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기관·단체장 ‘색깔 바꾸기’ 생각대로 ‘착착’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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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 인사 물갈이’ 마무리 단계 진입 빈자리에는 현 정부에 가까운 인물 대거 입성

ⓒ그림 최익견


지난 12월10일 대한장애인체육회의 회장실, 사무총장실, 대회의실에서 한 단체의 점거 농성이 시작되었다. 농성장에서는 ‘장애인체육인권익쟁취위원회’(이하 쟁취위)라는 이름의 단체가 장향숙 대한장애인체육회장(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 단체에는 1세대 장애인 체육인들이 모여 있었다.
쟁취위가 장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장애인을 위해서 한 일이 없고 장애인 체육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라는 주장이었다. 쟁취위측은 “지난 12월8일 장회장에게 용퇴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그럴 의사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결의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쟁취위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회장의 모습은 무엇일까. 쟁취위의 유희상 위원장은 “장애인 체육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라고 언급했다. 한 장애인 체육 관계자는 이를 두고 “결국, 정부 지원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장애인체육회는 2005년 12월15일 새로운 정부조직법에 따라 당시 문화관광부 산하 조직으로 탄생했다.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장애인 체육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었고 장회장은 신생 조직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자신이 장애인이고 동시에 비례대표 1번의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점이 새 조직의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주요 요인이었다.

장회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까지이다.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차기 대한 장애인체육회장의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기 회장으로 비전(?)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이다. 상황이 바뀌어 정권은 교체되었고 장회장 역시 현역 의원 신분이 아니다. 쟁취위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부 지원 등이 절실한 상황에서 내부의 사람들이 알아서 코드를 맞추는 것 아니냐”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제기된 공공 기관장이나 단체장의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의 대표적 인물인 장회장이 직책을 유지하자 이를 의식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국립대 병원 임원 사퇴에까지 압력 행사

장회장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다. 내부에서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의외이지만 어지간한 곳의 과거 정부 인사들은 이미 정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전방위적인 사퇴 압력을 행사했다. 정권 초기에는 공기업이나 정부 조직 산하 단체 등 굵직한 기관장·단체장의 사퇴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국립대 병원의 상임감사 등 세분화된 조직에 임명된 과거 정부 인사의 사퇴까지 정부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21일, 전남대 병원 이사회는 서대석 상임감사의 해임안을 통과시키고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면직을 건의했다. 서감사의 해임 이유에 관해서 전남대병원측은 “2007년 8월 휴일에 법인카드로 약 1백10만원의 식비를 결제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서감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냈다. 서감사는 “교과부가 올해 초부터 자신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원을 압박했다”라며 해임안 통과에 반발했다. 교과부는 서감사 이외에도 다른 국립대 병원의 상임감사들에게도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작은 가지를 제외하고 큰 줄기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사람 물갈이’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아직 겪어보지 않았으니 비판 여론이 높지만 내년 집권 2년차의 개혁이 힘을 받는다면 결국, 잘한 인사로 평가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 정부는 공공 기관 기관장에 대한 교체 작업을 시발탄으로 인적 쇄신을 시사해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등이 총대를 메고 전면에 나섰다. 이윤호 장관은 지난 3월12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임기가 남아 있다고 해서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말하며 압박을 시작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은 좀더 노골적이었다. 이념 논쟁까지 개입되었다. 대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해 12월19일 심재철 의원은 당직자 회의에서 “이제부터 좌파 정권이 남겨놓은 흔적들을 하나씩 벗겨내겠다”라고 발언했다. 이장관의 발언이 있기 직전인 3월11일에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는 재신임…‘정치적 결정’ 의혹 사기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3월14일에는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문화부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서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신현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개인 신상 문제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오사장은 임기가 2010년 11월까지로 무려 2년 반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정사장은 2009년 5월, 신사장은 2009년 2월로 임기 만료까지 1년 남짓이나 여유가 있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이 부당하다며 버티자 결국, ‘감사’라는 카드까지 나왔다. 하지만 목적이 있는 감사에는 표적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김 아무개 게임물등급위원장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표적 감사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김위원장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회의장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감사원은 “두 업체가 담합해 지난 2007년 1월 온라인 시스템 구축 사업 제안 설명회에 참가했는데 김위원장은 담합 행위를 조사하지 않고 재평가를 지시해 그중 한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선정된 업체는 김위원장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곳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감사 자체의 목적이 의심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셈이다.

‘물갈이’ 과정에서 재신임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치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1백1개 공공 기관의 경영 실적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시장형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전력공사와 대한광업진흥공사가, 준시장형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지역난방공사와 부산항만공사가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 공기업의 사장들은 모두 재신임에 실패했다. 반면, 최하위를 차지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이사장은 유임되는 결과를 낳았다.

코드 인사를 물갈이하겠다며 내세운 빈자리의 많은 부분은 현 정부와 가까운 인물이거나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표 참조). 이명박 대통령과 교류가 있거나 선거에서 활약했던 정·관·재계의 인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공 기관장을 임명하는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다섯 배수 후보 추천은 이미 점 찍은 인사 뽑겠다는 것”

정부는 이번 기관장 공모 과정에서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에 다섯 배수의 후보로 복수 추천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두 배수, 혹은 세 배수의 추천이 이루어진다. 다섯 배수로 이루어질 경우 임원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과정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실제로 정부의 요구대로 부산항만공사·철도공사·마사회 등은 면접 대상자 여섯 명 가운데 네 명을 후보로 추천했고, 석유공사·도로공사·토지공사·수자원공사·대한광업진흥공사·조폐공사·전력공사·한국공항공사 등은 정부의 권유대로 면접 대상자 다섯 명 전원을 추천해 올렸다. 경실련은 “정부가 임추위에 다섯 배수의 후보를 추천하도록 권유하면서 임추위를 요식적인 기구로 만들었다”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후보를 합법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기관장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물갈이는 끝나가고 있다. 유인촌 장관이 지난 3월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지닌 인물들은 물러나야 한다”라며 언급한 단체장들은 결국, 모두 사표를 냈다. 신현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 신선희 국립극장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등은 스스로 물러나거나 혹은 강제로 해임되었다. 후임 역시 공공 기관장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색깔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임명되거나 거론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대영 원장은 2004년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연극인 <환생경제>를 연출했고, 이전에 뉴라이트 계열인 자유주의연대 문화위원장을 맡았다. 최근 공모가 마무리되고 있는 국립극장장에는 임연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임씨는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낸 바 있다.

과학기술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연구 기관을 관장하는 기초기술연구회의 이사장에는 이명박 캠프에서 과학기술 공약작성에 관여했고 인수위에도 참여한 민동필 교수(서울대)가 임명되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된 김석준 원장은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지난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탈락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이준승 원장 역시 이명박 캠프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자문했다. 대덕 연구단지의 한 관계자는 “연구 수준이 아니라 정계에 기웃거려야 단체의 장을 맡을 수 있다는 점만 확인시켜주었다. 알아서 젊은 과학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꼴이다”라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것은 비단 과학기술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 임기만료 전에 사퇴한 공공 기관장 자리, 누가 채웠나 ⓒ자료 : 백재현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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