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한국’, 세계가 좁다
  •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
  • 승인 2008.12.3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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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선수 얼마나 되나 / LPGA에 45명, 야구·축구·핸드볼에서도 맹활약

얼마 전 프로축구에서 활약 중인 울산 현대의 염기훈(25)이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구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출국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구단에서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내리겠다며 강경 대응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염기훈은 여전히 “ELP로 가고 싶다”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은 대부분 해외 진출을 꿈꾼다. 그 나라가 어느 곳이든 자신을 불러주고 대우해주고 출전시켜준다면 좀더 더 넓은 무대에서 뛰어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 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의 숫자는 엄청나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가장 많은 종목은 골프. LPGA에 진출한 한국 선수만 45명이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이 미국과 일본 영국과 유럽 등에서 코리아의 이름을 날리고 있고 일반 종목 중에서는 핸드볼이 가장 왕성한 해외 진출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코리아’를 가슴에 달고 세계 각국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골프 '박세리 키즈'들 줄줄이 우승

▲ 박세리 ⓒAP연합

박세리(31)는 기록의 여왕이다. 지난 11년 동안 24승(메이저 5승)을 거두며 상금만 1천만 달러를 넘어섰고, 2007년에는 아시아인 최초이자 세계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박세리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선수들이 그 후 계속해서 LPGA 무대에 진출했는데 2008년까지 LPGA에서 뛴 한국 선수들은 모두 45명으로 늘어났다. 새해에는 비회원 자격으로 LPGA 투어와 브리티시여자오픈대회에서 3차례나 정상에 오른 신지애(20·하이마트)와 함께 재미교포 위성미(19·미국 이름 미셸 위)도 LPGA 투어에 진출함으로써 2009년 시즌은 절대 강자의 자리를 놓고 거센 바람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재미있는 현상은 ‘박세리 키즈’로 불리우는 1988년생 전후 출생 선수의 활약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4~6학년이던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 

2008년 이선화(22·CJ)가 2승을 올리며 한국 군단의 에이스로 우뚝 섰고, 박인비(20·SK텔레콤)가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모두 9승을 합작했다. 그중 압권은 단연 신지애였다. 그러나 신지애는 LPGA 비회원 자격으로 2008년 한 해 초청 선수로 투어를 다녔는데 처음에는 박세리 키즈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조급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었다. 신지애가 우승하기 전 그녀와 절친하게 지내는 지은희(22·휠라코리아)가 LPGA 웨그먼스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최나연(21·SK텔레콤)은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적을 올린 바 있다. 그 후 신지애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쓰린 속을 달랠 수 있었다.

한편, LPGA에서 활약 중인 ‘맏언니’ 정일미(36·기가골프)는 한국 국적으로서는 처음으로 미LPGA투어 선수집행위원회 멤버가 되었다.

야구 미국·일본 프로팀에서 맹타·맹투

▲ 추신수 ⓒ시사저널 이종현

해외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야구 선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메이저리그와 재팬리그. 메이저리그는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또 나뉜다. 현재 빅리그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박찬호(필라델피아), 백차승(샌디에이고), 류제국(탬파베이)뿐이다. 김병현은 2009년 시즌 계약이 불투명한 상태여서 제외했다.

여러 명의 선수 중 2009년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이는 추신수일 것이다. 2007년 시즌을 마치고 왼쪽 팔꿈치 수술을 받은 추신수는 2008년 3할9리(317타수 98안타), 14홈런·66타점으로 최희섭이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안타(86개)와 타점(46개)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인 최초 MLB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0년 미국에 진출한 이래 처음으로 WBC대회 국가대표팀에 뽑힌 추신수는 2009년이 야구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고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출신 대표팀 선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도 있지만, 2009년 소속팀에서의 성적에 따라 2010년 연봉에서 ‘대박’을 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고난 노력과 성실성이다.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그는 미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해 한동안 심하게 고생을 해야 했다. 더욱이 투수의 신분으로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는데 막상 팀에 들어가보니 타자로 전업을 권하는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고 한다.

