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ㅣ경제] 정곡을 울린 ‘변방의 북소리’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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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족집게 칼럼으로 큰 반향…국민에게 경제 토론의 장 제공도

▲ 미네르바는 리먼브러더스 부실을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 리먼브러더스 파산당시 한 직원이 짐을 싼 채 나오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인터넷 경제 대통령’ ‘네티즌들의 교주’ ‘인터넷 노스트라다무스’…. 한국 경제는 올해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함께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는 만큼 덩달아 경기 침체를 겪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연초부터 정책의 실패가 경제난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와 연일 시끄러웠다. 무모한 고환율 정책과 함께 사사건건 엇박자를 냈던 경제 관료들의 시행착오 등이 경제난을 부채질한 대표적 실정 사례로 지적되곤 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미네르바’라는 한 인터넷 논객이 있었다. 해박한 경제 지식이 담기고 논리가 정연한 그의 글이 사이버 공간에 올라올 때마다 경제계가 들썩거렸다. 그가 인터넷에서 추천한 책은 서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언론 역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정체불명의 미네르바를 둘러싼 각종 루머를 양산하는 창구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최근 한 경제 신문이 게재한 칼럼을 보고 주요 언론들이 “미네르바의 실체가 밝혀졌다”라고 호들갑을 떤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발단은 이랬다. 지난 12월2일 파이낸셜뉴스의 곽인찬 논설위원은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자수한다. 내가 바로 미네르바다. 더 이상 정부와 언론이 날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칼럼은 네티즌들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급기야 “미네르바는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파이낸셜뉴스측이 곧바로 홈페이지와 포털 뉴스 등에 게재된 칼럼을 삭제 조치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미네르바 실체 밝혀졌다” 오보 소동

한 언론계 인사는 “이 칼럼은 미네르바를 빗대 정부 정책을 꼬집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한편으로 ‘얼굴 없는’ 논객인 미네르바가 한국 경제에 어느 정도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미네르바가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께였다. 당시 그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경제토론방을 통해 원·달러 환율 급등과 이에 따른 주가 하락, 부동산 가격 폭락,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부당성 등을 꼬집었다. 특히 산은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추진과 관련해 그는 “5백억 달러 이상의 부실 자산을 떠안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글이 게재된 지 불과 보름 후 산은은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포기했고, 거대 투자 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조차 리먼의 몰락을 확신하지 못했던 터라 미네르바가 급속히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환율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로 3백억 달러 이상을 가져오지 못하면 환율이 1천4백원대까지 치솟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불과 보름여 만에 또다시 환율이 1천4백원대를 돌파했다. 주가 역시 1천선이 무너지면서 금융업계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며칠 후 정부가 한·미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추락하던 환율이나 주가가 진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미네르바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11월 초 “미네르바도 수사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미네르바가 50대 초반의 남성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부담을 느낀 미네르바는 지난 11월13일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미네르바’라는 필명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미네르바가 도대체 누구냐”라는 내용의 글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아고라에 올라와 있는 그의 글을 엮어 만든 책이 출간될 정도였다.

현재까지 미네르바의 실체를 놓고 각종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50대 초반의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증권맨’이라는 것이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의 전부이다. 때문에 초창기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미네르바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글에 해박한 경제 지식과 화려한 수사가 묻어나 유 전 장관이 미네르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과거 증권사에 다녔고, 해외 체류 경험이 있다”라고 밝혀 추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원증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ㅈ씨가 후보로 지목되었다. 그가 한때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제목으로 정보지를 발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ㅈ씨의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대해 해박한 데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는 애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에서 환율 부분을 꿰고 있을 뿐 아니라, 냉소적으로 글을 쓴다는 점에서 ㅈ씨의 성향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 따라 평가도 ‘극과 극’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을 포함한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부유층에 대한 편견을 갖고 극단적이면서도 부정확한 예측을 남발하고 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고장난 시계’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최근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미네르바의 주장은 허점투성이라 반박할 가치도 없다”라고 폄훼했다. 실제 지난 7월 미네르바는 “하반기에 물가가 오르니 6개월치 생필품을 미리 사두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이후 물가 상승률은 네 달 연속 하락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특정 전문가들의 전유물인 경제학을 일반인들의 관심사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네르바가 해박한 경제 지식을 근거로 정부나 투자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일반인들이 평소 어려워하던 경제 분야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아고라에 올린 글에서 “미네르바의 탄생은 촛불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정부가 일부 학자를 내세워 위기가 아니라고 했다가 위기라고 했다가 갈팡질팡 하는 데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그동안 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빠져드는데도 낙관론만 되뇌어왔다. 경제연구소나 증권사들도 대부분 이해관계 탓에 현실을 외면한 보고서를 내기 일쑤였다. 이런 가운데  미네르바의 일침이 정보에 목말라 있던 국민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의 말대로 미네르바가 주장한 10가지 가운데 1~2개가 맞아떨어졌음에도 많은 사람이 솔깃하게 된 것은 불신으로 얼룩진 경제 현실을 드러내는 단적인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재야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 문제에 심도 있게 접근해 온 국민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네르바의 위상과 가치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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