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거래’ 또 드러날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1.06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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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퇴임 직후 15억원 차용증 써 박연차 회장에게 전달…사정 기관에 첩보

▲ 노무현 전 대통령측은 ‘박연차 = 노 전 대통령 후원인’을 부인해왔지만 최근 돈 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를 무색하게 했다.
지난 2008년 5월 초, 한 사정 기관 간부의 책상 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첩보 보고서가 올라갔다. ‘모 신문사가 지방에 있는 자사 인쇄소의 윤전기 두 대를 2008년 2월 초에 매각했는데, 한 대당 가격은 100억원이었다. 이 윤전기를 매입한 회사의 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이다. 그런데 정보원에 따르면, 윤전기를 매입한 자금이 노 전 대통령측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의 첩보를 청와대에서도 인지했으며, 현재 이 신문사의 윤전기 매각과 관련해 내사를 벌이고 있다.’

이 사정 기관에서는 그 신문사가 윤전기를 팔았다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이 윤전기를 샀으며, 그 자금이 노 전 대통령측으로부터 나왔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이렇듯 노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권과 사정 기관 안팎에서는 그의 ‘돈’과 관련된 소문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사정 기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인터넷 매체 창간과 지역 환경 운동을 위해 절친한 지인들로부터 거액을 빌렸다’라는 보고를 청와대에 올렸다. 그 ‘지인들’ 가운데 3명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 등에서는 전임 정권에서 벌어진 각종 부정 비리 의혹들이 쏟아진다. 심지어 국민의 정부를 계승했다는 참여정부 초기에도 국민의 정부 시절의 비리 의혹들이 난무했다. 그중에는 일부 사실로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허황된 ‘소설’에 불과했다. 초록은 동색이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랬는데, 정권이 ‘완전’ 교체된 현 정부 초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급성장했던 기업들에 대한 사정설부터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의 각종 비리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 가운데에 노 전 대통령의 ‘돈’과 관련된 루머가 빠질 리 없다. 

그런데 각 사정 기관에 정보 보고가 올라간 이후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은 농촌 환경 운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정 기관에 보고된 첩보 내용이 사실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5억원을 빌리고 차용증을 써주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의 정보 보고 내용이 완전히 날조된 것은 아니었음이 일부 확인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15억원 차용 문제는 현재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돈이 박회장측으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노 전 대통령측에 전달되었으며, 노 전 대통령측이 그 돈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등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15억원을 받으며 써준 차용증에는 상환 기간(1년)과 이자율까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찌 보면 ‘짧은 기간’ 동안 15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돈을 다시 마련해서 갚으려 했는지 등도 의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노무현-박연차 돈 거래’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당연히 돈 거래의 불법성 여부도 아직 따질 단계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측도 “검찰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내용을 우리가 해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다만,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 간의 돈 거래 전반에 대해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는 말만 검찰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는 대통령 아들들이 말썽을 일으켜  레임덕이 초래되었다. 하지만 임기 말까지 가족이나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은 예외였다.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었던 2004년에는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형인 노건평씨를 찾아가 사장직 연임을 청탁했던 것을 우회적으로 폭로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남사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지난 2002년 7월, LG전자에 입사했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2006년 9월에 무급 휴직하고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으러 출국했던 것도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이나 친인척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희망’은 좌절되었다. 노건평씨가 농협중앙회의 세종증권 인수와 관련해서 정화삼 형제와 공모해 세종캐피탈측으로부터 29억여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씨는 정원 토건을 운영하면서 회사자금을 횡령하고 탈세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동안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방문객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정치’를 해왔던 노 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스스로도 노건평씨 사건이 터진 지난 12월5일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나오겠다’라며 봉하마을 방문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박연차 회장, 봉하마을 사저 부지 매매 과정에도 개입

또한, 지난해 11월 박연차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노 전 대통령측은 언론에 ‘박연차 회장을 노 전 대통령의 후원인으로 연결 짓지 말아달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박회장과의 돈 거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또한 무색하게 되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측의 거래는 이미 예전에도 포착된 바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봉하마을의 사저 부지 일부를 박회장의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에게 매입했을 때였다. 정사장은 박회장의 최측근으로 태광실업이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한 뒤 첫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지난 2006년 11월, 노 전 대통령은 이 부지를 정사장에게서 1억5천만원에 매입한 바 있다. 당시 이 땅의 실소유주는 박회장이며, 노 전 대통령에게 시세보다 싼값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노무현-박연차’ 돈 거래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의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사장은 농협으로부터 휴켐스 입찰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는 등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현재 불구속 기소된 상태이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봉하마을 부지를 헐값에 매각한 의혹에 대해 “그 부분은 검찰에서 이미 다 진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검찰에서 진실을 다 얘기했다”라고만 말했다. 세종증권 주식 매입으로 시세 차익을 올린 부분과 휴켐스 입찰 방해 혐의 등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검찰에서 다 얘기했다”라고만 되풀이했다. 정사장에 따르면, 검찰은 박연차 사건이 터진 이후 2006년 당시 봉하마을 사저 부지 매각·매입 과정에서 불거졌던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 진행될수록 의혹들 계속 불거져…‘박연차 리스트’에 재주목

이처럼 ‘노무현-박연차의 거래’는 크게 두 가지가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15억원 차용’과 ‘봉하마을 부지 거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마당발로 소문난 박회장은 지난 2006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 20여 명에게도 수백만 원씩 모두 1억원에 가까운 돈을 후원금으로 낸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박회장 본인 명의가 아닌 정승영 사장을 비롯한 측근 명의로 지난해 4월 총선 직전에 여야 현역 의원 3명에게 후원금을 전달했던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영수증을 발급한 정치 후원금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박회장의 정치권 인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는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일부 언론에서 ‘검찰은 박회장의 자금 1억7천만원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철국 민주당 의원(경남 김해 을)에게 전달된 물증을 확보했다’라고 보도하자, 최의원은 “2005년 창원지방법원에 전세 보증금 공탁을 위해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에게 수표로 7천만원을 빌렸다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았다”라고 해명했다.

현재까지 박회장은 주로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 정치인들에게 정치 후원금을 준 것으로 밝혀졌지만, 항간에 나돌고 있는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는 현 여권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박회장이 부산·경남 지역을 사업 무대로 삼았기 때문에 이 지역 정치인들과 가깝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실제 여권 유력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마당이다. 심지어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ㅇ변호사와는 아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ㅇ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연차 리스트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도 소문만 요란했던 각종 리스트들이 별 볼일 없는 낭설로 끝난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양파 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과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 나도는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과 박회장의 관계를 속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검찰은 현재 박회장을 비롯해 주변인들에 대한 폭넓은 계좌 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회장의 계좌 추적 과정에서 정치인에게 돈이 전달된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고만 밝혔다. 그럼에도 세금 포탈과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박회장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어, 앞으로의 검찰 수사가 더욱 주목된다.

▲ 박연차 회장측이 지난 2006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부지(점선)를 헐값으로 매각한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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