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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맞은 아이들“연극도 많이 컸네”

<아빠는 권투선수> <공룡이 된 빌리>로 본 어린이 연극

김유미 (연극평론가) ㅣ 승인 2009.01.06(Tue) 02: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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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권투선수>는 어린이 희곡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일들을 만들어 주고 싶어진다. 여행이나 캠프 같은 것이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극장을 찾는 것은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손쉽다. 극단 사다리의 <아빠는 권투선수>(홍두표 작, 유홍영 연출)와 독일 그립스 극장의 <공룡이 된 빌리>(토마스 아렌스 작, 옌스 노이만 연출)는 원산지가 전혀 다른 연극이지만 공통점이 많아서 흥미롭다. 이를 통해 좋은 어린이 연극이 갖추어야 하는 점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삼고자 한다.

극단 사다리의 <아빠는 권투선수>는 제3회 사다리 어린이 희곡 공모전 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탄탄한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강점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이 공모전은 어린이 연극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극단 사다리만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어린이 희곡이 전제되었다고 해서 꼭 만족스러운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다리 정도의 극단에서도 그렇다는 것은 곤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좋은 희곡과 비례해서 그 이상의 공연 성과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항상 평균 이상으로 작품의 질이 보장된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 <아빠는 권투선수>는 그동안 사다리 작품이 보여주었던 안온한 답답함을 조금은 벗어난 것 같아 반가웠다. 또 다른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화 속 세상에서 현실로 나와 좀더 활기차졌다는 점에서 어린이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산지 다르지만 공통점 많아 흥미로워

최근 극단 학전이 어린이 연극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 학전의 <고추장 떡볶이>는 어린이 연극으로서 2008년 베스트 공연에 선정되었고 올해 새로 생긴 대한민국 연극 대상에서도 작품상을 받게 되었다. 최근 극단 학전은 <우리는 친구다> <슈퍼맨처럼> 같은 번안극에 이어 창작극 <그림자 소동>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다리의 <아빠는 권투선수>는 제목에서부터 가족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강의 서사는 제목에서부터 짐작이 될 만큼 상식적이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면서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다가 그것을 극복해낸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린이 주인공 우승이의 상처이다. 교통사고 현장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의 심각한 부상과 변화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한 우승이의 상처는 컴퓨터 중독으로 나타난다. 어린이 관객들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자신들과 우승이를 동일시할 수 있어서 우승이의 게임 사랑과 로봇 흉내를 즐겁게 관람하지만 이러한 재미와 동시에 그 친구의 상처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전체적으로는 권투선수인 아빠가 장애에 굴하지 않고 시합에 나감으로써 그 의지가 우승이한테도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어린이 주인공만의 뚜렷한 극복 방법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그것이 교훈적인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가족의 소중함 그리며 작품에 활력 줘

   
▲ <공룡이 된 빌리>에서 주인공 빌리는 TV에 중독되어 있다.
<공룡이 된 빌리>에서 주인공 빌리(토마스 아렌스)는 TV에 중독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교통사고와 같은 커다란 원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상 세계 속 공룡에 푹 빠져 있는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작품에서 빌리에게는 아빠가 없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무척 자연스럽게 설정되어 있어서 특별한 불행이라기보다는 누구나가 하나씩은 가진 삶의 작은 상처들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 빌리의 TV 중독은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좀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아이의 상처와 관련된다. 소통되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 아이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TV뿐인 것이다. 엄마 역시 TV를 볼 때는 아이와 소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엄마가 TV를 보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고 아이가 TV를 보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으로 치부된다. 빌리의 TV 사랑은 소통을 갈구하는 강력한 은유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TV를 빼앗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엄마가 빌리와 함께 TV를 시청하는 것이 낫다. 이 작품에서는 친구 사비나(클라우디아 발코)와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도 찾게 된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뾰족한 방법은 제시되지 않는다. 그만큼 작위적 교훈성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두 작품 모두 가족이 중요하게 기능한다. 엄마, 아빠 외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해 어린이 주인공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공룡이 된 빌리>에서 양로원에 있는 빌리의 할머니는 같이 살지 않음에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할머니의 유머 감각은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데 기여하는 바도 컸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톤을 밝게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아빠는 권투선수>에서 할아버지 역시 아이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작품에 활력을 주었는데 초반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역할이 이어지지 못했다. <아빠는 권투선수>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슬프다는 것이 아쉬운 점인데, 무거움을 덜기 위해 과장된 웃음과 밝음을 보여주는 대신 그것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유머가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부분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기인하는 바도 있어서 비교는 위험하지만 정색을 하고 문제를 풀려고 하는 방식을 벗어날 필요는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아빠는 권투선수>에서 친구들과 이웃은 배타적인 관계인데, <공룡이 된 빌리>에서 이웃과 친구는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차이겠지만 어느 정도 우리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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