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판 키우는 것이 나의 역할”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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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프로게이머 임요환씨 / “온라인 게임과 달리 중독성 적어…게임에 관한 사회의 편견 사라져야”

ⓒ시사저널 임준선

리암 피츠패트릭 <타임> 아시아판 수석기자는 지난해 5월31일 신한은행 프로리그를 보기 위해 MBC 게임 히어로센터를 찾았다. 그는 “말로만 들었던 한국의 e-스포츠 열기를 현장에서 직접 접하니 정말 흥분되고 재미있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라며 놀라워했다. e-스포츠가 인기몰이를 하자 SK텔레콤, KTF, CJ,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팀을 창단했다. 이처럼 e-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묻는다면 ‘테란의 황제’라고 불리는 ‘임요환(30·SK텔레콤 T1)’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기발한 전략으로 드라마 같은 승부를 연출하면서 팬카페 회원 수 50만명, 억대 연봉 프로게이머 등 모든 면에서 눈부신 선례를 남긴 그이다.

그는 지난 2006년 10월 공군에 입대하면서 “반드시 돌아와 30대 프로게이머로 활약하겠다”라고 공언했다. 지난해 12월21일 전역해 올드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2009년 1월1일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른 살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서른 살을 닷새 넘긴 1월5일, 역삼동 연습실에서 임요환 선수를 만났다.

1월1일로 서른 살이 되었다. 이전부터 30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공언했고, 이제 실천하는 단계라 느낌이 다를 것 같다.

20대 후반에는 30대가 두려웠다. 30대가 되기 전에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모든 것이 편안하다. 마치 20대 초반에 게임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것과 같은 느낌이다.
게임을 ‘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격상시켰다. 본인의 게임을 텔레비전으로 보면 어떤 차이점이 있나?
텔레비전으로는 주로 이기는 게임을 본다. 물론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게임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해설하는 분들에 따라서 달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아니지만 해설자들이 “임요환이니까~ 이런 겁니다”라고 하면 잘 모르는 시청자들은 ‘정말 다른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스로를 ‘프론티어’라고 생각하나? 이 부분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나?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나 자신이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그 효과를 키워준 사람들이 있다. 방송사, 해설자 등이 나를 부풀려주고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갚기 위해 여러 가지 사명감이 몸에 뱄다. e-스포츠 판을 더 키우는 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선수가 입대하기 전 공군에서 프로게임단을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일종의 특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특혜가 맞다. 그렇지만 공군에서 하는 훈련을 다 받으며 출전했다. 또, 공군을 위한 홍보도 많이 했다. 민간인이 공군을 지원할 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들었다. 특혜라는 말이 들어가서 더 열심히 군 생활에 맞는 활동을 했다. 그래야 뒤에 오는 선수들도 군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 있고, 팬들도 계속 그 선수를 응원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니까.

프로게이머의 정년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31세에 지금의 계약이 끝난다. 어떻게든 다른 스포츠처럼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따고 재계약이든 이적이든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놓고 은퇴를 하고 싶다. 사실 FA에 관한 규약은 선수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라 규정에 관해서는 지식이 없다. 사실 나조차도 자격에 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지 잘 모른다. FA가 나와야 e-스포츠 시장도 커지고 선수를 두고 팀 사이에 경쟁도 생기면서 연봉도 커질 것이다. 그것을 원한다.

제대 후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올드팬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는데, 부담감을 느끼나?
이전에는 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관심이 약이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게임 스타일과 다른 스타일의 게임을 한다면 어떤 선수라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게임을 정석플레이로 이기는 것보다 세 게임에 한 번만 그런 식으로 이기는 것이 승률은 떨어져도 인기는 크게 얻을 수 있다.

게임계만큼 세대 교체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일단 KeSPA랭킹 2위인 이영호 선수(18) 같은 경우 나와 열두 살 차이다. 띠동갑이다. 세대 교체가 일어나도 올드 게이머들이 은퇴하는 현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30대에도 게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일수록 더 이기고 싶었다. e-스포츠는 머리를 많이 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 활발하게 세대 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머리가 안 되면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이 e-스포츠에 뛰어들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어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구단측에서는 어리기 때문에 연봉을 낮게 책정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어린 선수를 기용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연봉을 낮게 책정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막상 당사자는 어리기 때문에 말도 잘 못한다. 선수협의회가 없는 것이 이런 점에서 아쉽다. 시기를 놓친 감이 있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선수협의회를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이전에 올드 게이머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당시 올드 게이머라고 해봐야 20대 초·중반이다. 사실 그때도 선수협을 만들기에는 어렸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처우가 문제 된다면 차라리 스쿨리그를 활성화해서 따로따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임요환 선수가 나서야 할 것 같다.

그럴 것 같다. 경험 많고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고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서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내가 나서더라도 주위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그럴 만한 선수들이 다 은퇴를 했다. 코치나 해설 등 도와줄 수 없는 위치로 갔다. 그래서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 어리더라도 서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있을 때 만들었어야 했다.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이 이전보다 줄었다. 그러면 보는 사람도 줄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서는 전체적인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임은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의 눈이 높아지고 약간 질리기도 한다. e-스포츠가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아니지 않나. 대체할 수 있는 좋은 게임이 나올 것이고 대체하더라도 한동안 스타는 계속 명맥을 유지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이 청소년에 유해하다는 사회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여전히 느끼는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남아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는 간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게이머가 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달라고 하더라. 그 속에는 ‘아이가 게임을 그만두도록 처참하게 짓밟아달라’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다. 군인이니까 상관의 명령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들이 게임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져야 e-스포츠가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e-스포츠에는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이 없다.

e-스포츠계의 ‘포스트 임요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임선수는 “그동안 만들려고 노력을 안 했다”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가?

예를 들어, 해외 이벤트를 가더라도 굳이 군대에 있는 나까지 활용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패럴림픽이 열릴 때 코리아하우스에서 e-스포츠에 대한 홍보를 해야 했다. 그때 군인인데 거기를 갔다. 현재 있는 게이머들 중에서 대체할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홍보하는 것이 낫지 않았겠나.

임선수 이후에 개성 있는 선수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것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게임의 종족은 다르지만 게임 스타일이 비슷해지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팬들 중에도 게임보다는 선수에 대한 느낌, 외모, 세레모니 등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도 많다. 앞으로는 뭔가 감동을 주는 선수들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이 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선수가 잘하려고 노력하면 해설이나 방송 등 주위에서도 도움을 준다. 색깔이 다른 다양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e-스포츠 판 자체가 커질 수 있다.

이번 시즌 목표는?

내가 주역이 아니더라도 프로리그에서는 일단 팀이 우승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남은 계약 기간인 1년 반 안에 다시 우승하고 싶다.

프로게이머로서는 가장 거목 같은 선수이다.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도 많을 것 같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자기의 본분인 공부를 등한시하고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은 나도 원치 않는다. 게이머를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느 정도 기본 틀은 잡혀 있어야 게이머를 그만두었을 때 다른 것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프로게이머는 한때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순위였다. 박지성, 박세리처럼 롤 모델이 있는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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