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기업 살리는 경영 ‘명의’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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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칠 부회장은 누구인가 / 인간 존중·솔선수범으로 두 회사에서 기적 일궈

ⓒ시사저널 이종현

세계 경제 위기가 몰고 온 불황의 파고는 새해 쓰나미로 돌변해 한국 경제를 휩쓸 기세이다. 대기업은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했다. 중소 기업체는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이미 쓰러지는 중소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재앙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기적을 바란다. 재앙을 이겨낸 스토리는 신화가 된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부회장은 그 신화의 주인공이다. 손 쓸 방법이 없는 회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인물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10년 전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를 뿌리째 흔들던 1997년 12월. 브라운관 유리 제조업체 한국전기초자는 총 부채 6천억원(부채 비율 1천1백14%)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부실 기업이었다. 한 해 매출은 2천3백77억원이었으나 차입금이 3천4백80억원이나 되었다. 주가는 액면가에 못 미쳤다. 브라운관 유리 사업이 쇠퇴기였고 생산 설비를 지나치게 늘린 탓에 창고에는 재고가 넘쳐났다. 원천 기술도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 경영컨설팅업체 부즈앨랜해밀턴은 6개월 진단 끝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이 와중에 노조는 77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우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했다. 대우그룹으로부터 자금과 기술 지원을 받으면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우그룹마저 무너졌다. 한국전기초자는 기댈 곳마저 잃었으니 죽을 날만 기다렸다. 1998년 초 김대중 정부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회사는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퇴출 대상은 부채와 누적 적자가 많고 노사 관계가 불안하며 사업 전망이 없는 회사였다. 한국전기초자는 이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회사였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사원들 패배의식 씻기에 분주

이때 키 1백70cm밖에 되지 않은 작은 체구의 남자가 총괄 부사장으로 부임했다. 대우전자 부사장 출신으로 브라운관 유리 제조에 경험이 없는 이가 대표이사로 왔다고 하자 직원들이 보인 첫 반응은 냉소였다. 패전 처리 투수쯤으로 치부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서두칠’이라고 소개한 신임 대표이사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기적을 꿈꾸고 있었다. 취임하자마자 노조가 고용 보장 각서를 내밀며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그는 “고용 보장은 사장이 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서부사장은 1998년 초 경영 혁신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임직원이 입에 달고 다니는 ‘회사에 미래가 없다’는 패배의식부터 없애고자 했다. 이를 위해 회사 경영 정보를 완전 공개했다. 사장실 문을 없애고 원탁을 가져다 놓았다. 자주 사원들과 대화했고 현장 정보를 공유했다. 

서부사장은 공장에서 먹고 잤다. 그는 쪽잠을 자더라도 새벽 3시, 오전 9시, 오후 5시에는 경영 현황 설명회를 가졌다. 생산 공정 특성상 3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설명회에서 자금·생산·재고·영업 현황과 기술 수준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경영 설명회는 경쟁자와 비슷하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1시간 일하고 30분 쉬던 근무 체제를 2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의사 결정 체계는 단순화했다. 고객 요구에 맞춰 중소형 TV용에 그쳤던 생산 품목을 모니터용 유리와 대형 TV용 유리로 확대했다. 생산 라인과 판매 방식도 일신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1998년 매출은 4천8백42억원으로 두 배 늘어났고 순이익은 3백5억원을 기록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환자가 건강체로 돌변한 것이다. 가속도가 붙자 1999년 매출은 5천7백17억원으로 늘어났고 순이익 7백45억원을 달성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자 서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용인했다. 2000년 매출 1천1백4억원, 순이익 1천7백17억원. 실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동안 노사 분규는 찾아볼 수 없었다. 3년 동안 임금 협상은 단 1회 교섭으로 끝냈다.

