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 볼륨을 높이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1.0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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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인기 힘입어 인디 음반사들 ‘각개약진’…홍대 앞에서 ‘레이블 마켓’도 열어

▲ 인디음악과 대중들의 거리를 좁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는 홍대 상상마당 레이블마켓. . ⓒ시사저널 우태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노래를 듣거나 독특한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이들의 이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인디음악의 세계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제 3곡짜리 EP 앨범 하나만을 발표한 신생 밴드이지만 이미 밴드의 리더인 장기하에게 ‘장교주’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인디음악 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의 노래에서 1980년대 포크록을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멜로디, 삶의 편린과 개인적인 공상을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듯한 가사, 팔을 흐느적거리는 엉성하지만 중독성 있는 댄스 퍼포먼스 등을 보여주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이들을 대중에게 처음 알린 것은 지상파 TV 프로그램이었지만 언론을 통해 독특한 이력이 소개되고 인터넷 UCC를 통해 이들의 음악과 공연이 재소비되면서 ‘장기하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홍대를 중심으로 하는 인디음악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정치마’ ‘브로콜리 너마저’ 등 인디음악계에서 자생력을 기른 신구 밴드들의 음악이 대중음악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주류 대중음악이 주춤하고 인디음악계가 급성장하면서 둘 사이의 접점이 자연스럽게 인디음악 대중화의 출발점을 만들어주었다.

인디뮤지션의 음반은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발매된다. 자연히 인디레이블을 중심으로 인디뮤지션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인디뮤지션들의 주 활동 무대인 홍대 앞과 인천을 중심으로 수십 곳에 달하는 인디레이블이 운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인디음악이 존재하는 만큼 각 인디레이블이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와 성격은 다양하다.

‘붕가붕가 레코드’ 등 주요 산실로 주목

▲ 인디음악과 대중들의 거리를 좁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는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붕가붕가 레코드는 아마추어리즘의 경계에 서 있는 레이블이다. 관악구의 캠퍼스 밴드들이 기념 음반을 출시하면서 시작한 붕가붕가 레코드는 이후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청년실업’을 거쳐 지난해 ‘장기하와 얼굴들’과 ‘브로콜리 너마저’를 성공시켰다. 소속되어 있는 대다수 뮤지션들은 별도의 생업을 가지고 있고, 레이블은 가내 수공업 형태의 홈레코딩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음반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제작 가능한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음악의 수준이 아마추어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 활동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뮤지션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지난해 대중과의 접점을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밴드인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속해 있는 루비살롱 레코드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레이블이다. 인천에 위치한 공연장을 기반으로 한 록음악 전문 레이블이다. 레이블의 특성상 뮤지션의 공연 실력을 가장 중요시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노브레인’의 기타리스트 출신 차승우가 조직한 ‘문샤이너스’와 펑크 록 밴드 ‘누렁이’ 등이 루비살롱을 통해 음반을 내고 공연했다.

인디레이블의 또 다른 줄기는 힙합이다. 힙합음악계에는 소울컴퍼니가 대표적인 레이블이다. 힙합뮤지션 키비와 더 콰이엇을 중심으로 2004년 출범한 ‘소울컴퍼니’는 짧은 기간 동안 인디 힙합음악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음반 발매 외에 공연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레이블 소속 뮤지션이 함께하는 ‘소울컴퍼니 쇼’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인 공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동시대 젊은이들의 감성이 잘 표현된 가사와 소울·재즈를 바탕으로 한 비트가 ‘소울컴퍼니’ 음악의 특징이다.

이 밖에도 규모 면에서 인디레이블과 메이저 음반사의 경계에 서 있는 파스텔뮤직과 마스터플랜 같은 형태도 있다. 두 레이블은 자체 스튜디오를 갖추고,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하며 메이저 유통사를 통해 발매 음반을 판매한다. 규모가 큰 만큼 두 레이블 출신 중에는 어딘가에서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뮤지션들이 많다. 파스텔뮤직의 요조, 허밍어반스테레오, 타루 등과 마스터플랜의 주석, 데프콘 등은 일반 대중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뮤지션이다.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는 아직 좁아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인디레이블이 존재하다 보니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들이 독특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대중음악의 지형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인디음악팬 홍근철씨(20)는 “인디음악을 듣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스타리아이드, 언니네 이발관, 오지은 등 좋아하는 뮤지션이 생겼다. 자기 감정 없이 상품처럼 찍어내는 주류 대중음악은 식상하다.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인디음악의 신선함 때문에 자꾸 찾게 된다. 제작 여건 등으로 인한 아쉬움도 있지만 창의적인 시도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디레이블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3년부터 시행한 ‘인디레이블육성지원사업’은 2007년을 끝으로 폐지되었고, 언제나처럼 인디레이블의 경제적 여건은 열악하다. 그런 탓에 음반과 뮤지션의 홍보와 유통에서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음악을 만들더라도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하다. 많은 인디레이블들은 메이저 유통사에 음반을 배급하지 않고 로컬숍이나 공연장이 주요 음반 판매창구이다. 일부는 블로그를 통한 음원 공개를 통해 자신을 알리기도 한다.

지난해 인디밴드들이 주목받은 데는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 EBS의 <스페이스-공감>, MBC <라라라>, SBS <김정은의 초콜릿> 등의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 네이버의 오늘의 뮤직 서비스의 힘이 컸다. 공연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해 소개된 인디뮤지션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인디음악계 전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재즈 전문 인디레이블 에반스의 홍세조씨는 “일부 밴드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인디음악에 대해 아는 분들이 적다. 인디음악에 대한 홍보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그래도 인디음악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는 마련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홍대 앞에 있는 상상마당 아트마켓에서는 지난 12월5일부터 오는 2월1일까지 ‘레이블 마켓’을 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레이블 마켓에는 45개의 레이블과 18개의 밴드가 참여하며 5백여 종의 인디 음반이 전시 판매된다. 1월28일부터 마지막 5일 동안에는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열린다. 상상마당의 이동민 팀장은 “한국 음악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인디음악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데 레이블 마켓이 일조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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