추신수 이을 ‘다음 타자’ 누굴까 주목

미국 마이너리그에는 유망주로 꼽히는 한국 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선수는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트리플A팀의 정성기. 정성기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뛰다가 현역으로 입대해 일반병으로 근무한 후 다시 미국으로 복귀한 첫 번째 선수이다. 2005년 입대, 2007년 제대 후 애틀랜타의 부름에 의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던 것. 연봉이 우리 돈으로 3천만원이 채 안 되는 데다 그것도 세금 떼고 나면 한 달에 100여 만원 정도가 수입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부족한 생활비로 미국으로 건너온 약혼녀와 함께 생활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생을 했던 정성기는 2009년 빅리그 진출을 염원하며 현재 모교인 순천효천고에서 열심히 훈련 중이다. 정성기는 “한때 생활이 너무 힘들어 한국 복귀도 고려했지만 미국에서 고생한 것이 너무 아까워 빅리그에 올라설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고교야구에서 안산공고의 김광현(SK)과 자웅을 겨루었던 광주진흥고 출신의 정영일(20)은 KIA타이거즈에서 7억원을 제시하며 끈질기게 붙잡았으나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6년 계약금 100만 달러에 LA 에인절스 마이너리그에 입단했다. 2007년 팔꿈치 통증으로 거의 뛰지 못했던 정영일은 2008년 팔꿈치 접합 수술을 받고 힘겨운 재활을 거치며 2009년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시즌 목표가 “아프지 않고 풀타임으로 경기를 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부상으로 마음고생을 세게 했다.

한편, 재팬리그에도 여러 명의 한국 선수들이 진출해 있다. 요미우리 이승엽과 부진의 늪을 헤맨 주니치의 이병규 그리고 예상외의 깜짝 활약을 펼친 야쿠르트 임창용에 이어 두산 출신 이혜천이 2009 시즌부터는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는다. 이혜천은 2년간 옵션을 포함해 총액 4백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입단했다. 이혜천이 이처럼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 데에는 임창용의 활약이 크게 작용한다. 임창용은 2008년 3천5백만 엔의 헐값 연봉을 받고 현해탄을 건너갔다가 33세이브, 1승5패, 방어율 3.00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단숨에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내 특급 선수들에게만 눈길을 주었던 일본 스카우터들의 시각을 넓혀준 계기였다.

축구 박지성처럼 질주하는 그들

축구는 종목의 특성상 다양한 나라에 한국 선수들이 진출해 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27)과 설기현(풀햄 FC), 김두현(웨스트 브로미치)이 맹활약 중이다. 이 중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단연 박지성. 2007년이 부상 등으로 악몽의 해였다면 2008년은 가장 잊지 못할 해로 만들었다. 2008년 5월 2007-2008 리그 우승과 UEFA컵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우승 그리고 얼마 전에 끝난 FIFA클럽월드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에 우승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박지성이 날고 기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 속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리를 잡은 것은 특유의 성실성과 깔끔한 사생활, 선수들과의 친화력 덕분이다. 

2002년 2월 성남 일화에서 웨스트브로미치로 임대된 뒤 여름에 완전히 이적한 김두현은 소속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과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시즌 도중 무릎 부상으로 한 달을 통째로 날려버린 뒤 절치부심 끝에 복귀했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이다.

벨기에를 거쳐 프리미어리그에서 세 시즌을 보낸 설기현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태. 더욱이 풀럼의 호지슨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나돌아 2009년 시즌 거취가 불투명하다. 설기현은 한때 K리그행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2006년 월드컵 이후 수원 삼성의 강한 ‘러브콜’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당시 소속팀이었던 레딩FC에 잔류했었고, 이번에 강원FC가 창단되면서 강원도 출신인 설기현에게 잔뜩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2008년 7월까지가 암흑기였다면 그 후로는 ‘햇빛 쨍쨍’인 선수가 있다. ‘눈칫밥’을 먹었던 토트넘에서 독일 내 최고 인기 구단인 도르트문트로 옮긴 이영표(31)이다. 여름 이적 시장 기간 동안 토트넘을 떠나 독일로 넘어간 이영표는 입단하자마자 연속 선발 출장하며 주전 선수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최근에 최대 2년 재계약을 맺으며 2008년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이영표보다는 독일 진출과 관련해 선배격인 ‘새신랑’ 차두리(28)는 독일 2부리그인 TuS 코블렌츠 유니폼을 입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러시아·호주 무대에도 진출

러시아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은 모두 3명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 김동진(26)과 이호(24). 2008 시즌에는 오범석(24)이 사마라FC로 이적했다.

김동진은 2007 시즌 제니트의 주전 자리를 확고히 다지며 제니트의 첫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어야 했고, 이로 인해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며 존재감조차 미미해졌다.

