탄의 카라치 북부에서 어선을 납치해 인도의 뭄바이 남쪽으로 상륙한 루트는 고대 인도양의 무역 루트와 동일하다.

인도 금융센터에 대한 테러는 인도-파키스탄 관계만 해친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 민선 정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인도와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노력은 좌초되었다. 양국 관계가 악화됨으로써 무슬림들이 다수를 이루는 카시미르에서 다시 폭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졌다. 더구나 무슬림 거주 카시미르 지역이 파키스탄의 관할 하에 있으니 설상가상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두고도 양국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부추겨 인도에 대항하는 후방 기지로 이용하고 싶어 한다. 반면,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켜 대 파키스탄 무기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어온 양국 화해 시도는 뭄바이 사건으로 무산되었다. 

중동이 수 세기 전 모습으로 남아시아에서 환생한 것 같다. 증오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로 인한 빈부 격차 때문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인도는 번영했으나 파키스탄은 더 가난해지고, 혼란에 빠졌다. 파키스탄의 처지에서는, 특히 이 나라의 무슬림 시각에서는 뭄바이 테러가 더없이 고소할지 모른다.

무슬림 과격 단체들, 문명 파괴로 서구에 저항

▲ 인도인들이 뭄바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AP연합

뉴욕타임스는 9·11을 3차 세계대전이라고 논평했다. 이 전쟁은 자유와 풍요로 흥청대는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이 세계 도처에 있는 반미 세력들과 싸우는 것이다. 무한대의 힘을 가진 이들 성난 세력의 다수는 무슬림과 제3 세계의 실패한 나라에서 이탈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삶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분개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물론 분노의 대상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가 현대화하지 못한 것이 미국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강하게 만든 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과 첨단 기술을 미국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는 천재성이다. 이들은 첨단 여객기를 인간이 조종하는 정밀 유도 미사일로 만들었다. 그들의 광기와 미국의 기술을 합작한 셈이다. 바로 지하드 온라인이다. 이들이 무엇을 공격했는지 생각해보자. 세계무역센터, 이것은 그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그리고 펜타곤, 이것은 미국 군사력의 우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이번에는 인도 번영의 상징 뭄바이가 목표물이 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동굴 속을 수색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인도의 대도시도 수색하고 고대 무역 루트도 살펴야 한다. 하긴, 빈 라덴이 아직도 아프가니스탄 동굴에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는 어쩌면 중동이나 뭄바이의 어느 호텔에서 말쑥한 신사복 차림으로 CNN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9·11과 뭄바이 테러를 기획한 인간들은 악마와 천재 두 얼굴을 한 괴물이다. 이들은 교활하고 확실한 동기를 가졌다. 미국적 가치와 문명을 파괴하려는 이들과의 전쟁은 그래서 긴긴 전쟁이 될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폭력을 앞세운 파괴이다. 미국은 공개된 문명 사회를 온전히 보호하면서 비폭력적으로 이들과 싸워야 한다. 지구상의 누구와도 대화하겠다는 오바마에게는 시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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