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사회에 ‘미소’를 기부하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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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매년 한 해를 정리하며 각 분야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여러 사람이 후보군에 올랐고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가장 돋보인 인물은 영화배우 문근영씨이다. 문씨는 연예 활동은 물론 기부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국민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반면, 최악의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이다. 노씨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에 개입하고 그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철저한 친인척 관리를 약속했지만 결국, 형의 비리를 막지는 못했다.
이밖에도 분야별 주요 인물을 보면 정치 분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경제 분야는 사이버 경제 논객 미네르바, 사회 분야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한국교회봉사단, 여성 분야에서는 자살한 인기 연예인 최진실씨가 꼽혔다.

<시사저널>이 뽑은 올해 최고의 인물은 영화배우 문근영씨(21)이다. 그녀의 남모르는 선행은 뒤늦게 알려져 국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또, 기부 활동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문씨는 올해 많은 사람들의 허를 찔렀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깜찍한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여배우로서의 면모와는 달리 ‘기부 천사’로 아무도 모르는 선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경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훈훈하고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는 문씨에게 많은 점수를 주게 된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하고 싶다. 

이미 많은 국민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졌고, 모두 그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기나긴 터널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문근영씨가 있어서 웃을 수 있었다는 사람이 많다. 기자는 최근 취재원 10여 명에게 ‘문근영씨’에 대해 어떤 선입감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 ‘깨끗하다’ ‘기분 좋다’ ‘훌륭하다’ ‘행복하다’ ‘배울 점이 많다’ 등의 말을 남겼다. 서울 강동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신동선씨(40)는 “문근영씨의 선행을 접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한탄만 했는데 이제는 힘이 난다. 앞으로 어렵지만 조금씩이라도 나누면서 살아야겠다”라고 말했다.

문씨의 선행이 알려진 것은 지난 11월12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서이다. 모금회는 지난 10년간의 기부금 총액을 발표하면서 개인 최고액을 기부한 ‘이름 없는 20대 여자 탤런트’를 언급했다. 그 익명의 기부자는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8억5천만원을 기부했지만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매년 1억5천만원을 기부한 셈이다. 하지만 모금회측은 “당사자와 어머니의 반대로 이 탤런트가 누구인지 정확한 신분을 밝힐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기부 천사’ 추적에 나섰다. 가장 유력한 인물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문근영씨였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자 모금회측은 익명의 기부 천사는 ‘문근영’이라고 전격 공개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려던 문씨의 남모르는 선행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문근영씨측은 지금까지 여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부모님의 권유로 고1 때부터 모델료·출연료 등에서 계속 기부

문씨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예계에 데뷔한 후 줄곧 이어졌다. 고교 1학년이던 2003년부터 광고모델료나 출연료 등을 받을 때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기부해왔다. MBC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 건립’에 적지 않은 후원금을 기탁했다. 지난 2006년 말에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종리 ‘땅끝 공부방’에 1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독서운동단체 ‘행복한 아침독서’에 수억 원을 기부했고, 모교인 광주국제고와 광주 ‘빛고을장학회’에도 장학금을 냈다. 지난해 말에는 문씨가 도움을 준 해남의 땅끝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용돈을 절약해 이웃 사랑 성금을 모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회공헌협력팀 강지연씨는 “문근영씨가 기부한 성금은 그녀의 뜻에 따라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의 가정에 지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근영씨의 ‘천사 같은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문씨의 선행 뒤에는 ‘슬픈 가족사’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선행과 가족사를 연결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문근영씨의 선행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악플 테러에는 기부 천사 문근영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씨의 선행에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라는 등 상식 이하의 글들도 올라왔다.

문근영씨의 가족사에서 언급되는 문씨의 외할아버지 고 류낙진씨는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붙잡힌 전력이 있다. 1971년 보성 예당중 교사 시절에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30년이 넘는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런 가족사 때문에 문씨의 가족들은 숨죽이며 살아야만 했다. 문근영씨가 기부 천사가 된 데에는 이런 가족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문근영씨의 선행은 또 부모님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문근영이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라고 하자 광주시청 공무원이었던 부모는 조건부로 허락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연예인이 되어서 돈을 벌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돈을 벌어 한꺼번에 기부하지 말고 수입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라”라고 당부했다.

▲ SBS 드라마 에서 신윤복 역을 열연하는 문근영씨.

문근영씨의 팬카페 ‘문근영 엔젤스’(http://cafe.naver.com/mkyags)에는 현재 1만3백50여 명이 가입해 있다. 팬카페 회원들은 자체적으로 기부 운동을 펼치며 문근영씨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문씨는 지난 12월16일 국회 내 연구단체인 ‘대중문화&미디어 연구회’가 수여하는 제9회 대한민국 국회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근영씨는 지난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한 후 2000년 TV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어린 시절 역할을 맡아 순수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 것도 <가을동화>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소녀 같은 외모와 순수한 이미지 때문에 무공해 소녀로 불리기도 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문근영은 아역 때 샛별처럼 나타나서 귀여운 이미지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올해는 <바람의 화원>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의 연기를 한마디로 말하면 ‘타고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연기자는 선천적인 감성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문근영은 감성적이고 예능적인 재질이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문근영씨는 연예인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지난 2006년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가, 2학년까지 마치고 휴학했다. 문근영씨는 올해 초 <바람의 화원> 출연이 확정되면서 연기와 학업을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만큼 학교 생활에도 애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들의 선행이 늘어나면 대중들의 선행 실적도 높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문근영씨의 선행은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문씨와 같은 ‘천사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퍼져나갈 때 삭막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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