어렵게 러시아 무대를 밟은 오범석은 눈이 많이 내리는 환경 탓에 축구 외적인 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잔디가 얼기 때문에 대부분 인조 잔디를 사용하는 러시아 축구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오범석은 2008 시즌에 퇴장을 2번이나 당할 만큼 파울을 많이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동양인을 무시하고 외소하다고 보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 일부러 거친 플레이를 구사했다”라고 한다.

또 다른 축구 선수 박지성(23)도 있다. 한국 선수 최초로 아르헨티나 4부 리그이자 구단주가 한국 변호사인 데포르티브 꼬레아노팀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이다. 박지성의 소원은 “맨유에서 뛰는 박지성처럼 유럽에서 뛰는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 안정환이 몸담았던 프랑스 1부 리그 FC 메츠에는 강진욱이 소속되어 있는데 현재 광주 상무에서 뛰고 있으며 제대 후에는 원 소속팀으로 복귀한다. 호주리그에는 송진형이 뉴캐슬 유나이티드 JET에서 활약 중이다.

기타 종목 NBA 진출도 노린다

▲ 문성민 ⓒ시사저널 임준선

프로배구 선수로는 문성민(23)이 독일의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뛰고 있다. 문성민은 지난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국전력에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되었다. 따라서 한국전력은 이번 시즌부터 앞으로 5년 동안 문성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게 되지만 문성민은 당분간 한국으로 복귀할 계획이 없다.

그러나 최근 문성민이 제대로 된 플레잉 타임을 얻지 못하자 국내 팬들은 문성민이 유럽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문성민은 “적응해가는 과정이고 한국과 스타일이 많이 달라 배울 게 많다. 감독이 선수를 신뢰하고 기회를 주려 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문성민의 계약 조건은 계약 기간 2년에 연봉은 우리 돈 약 1억5천만원 선(기타 세금은 구단 부담)이며 차량과 주택도 구단으로부터 제공받는다.

농구에서는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끈 김유택의 아들 김진수(19)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NCAA 1부 리그에 등록해 있다. 메릴랜드 대학 포워드로 활약 중인 김진수는 체력만 받쳐준다면 NBA 진출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 그러나 김진수는 이혼한 아버지 김유택과의 불편한 사이로 인해 NCAA 등록시 ‘김진수’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 ‘최진수’로 등록했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감동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김차연은 2006년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 오스트리아로 진출했다. 이미 선배 오성옥이 자리를 잡은 탓에 김차연은 비교적 적응하는 데 큰 애를 먹지는 않았다. 그러나 낯선 환경과 언어 소통의 어려움은 외국에서 뛰고 있는 모든 한국 선수들이 겪는 공통된 ‘숙제’일 것이다. 지난 12월25일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허순영을 만나기 위해 덴마크에 놀러왔다는 김차연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히포방크에는 유독 한국 선수들이 많다. 오성옥·김차연 외에도 명복희 선수까지 뛰고 있다. 유독 히포방크에 한국 선수들이 많은 이유가 있나?

구단에서 워낙 한국 선수를 좋아한다. 특히 (오)성옥 언니가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놓아 한국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다. 골키퍼 문경아도 최근에 입단했다. 오스트리아 선수들은 핸드볼 실력이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국 선수들을 주로 영입하는데 히포방크에서는 헝가리·브라질·독일과 한국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부지런하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해 구단의 신뢰가 크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훈련보다 말이 더 많은 편이다.

히포방크의 현재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

분데스리가 1위를 달리고 있다. 성적이 좋다 보니 선수들 대우가 다른 팀보다 나은 편이다.

현재 김차연 선수가 받는 연봉은?

지금 오른 환율을 고려한다면 한국보다 세 배는 더 받을 것이다. 내가 2006년까지 연봉이 3천만원이 안 되었다. 그리고 구단에서 집과 차를 제공해준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향수병이다. 지금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가장 걱정되는데 운동이 잘 안 될 때는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남몰래 운 적도 많다. 우리 팀은 한국 선수들이 많아서 ‘왕따’ 등 이상한 대접을 받지 않지만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동양 선수라고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기 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는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떠나고 싶었다.

나이가 많은 오성옥 선수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다. 구단이나 감독이 보내는 성옥 언니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아마 여기서 지도자로 데뷔할지도 모른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환상을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여기도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고 선수들끼리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운동 환경만큼은 한국과 비교도 안 된다. 돈은 좀더 벌지만 참고 버텨야 하는 부분도 많아 얼마나 인내를 잘 하는지가 관건이다. 마음 독하게 먹지 않고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곳이 외국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다면, 한국에 실업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선수들 연봉도 너무 적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 대다수가 외국 진출을 염두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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