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세계 무대를 평정하는 '아이디어 뱅크'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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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김택진·넥슨 권준모 대표가 '선두'


‘게임계의 살아 있는 신화’ ‘게임계 대통령’ ‘게임 산업을 이끄는 절대 군주’.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이미 그는 게임계에서는 절대 지존에 등극한 상태이다. 그래서 <시사저널> 설문조사 ‘차세대 인물’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로 2관왕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인 그는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했고, 1997년 3월에 엔씨소프트를 창업해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업체로 성장시켰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은 1998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로, 지금까지 전세계 누적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2003년에 출시된 ‘리니지2’를 통해 3D 입체 영상 게임 시대를 열어, 누적 매출액이 6천억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지난 11월에는 ‘아이온’을 처음 선보였는데, 또 한 번의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어 벌써부터 ‘역시, 김택진’이라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김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도 ‘여성계의 차세대 인물’로 꼽혀 눈길을 끈다.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게임계의 아이디어뱅크’로 불리는 차세대 인물이다. 넥슨은 현재 지주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대표의 넥슨홀딩스가 지주회사이며, 그 아래에 일본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넥슨재팬이 있다. 넥슨은 넥슨재팬의 자회사이다. 김대표는 총 자산이 3천4백11억원으로 우리나라에서 50번째 부자이기도 하다. 지난 1994년까지만 해도 텍스트 기반의 머드(MUD) 게임이 전부였다. 그런데 김대표가 세계 최초로 그래픽 기반의 머그(MUG)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선보이며, 세계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카트라이더’를 선보여, 국민 게임으로 불리며 큰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개발자뿐 아니라 포털업체·교수도 나서 게임 영역 확장

권준모 넥슨 대표는 인생 자체가 변신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에서 심리학과 교수(1995~2005년)로 교편을 잡으면서도, 모바일 게임업체인 엔텔리전트 대표(2001~05년)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넥슨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6년부터 강신철씨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게임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대한민국게임대상 심사위원장으로 있었으며, 2007년부터는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검색 포털업체인 NHN의 최휘영 사장도 무시하지 못할 차세대 주자이다. NHN은 우리나라 인터넷업체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NHN의 사업 가운데서도 게임 사업(한게임)이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와 YTN 기자 출신인 그는 지난 2005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끊임없는 퍼블리싱과 게임 개발에 주력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게임계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는 게임 마니아인 아들과 딸, 쇼핑몰을 애용하는 아내가 최고의 조언자라고 말한다.

김경식 호서대 게임공학과 교수 역시 게임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김교수는 지난 199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호서대에 게임공학과를 만들었으며,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70여 개 대학에 게임학과가 설치될 수 있도록 ‘게임 아카데미 전도사’ 역할을 했다. 게임계에서는 “2007년까지 한국게임학회장을 맡았던 김교수가 게임학계 발전과 안정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크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엔트리브의 서관희 이사는 지난 2004년 골프를 소재로 한 게임 ‘팡야’의 개발을 총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틈새시장을 공략해 게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주인공이다. 팡야는 이전까지 중세풍인 ‘정통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일색이던 게임시장에 캐주얼 게임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게임은 안 된다’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깬 것이다. 온라인 골프 게임의 첫 흥행 신화를 만든 ‘팡야’는 그동안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왔다. 닌텐도 Wii 전용인 ‘스윙골프 팡야’ 시리즈는 지난 8월 말까지 무려 42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서이사는 팡야 이전에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화이트데이’ ‘강철제국’ ‘악튜러스’ 등의 개발에 직·간접으로 참여해 ‘게임계의 마이더스’로 불리고 있다.

컴투스 박지영 대표, <타임> ‘세계 14대 기술대가’에 선정

컴투스의 박지영 대표는 2007년 말 영국의 모바일 콘텐츠 전문지인 <ME>에서 선정한 ‘세계 톱 경영인 50인’에 선정된 명실상부한 차세대 리더이다. 당시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앤드 루빈 등 세계 콘텐츠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들과 나란히 선정되어 게임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박대표는 모바일 게임의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시장 확대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컴투스는 2000년 세계 처음으로 휴대전화용 자바 게임을 선보였으며, 2001년부터는 해외로 진출해서 40여 개국에 1백20여 종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박대표는 2003년에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 14대 기술대가’에 선정된 바 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리니지’의 개발자인 송재경 XL게임즈 대표도 차세대 인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송대표는 1994년 최초의 상용 머드 게임 ‘쥬라기공원’을, 1996년에는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1998년에는 ‘리니지’를 개발한 게임 개발 1세대이다. 

지난 12월2일 열린 ‘제45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천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은 엠게임의 권이형 대표도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게임업계가 무역수지의 개선에도 일조를 하고 있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에서 ‘보이지 않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2007년 6월부터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수장을 맡고 있는 최규남 원장이다. 그는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공업경영학과를 전공했고, 뉴욕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리고 벤처 투자회사 사장과 보광창업투자 고문 등을 두루 거쳤다. 국제 금융과 다국적 기업 경영의 전문가로, 어찌 보면 게임 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시장의 트렌드와 통계 분석 등을 통해 게임 산업이 발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최원장을 꼽았다.

 


▲ 김택진 ㅣ 엔씨소프트 대표.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이끄는 절대 군주로 평가되며 ‘존경하는 인물’로도 선정되었다. ⓒ그림 최익견

게임 분야의 ‘차세대 인물’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동시에 지목되었다. 소감이 어떤가?

게임이라는 것이 신(新)성장 동력으로 차세대 산업이다 보니, 게임을 만드는 회사 대표라고 해서 뽑아주신 것 같다.

가장 처음 접했던 게임은 무엇이며,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은 ‘유닉스’나 ‘리눅스’ 같은 단어들이 익숙하지만, 대학 2학년일 때인 1986년 서울대에 유닉스가 처음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유닉스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동아리를 통해 유닉스 오퍼레이션(operation·운영)할 사람을 뽑았고, 내가 지원했다. 그러면서 유닉스 소스를 보고 프로그래밍하고, 그런 와중에 짬짬이 게임도 했다. 그때도 물론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로그(Rogue)와 넷핵(Nethack)이라는 게임이었는데, 넷핵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현대전자에 들어가 소프트웨어연구소에 있을 때도 그 소스를 들고서 게임에 대한 꿈을 계속 이어갔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현황은 어떤가?

우리나라 게임 산업 규모가 7조4천억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적인 변화보다는 게임이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런 면에서 위상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게임업계에서는 경기 침체기를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게임과 같은 문화 산업의 경우에는 창의력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어떻게 글로벌 아이피(Global IP·국제 지적재산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다고 보는가?

함께 모여서 만드는 게임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창의력의 결과물이다. 하늘 아래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정말 창조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후에 정말 끝난 얘기인 듯하다. 그럼에도 ‘아! 정말 창의력 있다’ ‘정말 천재적이다’ ‘이거 새로워!’라는 것들을 우리가 느끼지 않는가. 나는 창의력이란 과거의 위대한 아이디어에 관한 자신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에도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있는데, 자신의 해석 없이 그냥 뜯어다 붙이면 모방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어’라고 자기가 해석한 것을 내놓으면 창조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나의 주관, 나의 해석’ 등을 질문할 수 있어야 되고, 그래야만 자신의 해석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한 해석 속에서 창조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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