그 사이 해체 위기에 처한 대우그룹은 1999년 일본 아사히글라스에게 지분을 팔았다. 아사히글라스는 50%+1주를 확보해 한국전기초자의 지배 주주가 되었다. 아사히글라스는 서사장의 유임을 인수 조건으로 걸었다. 경영 간섭이 없다는 약속을 받고 서사장은 3년 임기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본사 영업 방침과 판매 방식을 따를 것을 강요했다.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책임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서사장은 2001년 3월 사직했다. 서사장이 사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는 하한가로 떨어졌다. 경영 실적도 2005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2007년까지 3년 누적 적자가 2천억원이 넘었다. 2005년에만 6백80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 서사장 재임 기간인 3년8개월 동안에는 단 한 명의 해고도 없었다.

서사장이 회사를 떠났다는 소문이 나자 수많은 기업들이 스카우트에 나섰다. 업계 1위 기업도 있었고 엄청난 연봉을 보장하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백지 수표까지 건네는 기업도 있었다. 서사장은 그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서사장은 “스카우트 제의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 내 능력이 필요하기보다 주가를 띄우려는 의도가 강했다”라고 말했다. 그후 7개월 동안 서울대를 비롯해 유수 경영대학원과 삼성전자나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와 같은 업종 대표 기업체로부터 특강을 부탁받았다. 동원시스템즈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강의 때문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2002년 초 서사장의 무역협회 조찬 강연을 듣고 나서 이스텔시스템즈(동원시스템즈의 전신)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서사장은 이스텔시스템즈 부회장으로 영입되었다.

서부회장은 “나에게 한국전기초자 3년8개월보다 동원시스템즈 4년이 더 힘겨웠다”라고 말했다. 동원시스템즈는 한국전기초자와 달랐다. 제조업체가 아니라 최첨단 통신산업체였다. 또, 위기감이 전면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동원시스템즈 직원들은 ‘이만하면 괜찮지’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취임 당시 동원시스템즈는 차입금이 1천억원이고 미지급금이 2백억원이나 되었다. 2001년과 2002년 각각 6백82억원, 3백4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수익을 창출한 방안은 적은데 인력은 필요 이상 많았다. 더욱이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인력을 활용할 길마저 막혔다. 인건비는 엄청났다. 당시 우수 인력 확보전이 치열하다 보니 높은 임금을 주고 인재를 스카우트할 수밖에 없었다.

사원들에게 책 읽기 권유…비전 공유에 힘써

서부회장은 회사가 수익이 나기 전까지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유휴 시설을 임대해 경상비를 줄였고 당장 필요치 않은 자산은 처분해 부채를 갚았다. 서부회장은 ‘작지만 강한 회사’라는 비전을 만들었다. 일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세부 작업도 병행했다. ‘열린 경영’은 이곳에서도 도입되었다. 서부회장은 직원들에게 책 읽기를 권유했다.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했다. 독후감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서부회장은 어쩔 수 없이 직원을 내보내야 했다. 2백명가량을 내보냈다. 그 과정에서 경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감원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체 인원 반을 줄여도 문제가 없었다. 지금까지 한국 노사 문화를 감안하면 신기한 일이다.’

시련 속에서도 경영 혁신은 계속되었다. 사업별 직제를 개편하고 새 영업 문화를 다져나갔다. 조금씩 직원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2003년 세계 IT 분야 경기는 여전히 침체되어 있었으나 동원시스템즈는 순이익 11억원을 거두며 대반전에 성공했다. 서부회장은 기업 실적보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이해를 같이 했고 비전을 공유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가 일치되지 않으면 경영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부회장은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 교수가 주장한 ‘인간중심 경영학’의 화신이다. 페퍼 교수가 <인간방정식(The Human Equation)>에서 제기한 인간 존중·고용 보장·정보 공개·자율 관리·교육 훈련이라는 경영 개념이 서부회장의 경영 방침에 완벽하게 녹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영학의 등대’라는 별명을 지닌 페퍼 교수는 서부회장에게 빚을 지고 있다. 서부회장은 경영 현장에서 인간 존중 경영을 실천했고, 인간 존중 이론의 유효성을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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